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꿀풀
- 독일 흑림
- 싸락눈
- 마늘풀
- 힐데가드 폰 빙엔
- 감농사
- 익모초
- 텃밭
- 흑림의 코스모스
- 독일흑림
- 흑림의 샘
- 우중흑림
- 카셀
- 뽕나무
- 잔설
- 코바늘뜨기
- 뭄멜제
- 흑림의 겨울
- 루에슈타인
- 흑림의 오래된 자동차
- 바질리쿰
- 흑림의 여뀌
- 흑림의 성탄
- Schwarzwald
- 흑림
- 프로이덴슈타트
- 흑림의 봄
- 독일 주말농장
- 바질소금
- 헤세
- Today
- Total
목록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108)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우체국을 지나며 / 문무학살아가며 꼭 한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가을날 우체국 근처 그쯤이면 좋겠다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엔 우체국 앞만 한 곳 없다우체통이 보이면 그냥 소식 궁금하고써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다그대가 그립다고 그립다고 그립다고우체통 앞에 서서 부르고 또 부르면그 사람 사는 곳까지 전해질 것만 같고길 건너 빌딩 앞 플라타너스 이파리는언젠가 내게로 왔던 해 묵은 엽서 한 장그 사연 먼 길 돌아와 발끝에 버석거린다물 다 든 가로수 이파리처럼 나 세상에 붙어잔바람에 간당대며 매달려 있지만그래도 그리움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공정한시인의사회', 2024년 9월호 서귀포 소녀/김륭 비는 계속된다그대로 두면 또 울 것 같아 이런 말을 하는 소녀..
준비 - 열애 일기 4/ 한승원산 단풍의 색깔은 조금씩 진해지는 것이 아니고어느 하룻밤의 찬서리와 함께 갑자기 새빨개지고 샛노랗게 된다고 산에 사는 젊은 비구니 스님이 그랬습니다낙엽은 한 잎 두 잎씩 지는 게 아니고어느 소슬한 바람 한 자락에 담벽 무너지듯 와르르 쏟아지는 것이 대부분이라고산에 사는 늙은 스님이 그랬습니다나는 날마다 준비합니다사랑하는 당신께 가노라는 말도 못 하고 어느 하룻밤 사이에 단풍처럼 진해졌다가 담벽 무너지듯 떨어져갈 그 준비- 한승원, 『열애일기』(문학과지성사, 1995) 저 별빛 / 강연호그리움도 버릇이다 치통처럼 깨어나는 밤욱신거리는 한밤중에 너에게 쓰는 편지는필경 지친다 더 이상 감추어둔 패가 없어자리 털고 일어선 노름꾼처럼막막히 오줌을 누면 내 삶도 이렇게..
깻대를 베는 시간/고영민 깻대는 이슬이 걷히기 전에 베는 법잘 벼린 낫으로 비스듬히 스윽, 당겨 베는 법이라고 당신은 말했네무정한 생각이 일기 전밤이 다 가시기전, 명백한 낮빛이 다 오기 전조금 애처롭게슬픔의 자리를 옮겨놓듯 천천히 베는 법이라고 말했네아침밥을 먹기 전의 시간곤한 숨소리가 남아있어 세상이 아직은 순정해져 있을 때쓸쓸하게 낫에 베이는 깻대여하지만 이슬은 사라지고 마는 것깻대를 베는 것은 어쩜 내 안에 와 있는 당신을 가르는 것과 같아서가만히 와서 가만히 가는 것을 일부러 가르는 것과 같아서터지는 슬픔 같은 것이어서깻대는 마음 축축하게 베는 것이라고 당신은 말했네이 밭에 첫 모를 옮길 때를 생각하며그늘 속에 잠든 당신을 탁탁탁 두드려 털 때를 생각하며싸락싸락 깨알이 바닥에 쏟아질 때를 생각하..
가시/ 정호승지은 죄가 많아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손등에는 채송화가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장미는 시들지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슬며시 그만두었다- 정호승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2004 장마 / 안상학세상 살기 힘든 날비조차 사람 마음 긁는 날강가에 나가..
감자꽃 필 무렵 / 허림 아날로그 시계 바늘이 북쪽을 가리키고 있다감자꽃이 피었다내면 광원 월둔 골짜기안개 풀리면서땅 속 감자가 여무는 동안안부 편지 한 줄 쓰지 못했다산그늘 먹물로 풀리는그날 저녁밥은 먹고 사냐는 문자를 받았다- '말 주머니' 북인, 2014 가난한 풍경 / 조동례외롭다는 이유로세상 등지고 싶은 사람 하나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건그도 배고프고 나도 배고팠던 것세상을 등진 그가나에게 한 발짝 다가오면벼랑을 등지고 사는 나물러설 곳이 벼랑이어서벼랑이 한 발짝 가까워지는데아는지 모르는지간절하고 절박한 마음 하나로물러설 곳도 나아갈 곳도 잊고주머니에서 풀씨 몇 개비상금처럼 털어내고 있다하마터면 나도 외롭다는 말을탈탈 털어놓을 뻔했다- 조동례,『달을 가리키던 손가락 』(삶창, 2013..
이슬/이기철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았으므로저 순결에 도달할 수 있었다아무 것도 먹은 맘 없었으므로저 순결에 도달할 수 있었다나락이 어딘 줄 모르므로 공중에 매달릴 수 있었다누굴 한 번 지독히 사랑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었으므로저리도 투명한 몸일 수 있었다숨어서 지내는 일생이 전부인 물방울피마저 하얘서 물방울인 이슬가시에 찔리면 제 피를 어디에 잠궈 두나 산에 사는 작은 새여 / 장석남감꽃이 나왔다신문을 접고 감꽃을 본다참 먼 길을 온 거다벽에 걸린 달력 옛그림엔 말 씻는 늙은이 진지하고살찐 말은 지그시 눈 감았다어디서 나비라도 한 마리 날아와라날아와서 말 끌고 가라성밖 막다른 골목 어귀에 자리 잡고 살지만번거롭다, 밥이나 먹고 사는 일이야 간단할 것인데이 눈치 저 눈치 며칠째 이 小市民을..
봄비 / 배한봉당신은 새 잎사귀의 걸음으로 내게 들어왔다하늘에서 대지로 조용조용 속삭이며 노크하던당신의 발자국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뛰고피가 돌아 세계의 상처에 살이 차올랐고구름의 눈썹 아래로 휴가 떠난 태양의 안부가 궁금했지만간절했던 것들은 간절하게 자라서척박한 페이지에 초록빛 문장을 새겨 넣었다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면 그새 새로 출간된날개가 내 겨드랑이에서 언뜻 보였다투명한 잎사귀의 걸음으로 당신이 내게 들어올 때나뭇가지 안에 갇혀 신음하던 그 춥고 아픈,간절한 것들이 찍어놓은 푸른 바코드젖은 말들이 도처에서 재잘대며 걸어 나오고 있다당신의 아이들이 재잘대며 달려 나오고 있다- 배한봉 '주남지의 새들' 천년의시작 2017 라일락 / 허수경라일락어떡하지,이 봄을 아리게살아버리려면?신나..
벚꽃 반쯤 떨어지고 / 황인숙 한 소절 비가 내리고 바람 불고 벚꽃나무 심장이 구석구석 뛰고 두근거림이 흩날리는 공원 소롯길 환하게 열린 배경을 한 여인네가 틀어막고 있다 엉덩이 옆에 놓인 배낭만 한 온몸을 컴컴하게 웅크리고 고단하고 옅은 잠에 들어 있다 벚꽃 반쯤 떨어지고 반쯤 나뭇가지에 멈추고. - 황인숙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2003 눈빛으로 말하다 / 나호열 떠나보지 않은 사람에게 기다려 보지 않은 사람에게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잔뜩 움켜쥐었다가 제풀에 놓아 버린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독약 같은 그리움은 찾아오지 않는다 달빛을 담아 봉한 항아리를 가슴에 묻어 놓고 평생 말문을 닫은 사람 눈빛으로 보고 눈빛으로 듣는다 그리움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꽃 그저 멀기만 ..
명자나무 곁에서 / 임영조 오랜 침묵만이 꽃을 피울까 영하에도 꼿꼿이 언 손 들고 벌서던 침묵의 가지 끝에 돋는 응어리 진홍빛 뾰루지를 보는 것도 아프다 오늘은 기어이 발설하리라 잉걸처럼 뜨겁고 위험한 자백 궁금해, 귀를 갖다 대본다 (아직 입 열때가 아니다!) 삼월의 끄덩이를 잡아채는 꽃샘바람 이미 붉어 탱탱한 입술 꼭 다문 명자꽃 망울이 뾰로통하다 해도, 그리운 명자 씨! 어서 귀엣말을 속삭여다오 그 내밀한 사랑의 불씨로 내 가슴속 외로움 다 태워다오 그게 혹 새빨간 거짓말일지라도 오늘은 다 곧이듣고 싶다 아직도 입다물고 망설이는 명자 씨! 온몸에 은근히 가시를 숨긴! - 임영조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민음사 2000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 문신 누가 아프다는 이..
기억한다 / 류시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많은 것이 자신이 희망하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상처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에 자신이 미워졌다고 고백한 시인을 기억한다 눈사람에게 추워도 불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한 시인을 기억한다 끝까지 울면 마지막 울음 속에 웃음이 숨어있다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사람이니까 넘어져도 괜찮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나는 정원사이자 꽃이라고 노래한 시인을 기억한다 언제부터 시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언제부터 시인이기를 그만두었느냐고 되물은 시인을 기억한다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느냐고 물은 시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