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서랍/Y, 입실론 이야기
더 필요한 누군가에게로 옮겨진 내 것, 세발자전거
숲 지기
2019. 9. 17. 19:10
기분이 연이틀 묘하다 기대하고 장만했던 물건이 사라졌으니.
타이어에 흙도 제대로 묻지 않은 나의 세발자전거,
같이 한 날이 짧아서 변변하게 사진 한장도 찍어놓지 못했네.
깊은 정이 들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
워낙 예뻤으니 탐 낼 만 했을 자전거,
가지고 싶으니 그냥 달라고 와서 말했다면
나는 선뜻 주지 못하였을 거야.
흉기를 들고 위협이라도 했다면 그땐 또 달랐겠지만.
이런 내 속을 알고, 의향 같은 것은 묻지도 않고 누군가 실행에 옮겼다.
그것도 훤한 보름달 밤에.
한낱 자전거 한 대 때문에 누군가는
죄인이 되었겠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신고를 하면 조서를 써야 하는데, 그 과정이 평온하지 않아서이다.
옛날에 경험했던 몇 번의 도난사고의 기억도 떠오른다.
한번은 신고도 한 했는데 경찰이 알고 찾아와서,
전과가 있던 범인을 어떻게 하지 않겠냐고도 물었었다.
이름을 듣고 보니 아는 얼굴이어서,
나의 일로써는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더는 잃을 것이 없었던 그에게 죄몫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이 별 의미도 없었거니와
잠시 내 것이었던 것(지갑)이 그에게로 흘쩍 옮겨갔을 뿐이었으니까.
이번에도 나보다 더 필요한 누군가가
예쁜 자전거를 취했을 게 뻔하다.
이미 떠난 자전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한 시간이나 감성은 더 잃지 말아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