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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남작의 성을 찾아서 3 본문
성 언저리를 서성이며
가을색으로 몸속까지 물 들이는 중....
폭이 좁고 꼬불한 이 계단이 좋아서
내 집 마당에도 만들어 볼까도 싶다.
알고보니 나란히 선 너도밤나무 고목들도 오래된 건물들처럼 보호대상이다.
특별관리를 받는 귀한 몸인 셈.
거의 아무 사전 지식 없이 발길 닿는대로 찾아든 터라
문득 만나게 된 오래된 돌계단과 돌담의 이끼들, 수북히 쌓인 너도밤나무 낙엽에
마음을 자주 빼앗겼다.
나 혼자만 먼저 와 있었던 듯한 가을의 현주소를 드디어 찾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공감을 동시에 가지며.
나- 사람 나이든 동양여자, 너 - 역시 나이 들고 품위 있는 나무.....
비록 나무와 인간의 조우였지만 이 우주에 오롯이 우리끼리만 존재하는 듯
홀연히 바스락대며 낙엽들 밟거나 나무에 등을 대어보곤 했다.
내려오면서 본 원거리 풍경이다.
남작은 땅부자여서 이 근처 어지간한 땅은 다 그의 소유라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저곳에 있을 땐 몰랐지만,
원거리로 찍은 풍경은 그러니까 다 남작꺼.
내려오면서 다시 올려다 본 성 풍경
고향박물관(Heimatmuseum), 글자도 향토스럽다.
그날이 일요일이어서 문이 굳게 닫혔었고.
내려갈 때 보였다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꽃/고은)
내려오다 뒤돌아본 풍경에,
ㅎㅐ가 성 너머로 넘어가고 있다.
오를 때 보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앉아 있다.
말을 걸고 대화를 해보니 저 앉은 집주인인 건축가 할아버지이며
저 비슷한 오래된 집들을 여러 채 사들여서 수리하고 보유하고 있단다.
할아버진 또 마을의 어르신이자 저 성의 성주인 남작이 2 주 전 세상을 떴다고 일러 주었다.
동네가 작은 탓에 친구얘기를 하니 금방 친한 척 와인을 권했지만
귀갓길이 멀어서 사양하고 떠나왔다.
집 앞에 아니 길 가에
유심한 듯 무심한 듯
사과나무가 서 있었다.
아래 강가에 주차를 했으므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중이다.
오를 땐 없었던 듯한 차들이 집앞마다 주차해 있다.
아,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세금혜택이라도 줘야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오르내리며 다리근육이 단련될 터이니 혜택은 제대로 받고 있구나 싶었다.
탱자나무에 탱자가 열렸다.
저 곳을 지나쳐올 땐 보지 못했고, 사진을 보며 다시금 알게 되었다.
손가락 자랑질,
다친 손의 깁스를 풀고 한 첫 나들이였다....
.........................
중세 전후에 건축되어 무수한 피빛 역사를 가졌음에도, 다만 침묵할 뿐인 이 성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12세기에 성주가 처음 터 잡고 들어 왔다 하고,
인류사의 가장 잔혹한 전쟁이라는 일컫는 30년 전쟁(1618-1648) 후,
이곳에 유태인들의 공식적인 공동체가 들어섰다.
그후 몇 백년간 이어가다가 나치정권이 독일에 들어서고 반인륜적인 유태인 박해가 독일땅에 자행되었고,
이 곳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19명의 유태인이 근처 하이델베르크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한다.
이들 19명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굳이 쓰지 않겠다.
고즈늑한 만추의 성에 이런 어마무시한 이야기가 숨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