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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54)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비가 몇 주째 내리다가 용케도 맑은 날, 호기심 하나로 계단을 오른다. 성벽 오른쪽 아랜 뭘까? 성 안으로 통하는 개구멍? 가파른 계단은 오르라고 있는 것. 오르는 정도에 따라 앞 풍경도 달라진다. 사람이라곤 나 외엔 없어서 낙엽을 밟는 내 걸음소리 뿐이다. 문득 먼 곳을 보고 방금 올라온 아랫동네도 내려다 본다 가파른 계단이 계속되고 위를 향해 오른다. 오른 지점에서 뒤를 돌아 보면 이런 풍경. 아래 박물관과 교회, 또 그 아래로 마을이 또 그 아래엔 시냇가가 흐를 것이다. 무너진 성벽이나 임의로 가림을 해 놓은 나무막대기에도 검푸른 이끼들이 점령해 있다. 너도밤나무잎이 거의 카페트처럼 계단에 뿌려지고 있다. 이 성엔 벌써 몇 번이나 이런 풍경이 펼쳐졌을까. 여기가 차고입구일까. 담쟁이 너머 성벽 위에..
몇 주 전 모임을 가졌던 친구네 동네, 진입로 사진이다. 무심코 올려다 본 왼쪽 위에 솟은 저건 성(Burg) 같은데? 서행을 하며 손전화 사진을 찍으며, 세세한 것들은 친구에게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입구에 적힌 동네 이름 나이덴슈타인Neidenstein, 직역을 하면 '부러운 돌', '탐나는 돌'쯤 되겠지만 마을의 기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친구에게 또한 물어봐야 겠다. 높은 지대에 성을 쌓고 아래 길 옆 오른 쪽으로 마치 이 동네를 감싸듯 둥글게 하천이 흐른다. 중세 장원제도와 군사적 요새로서 이상적인 지형인 셈. 저 성 주인이 남작(Baron) *이란다. 남작의 땅은 넓고 넓어서 근처에 어지간하면 그의 것이라 했고 친구도 텃밭으로 그의 땅을 조금 소작하고 있다 하였다. 여기까지가 마을에 들며..
살림 /이병률 오늘도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별들을 둘러보고 오느라고요 하늘 아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압정처럼 박아놓은 별의 뾰족한 뒤통수만 보인다고 내가 전에 말했던가요 오늘도 새벽에게 나를 업어다 달라고 하여 첫 별의 불꽃에서부터 끝 별의 생각까지 그어놓은 큰 별의 가슴팍으로부터 작은 별의 멍까지 이어놓은 헐렁해진 실들을 하나하나 매주었습니다 오늘은 별을 두 개 묻었고 별을 두 개 캐냈다고 적어두려 합니다 참 돌아오던 길에는 많이 자란 달의 손톱을 조금 바짝 깎아주었습니다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중 ... 자정 즈음에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바람이 어두운 창밖 고목나뭇잎을 부비며 내는 소리에 습한 비냄새가 난다. 별은 뜨지 않았다. ... 우리나..
글의 제목을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하였다.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과 신화 속 여인,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행적은 전혀 관심 밖이지만 그의 서재에서 애지중지 자리를 지킨 여인이 다름 아닌 그리스 신화 속 페르세포네*라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프랑스의 고(故)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Valéry Giscard d'Estaing) 은 헌신적인 고미술품 애호가였다 한다. 지난 2020년 그가 사망하고 아끼던 수집품들의 일부인 고고학적 유물의 일부가 현재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어 호사가들의 흥미를 부추기고 있다. 그리스에서 발굴된 44cm 높이의 테라코타 여인은 신화 속 지하세계의 왕인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 Persephone*이다. 유물의 추정 제작연대는 기원전 4세기경인데 이 시기는 어림잡..
이번엔 토론토에서 올린 티벳 원형춤 영상이다. 고구려 벽화 속의 장삼춤과 너무도 흡사하다고 이미 여러 번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며칠 전부터 보고 또 보는 티벳춤, 내 속 어딘가 있을 법하고 그러나 어느 세대 부터선가 잊고 살아온 듯한 익숙한 노래와 또 몸짓이다. 몇 번을 무심코 보다가 유난히 눈길이 가는 소녀 춤꾼을 찾았다. 붉은 비단치마의, 춤맵시가 깜찍한 소녀이다. 영상 끝부분, 어두워진 뒤에도 군무를 추는데 소녀 춤꾼도 예외가 아니다. 이름 모를 예쁜 소녀.
구름이 숲을 독서하는 중이다. 느낌표가 많은 가문비나무 숲에서 붉은 열매로 마침표 찍는 건 마가목. 문장 바꿔 몇 행간 아래 고사리와 블루베리는 서로 숨고 숨겨서 주어가 도통 오리무중. 어지러운 틈에 돌 뚫고 나온 환한 이끼 구름을 만나 촉촉히 젖었네 나는 더 많이 젖었네. 구름에 읽힌 산, 산의 솟은 곳은 섬이 되는 중
매년 이맘때면 불쑥불쑥 뇌리에 떠오르는 그림, 조금 전에 이쁜준서님 블로그의 흰 명자꽃을 보면서도 속으론 이 그림을 연상했었다. (이쁜준서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자꽃을 꽃 피우게 하시는 분) 꿈 같은 푸른 바탕색에 작은 꽃잎이 몽글몽글한 그림은 1980년 화가 반 고흐가 사망하던 해에 그렸다. 단 한번이라도 꽃 그리기를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이 그림의 구석구석의 완성도에 탄성을 지를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고흐가 그렸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고흐는 생의 후반 1년 여 동안을 일본 문화와 화풍에 푹 젖어 지냈다. 일본풍 그림도 적잖게 그렸는데, 저 꽃그림도 그 중 하나로 분류된다. 그림의 제목은 아몬드꽃, 매화가 아니다. 프랑스 상레미 프로방스Saint-Rémy-de-Provence에 있는 것..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 결핵을 앓던 카프카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절친 막스 브로트에게 부탁을 하였다. "친애하는 막스, 내 마지막 간곡한 부탁이 있네 Liebster Max, meine letzte Bitte"라고 시작한 그 유명한 한마디는 카프카 자신의 모든 원고를 없애달라는 것이었다. 절친 막스는 그러나 카프카가 사망하고도 카프카의 작품을 없애지 않았으니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던 셈. 뿐만 아니라 막스 브로트는 체코를 탈출하여 팔레스티나로 향한 비행기 짐 속에 친구 카프카의 유작을 고이 넣었었고 유작 속엔 그림도 있었다. 프라하대학 법대생들이었던 카프카와 막스브로트, 둘은 소위 죽이 잘 맞았다. 이 시절(1901년부터 1907년 사이) 카프카는 자신의 글솜씨 만큼 그림에도 재능이 있..
첫눈에 내 식구다 싶었다. 이웃동네 꼬마들이 지네들 쓰던 물건을 집앞에 펼쳐놓은 그야말로 집앞 벼룩시장에서였다. 산책을 하다 멈춰 선 가게에 손님이라곤 달랑 나 혼자였다. 본의 아니게 어른의 대표가 된 듯한 좀 웃기는 책임감을 가지고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응원하려 했지 싶다. 판매대엔 모형자동차, 동화책, 레고 등등만 보여 난감했는데 다행히 한 구석에서 저 아이를 찾았다. 가게주인은 50센트라고 했지만 웃돈(?)을 얹어 1유로를 쥐어주고 아이를 데려왔다. 차림이 남루했던 아이, 머리를 땋아 주고 옷을 세탁하고 꿰매주었다. 내친 김에 아이의 긴 머리를 덮어줄 새 모자를 짜고 앞치마도 마렸했다. 옷이 날개이다. 이 사진은 밤잠도 안 자고 식물을 돌보는 중인 아이(밤에 찍은 사진) 낮에도 부지런한..
사랑 / 곽재구 물을 따라 강둑을 걸었다 바람이 불어와 풀들을 보듬었다 소주 두 홉을 마신 사람이 풀냄새 두 말을 마셨다 풀은 주량이 어떻게 되나 술 먹지 않은 무싯날 태풍이 불어왔다 미친바람이 풀의 몸을 쥐어뜯었다 풀은 온몸이 술이며 노래며 춤이며 심장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풀은 바람을 보듬고 구천 멀리 날아갔다 풀과 함께 날아가던 새들이 한 골짜기에 내려앉았고 조용해진 풀밭에 새들이 알을 낳았고 바람에 날려 온 꽃씨들이 풀 틈 사이 꽃을 피웠고 알을 나온 아기 새들이 톡톡 꽃잎을 쪼았고 풀밭에서 새로운 음악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 썬글라스를 끼고 보고 싶은 단어가 있다. 요즘의 어떤 단어 앞에선 마스크를 하고 싶은 충동도 인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우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