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 가뭄 끝 소나기가 내렸다,바구니에 채소과일을 담고
6월 중순부터 7월 8월이 다 가도록 비 한방울 내리지 않더니
9월에 들면서 드디어 하늘에서 소식이 왔다.
비 뿌리는 일이 오래 잊고 있던 일처럼 까마득했을까
지난 과오에 대한 만회라도 하듯
거의 울부짖듯 천둥 번개 밤새 내리쳤다.
넝쿨콩, 콩이 단단해지기 전 콩꼬투리까지 먹는데
너무 가물었던 탓에 콩을 얻기보단
관상용 콩잎나무가 되어버렸다.
사진이 비스듬히 찍혔다
옆집 즉백나무 담장이 눕고 토마토 지지대들도 비틀거리네.
내 밭엔 멀쩡한 게 하나도 없다
다 이상해
하긴 뭐 나부터....
한국애호박은 밭 가장자리를 슬슬 기어다니다가
어느새 옆집 헝가리댁네로 이사가려 한다.
미국의 사슴님이 보내주셨던 애호박 씨앗으로 자식을 보고
그 자식의 손자에 손자까지 튼튼히 싹트고 호박맺고 있다.
사슴님 감사해요.
날 뜨거운 가뭄 중엔 기진맥진해 있더니
한번의 소나기로 전혀 다른 생을 사는 듯한 텃밭 식구들
가뭄에 분투해준 덕에 그럭저럭 몇 개 오이 얻었고
지금은 오이가 남아 있지 않은 오이포기.
하릴없이
수시로 붉어지는 토마토나 관람하는 중.
이거 범죄 아닌감?
바구니 가득 추수하여 귀가하려다가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밭에서 노는 사이
딱 반쪽인 달이 땅에 심지를 박을 듯 떴고
복숭아색 노을을 청회색 크레용으로 누군가 막 문지르고 있다.
빠르게 어둠이 오고 있다는 것.
이 사진은 왜 찍었더라?
길가에서 엉뚱한 깻잎 때문인가?
소나기가 여기저기 설겆이거리를 만들어 놨지만,
딱히 서두를 까닭이 없어
그냥 둔다.
내가 먹을 것이니 곧 나의 일부가 될 것들이다.
과일과 채소를 섞어 추수했다.
위에 보이는 것들 맨 아래 가려진 사과와 플라우멘(푸른색)과 청포도가 과일이고
깻잎을 비롯한 각종 푸성귀, 루콜라, 콩, 풋고추...가 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