꽃그림자에
마당일을 하던 중 부러진 라일락 가지 하나를 물컵에 꽂았다.
며칠이 지나자
거뭇한 마디에 새순을 내보이고
이파리 몇 개가 따라 나왔다.
겁도 없는 녀석들
가진 것 이것저것 물병에 모으고
헐렁한 틈엔 돌맹이 하나 넣어
내 아침 나절을 채웠다.
그런데 놀란 것은
벽을 타고 서서히 움직이는 무단침입자
꽃그림자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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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지기님께서 오늘 이 포스팅을 위해 작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답글
"꽃그늘에 빠지다"
좀 수준 높은 시나 노래면 더 좋겠는데
(이 말은 이 표현에 걸맞는 댓글을 생각해낼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엉뚱하게도 동요 한 곡만 떠올랐습니다.
"개나리 노란 꽃그늘아래 /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사알짝 신 벗어 놓고 / 맨발로 한들한들 / 나들이 갔나
가지런히 기다리는 꼬까신 하나"
제가 초등학교 교사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꽃꽂이는 놀라워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디에나 두어도 좋겠지만
일본인이라면 당장 그들의 그 다다미방 도코노마에
너무나 잘 어울릴 것이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재일 한국인 화가 이우환 선생의 '보이는 것'이란 산문시가 생각나서
얼른 그의 시집 "멈춰서서"를 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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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관의 휑그렁한 회반죽 벽의 다다미 방. 그 한 모퉁이에 자그만 꽃 한 송이가 환하게
꽂혀 있다. 그것뿐이건만 왠지 방보다 크고 아련하게 여백이 퍼진다. 이 공간에 젖어들면
고요히 보이는 것이 있어, 문득 사람은 투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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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우환 선생의 이 시를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아직 몸이 지금만큼도 회복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일본의 어느 여관(그들은 료칸이라고 하는)에 가서 그걸 감상하고 돌아왔습니다.
호사라고 할까봐 말씀드리는데 2010년 이후 단 한 번의 여행이었습니다.-
숲지기2021.02.25 16:47
어머나 교장선생님,
저도 이 동요 압니다요.
"개나리 노란 ~~ 신벗어 놓~고 "
이렇게 띄엄띄엄이지만 4박자 멜로디 만은 확실히 알죠.
햇병아리를 보듯한 예쁜 동요입니다.
오늘날에 '일본스럽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백들 다루는 그들 특유의 감각은 놀랍죠.
큰 수술 후 회복도 덜 되신 몸으로 그 멀리까지 그림을 보러 가시다니요.
'호사'를 하셨다고 봅니다.
보통사람 즉 저 같은 쪼다들은 안전하고 편안한 것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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