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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110)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봄 편지 / 곽재구 강에 물 가득 흐르니 보기 좋으오 꽃이 피고 비단 바람 불어오고 하얀 날개를 지닌 새들이 날아온다오 아시오? 바람의 밥이 꽃향기라는 것을 밥을 든든히 먹은 바람이 새들을 힘차게 허공 속에 띄운다는 것을 새들의 싱싱한 노래 속에 꽃향기가 서 말은 들어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새들의 노래를 보내오 굶지 마오 우린 곧 만날 것이오 - 곽재구,'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문학동네, 2019 뿌리 /문태준 뿌리는 무엇과도 친하다 꽃나무와 풀꽃들의 뿌리가 땅속에서 서로 엉켜 있다 냉이가 봄쑥에게 라일락이 목련나무에게 꽃사과나무가 나에게 햇빛과 구름과 빗방울이 기르는 것은 뿌리의 친화력 바람은 얽히지 않는 뿌리를 고집스레 뽑아버린다 우리는 울고 웃으며 풀지 않겠다는 ..
봄편지 /이문재 사월의 귀밑머리가 젖어 있다. 밤새 봄비가 다녀가신 모양이다. 연한 초록 잠깐 당신을 생각했다. 떨어지는 꽃잎과 새로 나오는 이파리가 비교적 잘 헤어지고 있다. 접이우산 접고 정오를 건너가는데 봄비 그친 세상 속으로 라일락 향기가 한 칸 더 밝아진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려다 말았다. 미간이 순해진다. 멀리 있던 것들이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저녁까지 혼자 걸어도 유월의 맨 앞까지 혼자 걸어도 오른켠이 허전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의 오른켠도 연일 안녕하실 것이다. -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꽃이 하는 말 / 김금용 큰일났다 다시 봄이다 꽃이 깨어나지 않으면 봄은 안오는 것일까 봄이 와야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뿜는 것일..
까짓것 /이정록 개업 기념 반값 미용실에 갔다가 시궁에 빠진 미운 오리 꼴이 되었다. 단골집에 가서 다시 다듬었다. 더 이상하다. 빈털터리가 되었다. 까짓것, 빡빡머리 스님도 산다 아이들이 나만 보면 툭툭 치고 지나간다. 나보다 낫다는 걸 확인하는 거다. 까짓것, 떡갈나무는 잎이 넓어서 바람도 크다. 태평양 범고래는 덩치가 커서 마음도 넓다. 이 년 사귄 여친이 전학 온 서울 것과 사귄다. 아직 이별 문자가 없다는 건 서울 놈과는 우정이란 거다. 까짓것, 사랑과 우정도 구별 못 하면 진짜 촌놈이다. 친구끼리 영화관 가고 팔짱 끼는 건 당연하다. 우정으로 마음을 가꿔서 진한 사랑으로 돌아올 거다. 까짓것, 취업이든 사랑이든 경력자 우대다. 난 어려서부터 심부름을 잘했다. 망을 잘 보고 빵과 담배..
사랑합니다 /이정록 제가 드려야 할 말이 아니라 제가 늘 들어야 할 말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언젠가 사용설명서까지 올 거라 믿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내 상처에만 필요한 약이라고 여겼습니다. 옹알이부터 시작한 최초의 말인 걸 잊어버리고 고쳐 쓴 유언장의 사라진 글자처럼 생각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건넨 흉터들, 그 바늘 자국을 이어보고야 알았습니다. 마중물을 들이켠 펌프처럼 숨이 턱, 막혀왔습니다. 기름에 튀긴 아이스크림처럼 당신의 차가움을 지키겠습니다. 빙하기에 갇힌 당신의 심장을 감싸겠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별자리처럼 아름다운 말이었습니다. 봉숭아 꽃물을 들인 새끼손톱 초승달에 신혼방을 차리는 가슴 뛰는 말이었습니다. 당신을 당신 그대로 사랑합니다. 별자리와 구름의 이름도 바라보는..
가왕도 가는 길 /최삼용 간혹 삶이 부담스러워 한 번쯤 길을 잃고 싶은 날 있다면 별발이 바다로 마구 쏟아지는 가왕도로 가자 드러누운 묘혈 자리에서 별 헤는 망자의 삭은 가슴 닮아 언제나 침묵한 채 바다를 지키는 작은 섬 은둔이나 칩거를 핑계 삼지 않더라도 인적 떠나 시간까지 멈춘 그 섬에 들면 온통 코발트 빛 눈부심만 낭자하게 춤을 추리 끝이 또 다른 시작이라면 오늘의 곤궁 또한 풍요의 척도가 되겠지만 겨울이 창창한 햇살 발라 추위를 말리는 갯가에 빨간 입술 벌린 채 동백꽃이 바다와 살고 최신형 네비게이션을 켜도 뭍에서 끝난 지도에서는 그곳으로 가는 길 찾을수 없어 말품 발품 다 팔아야 하네 그래서 적당히 두고 온 걱정 삭혀 두고 오늘은 나 여기서 이만 길을 잃으려 하네 ―시집『그날 만난 봄 바다』(그..
말고 / 김윤현 물이 많아 이젠 됐다 싶을 때 더해지는 물 같은 관심 말고 이만하면 따뜻하다 싶을 때 더해지는 온기 같은 친절도 말고 배고프지 않을 때 건네는 한술 밥 같은 인정도 말고 땀을 다 식혔다 싶을 때 드리워지는 그늘 같은 다가섬도 말고 어둠에서 다 빠져나왔을 때 내미는 손길 같은 도움도 말고 지루한 장마 끝에 더 뿌려지는 빗줄기 같은 사랑도 말고 - ´반대편으로 걷고 싶을 때가 있다 ´ 한티재 2022 주름 / 이대흠 아침 일찍 일어나 빗소리 듣는 것은 햇차 한잔 쪼르릉 따를 때처럼 귀 맑은 것이어서 음악을 끄고 앉아 빗소리 듣노라면 웅덩이에 새겨지는 동그란 파문들이 모이고 모여서 주름을 이루는 것이 보이네 휘어지며 늘어나는 물의 주름을 보며 삶이 고달파 울 일 있다면 그 울..
모과 /정호승 가을 창가에 노란 모과를 두고 바라보는 일이 내 인생의 가을이 가장 아름다울 때였다 가을이 깊어가자 시꺼멓게 썩어가는 모과를 보며 내 인생도 차차 썩어가기 시작했다 썩어가는 모과의 고요한 침묵을 보며 나도 조용히 침묵하기 시작했다 썩어가는 고통을 견디는 모과의 인내를 보며 나도 고통을 견디는 인내의 힘을 생각했다 모과는 썩어가면서도 침묵의 향기가 더 향기로웠다 나는 썩어갈수록 더 더러운 분노의 냄새가 났다 가을이 끝나고 창가에 첫눈이 올 무렵 모과 향기가 가장 향기로울 때 내 인생에서는 악취가 났다 눈길 /문태준 혹한이 와서 오늘은 큰 산도 앓는 소리를 냅니다 털모자를 쓰고 눈 덮인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피난하듯 내려오는 고라니 한마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고라..
국수 법문 /이상국 그전에 종로 어디쯤 머리가 하얗게 센 보살이 끓여주는 국숫집이 있었어. 한그릇에 오백원 더 달라면 더 주고 없으면 그냥 먹고 그걸 온 서울이 다 알았다는 거야. 그 장사 몇십년 하다가 세상 뜨자 종로 바닥에 사리 같은 소문이 남기를 젊어 그를 버리고 간 서방이 차마 집에는 못 들어오고 어디서 배곯을까봐 평생 국수를 삶아 그 많은 사람을 먹였다는 거야. -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2021 슬픔은 헝겊이다 /문정희 몸에 둘둘 감고 산다 날줄 씨줄 촘촘한 피륙이 몸을 감싸면 어떤 화살이 와도 나를 뚫지 못하리라 아픔의 바늘로 피륙 위에 별을 새기리라 슬픔은 헝겊이다 밤하늘 같은 헝겊을 몸에 둘둘 감고 길을 나서면 은총이라 해야 할까 등줄기로 별들이 쏟아지리라 ..
9월과 뜰 / 오규원 8월이 담장 너머로 다 둘러메고 가지 못한 늦여름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뜰 한켠 까자귀나무 검은 그림자가 퍽 엎질러져 있다 그곳에 지나가던 새 한 마리 자기 그림자를 묻어버리고 쉬고 있다 - 오규원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맹이(문학과 지성사 2005) 그 고요의 방 한 칸 /박해림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닐지 모른다 내 것이 아닌지 모른다 누군가 지쳐 훌훌 벗어 던진 허물 성가셔서 물리쳐버린 욕망이난망欲忘而難忘 그 풍경에 놓인 징검돌이거나 침묵의 배경일지 모른다 하루하루 견딘다는 건 본래의 나를 찾기 위한 여정에 불과한 것 슴슴한 햇빛 아래 줄타기 놀이인 것 사투이거나, 몸부림이거나…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는 우물 속 고요이거나 낯선 섬 하나 웅얼웅얼..
너는 장마를 장미라고 읽는다 /현이령 장미 연립 반지하 방에 누워 옆방을 엿본다 나는 장마가 길어져 그 방으로 가지 못하고 퉁퉁 불은 손가락으로 너에게 편지를 띄운다 물속에 잠긴 말들 장마를 안고 피어난 꽃은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다 겁먹은 얼굴로 우는 꽃다발 지난 밤은 비가 너무 깔깔대며 웃더라 소리 없는 뉴스가 들리고 장마에 천둥이 요란하다 저녁은 꽃잎을 넣은 비빔밥으로 할까? 아무렇게나 으깨진 꽃잎 가시에 찔린 손으로 너에게 간다 붉게 물든 고백들 백만 송이 장미가 피는 동안 장마는 매일 시작된다 오늘 밤도 창문에 혈흔을 찍는 꽃잎 장마다 장미다 장마다 장미다 모르는 어제를 꽃점으로 치면 마지막 입에서도 붉은 꽃잎이 떨어진다 혀는 자주 입속을 떠나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너를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