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과 수직 /이 순간
제라늄과 휴일을 공유하며
숲 지기
2023. 6. 4. 22:04

볕의 아낌없는 찬사를 알아채고 양산을 접었다.
꽃들도 나 만큼 볕을 고대했을 것이므로.
종류가 다른 저 초록잎들은 제 깜량 만큼의 볕을 받아 광합성을 하는 중,
풀이파리 하나도 만들 재간도 없는 내가 참 하찮아지는 순간이다.


제라늄들의 나열이 뒤죽박죽이다.
색상도 순서도 고려하지 않은, 그냥 자리 채워 앉힌 수준.

잠깐의 여유를 부려 꽃집을 들렀지만
빠듯한 시간 때문에 손에 잡히는대로 안아온 덕분이다.
긴 화분걸이에 담아 걸긴 했지만 지들끼리의 조화는 여전히 난감하다.
붉은 색상의 꽃은 어지간 하면 집에 두지 않는다.
두었다 하더라도 한 가지로 제한한 경우였다.
그런데 이번엔 온통 붉은 꽃들이네,
더구나 그 종류도 산만한 이런 조합들이라니......

문제는 그러나 하루 이틀, 한 두 주 물을 주며 키우다 보니
입양을 보내기에도 늦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총체난국의 무질서 제라늄들이 내 식구로 들어앉아 버린 것.

인간에게 정 드는 일만큼 위험한 범죄가 있을까,
짐작일 뿐이지만 식물에게도 같은 경우가 아닐까.
어쨌든 그들과 나는 휴일 하루를 공유하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