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일기/텃밭이야기
가을밭-1 남은 작물
숲 지기
2019. 11. 15. 00:11

다들 이미 떠난 땅에서 버티는
들깨꼬투리,
비장하기까지 하다
마치 아낌없이 사랑한
그 후처럼.

'비숍의 모자'고추, 2살짜리이다.
작년에 집에 들여 겨울을 났던 것을 봄에 밭에 내다 심었으니까.
올해도 들이면 내년 봄까지 연명하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이미 고추나무(Baumchilli)를 들인 터라.....
오,,, 미안해 .....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마는,
이 못할 짓!

토마토가 있던 자리,
지지대를 뽑고 옆에 물받이 화분도 뽑아 모으고
전날 정리를 하다가 만(어두워져서) 그대로....
오동통한 내 붉은 꿈이 있던 자리.

11월인데도 고추꽃이 만발하였다.
이들이 어리석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오늘 서리가 내리더라도(예년에 비해 아직 한참 늦었지만),
흰꽃망울을 세상에 내놓느니.....
고추가 이런 가운데서도 자란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닌
본성에 충실할 뿐이다.
9월에 뿌렸지만 너무 늦었다는 듯,
도통 알타리가 되고싶지 않은 어린 알타리무들.
로마네스코(Romanesko),브로콜리의 사촌 쯤 되는 식물로
벌써 3년째 이러고 산다.
부추씨앗, 씨앗을 거두지 않았다
저 씨앗들을 어쩌는지 두고 볼 생각으로.....
그린콜(Gruenkohl)이 활개칠 계절이다.
겨울에도 얼지 않고, 내년엔 더욱 세력을 뻗치는 건 이들 2년생 식물의 속성.
별 볼 일 없는 내 일상을
꽉꽉 채워준 이.
과분하고 고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