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일기/한포기생명
꽃이라 부르긴 해도....
숲 지기
2023. 9. 5. 07:08

꽃과 동거하면서 말수가 적어졌다.
그때그때 할 말을 꽃이 대신 해 주기 때문이다.

오래 기다린 탓인지,
저 분홍꽃 필 때는 미미한 울렁증이 있었다.
꽃잎 한장 한장은 세상으로 펼쳐낸 분홍 느낌표.

한 때는 내가 꽃을 키운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꽃이 나를 키우고 있다.
날 선 마음에 물 뿌려 주고
커피 마실 때 친구해 주고
심지어 아침마다 말 걸어 준다.



꽃과 함께 식사
/ 주용일
며칠 전 물가를 지나다가
좀 이르게 핀 쑥부쟁이 한 가지
죄스럽게 꺾어왔다
그 여자를 꺾은 손길처럼
외로움 때움에 내 손이 또 죄를 졌다
홀로 사는 식탁에 꽂아놓고
날마다 꽃과 함께 식사를 한다
안 피었던 꽃이 조금씩 피어나며
유리컵 속 물이 줄어드는
꽃들의 식사는 투명하다
둥글고 노란 꽃판도
보라색 꽃이파리도 맑아서 눈부시다
꽃이 식탁에 앉고서부터
나의 식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외로움으로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함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 '꽃과 함께 식사' 고요아침, 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