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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57)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 결핵을 앓던 카프카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절친 막스 브로트에게 부탁을 하였다. "친애하는 막스, 내 마지막 간곡한 부탁이 있네 Liebster Max, meine letzte Bitte"라고 시작한 그 유명한 한마디는 카프카 자신의 모든 원고를 없애달라는 것이었다. 절친 막스는 그러나 카프카가 사망하고도 카프카의 작품을 없애지 않았으니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던 셈. 뿐만 아니라 막스 브로트는 체코를 탈출하여 팔레스티나로 향한 비행기 짐 속에 친구 카프카의 유작을 고이 넣었었고 유작 속엔 그림도 있었다. 프라하대학 법대생들이었던 카프카와 막스브로트, 둘은 소위 죽이 잘 맞았다. 이 시절(1901년부터 1907년 사이) 카프카는 자신의 글솜씨 만큼 그림에도 재능이 있..
첫눈에 내 식구다 싶었다. 이웃동네 꼬마들이 지네들 쓰던 물건을 집앞에 펼쳐놓은 그야말로 집앞 벼룩시장에서였다. 산책을 하다 멈춰 선 가게에 손님이라곤 달랑 나 혼자였다. 본의 아니게 어른의 대표가 된 듯한 좀 웃기는 책임감을 가지고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응원하려 했지 싶다. 판매대엔 모형자동차, 동화책, 레고 등등만 보여 난감했는데 다행히 한 구석에서 저 아이를 찾았다. 가게주인은 50센트라고 했지만 웃돈(?)을 얹어 1유로를 쥐어주고 아이를 데려왔다. 차림이 남루했던 아이, 머리를 땋아 주고 옷을 세탁하고 꿰매주었다. 내친 김에 아이의 긴 머리를 덮어줄 새 모자를 짜고 앞치마도 마렸했다. 옷이 날개이다. 이 사진은 밤잠도 안 자고 식물을 돌보는 중인 아이(밤에 찍은 사진) 낮에도 부지런한..
사랑 / 곽재구 물을 따라 강둑을 걸었다 바람이 불어와 풀들을 보듬었다 소주 두 홉을 마신 사람이 풀냄새 두 말을 마셨다 풀은 주량이 어떻게 되나 술 먹지 않은 무싯날 태풍이 불어왔다 미친바람이 풀의 몸을 쥐어뜯었다 풀은 온몸이 술이며 노래며 춤이며 심장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풀은 바람을 보듬고 구천 멀리 날아갔다 풀과 함께 날아가던 새들이 한 골짜기에 내려앉았고 조용해진 풀밭에 새들이 알을 낳았고 바람에 날려 온 꽃씨들이 풀 틈 사이 꽃을 피웠고 알을 나온 아기 새들이 톡톡 꽃잎을 쪼았고 풀밭에서 새로운 음악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 썬글라스를 끼고 보고 싶은 단어가 있다. 요즘의 어떤 단어 앞에선 마스크를 하고 싶은 충동도 인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우며 시인..
숲에 넵툰우물로 가는 방향이라고 표지판은 말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가본 것도 같은 넵툰우물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가시덩굴이 산더미처럼 높이 가로막았다. 바다에 있어야 할 신이 숲에 까지 들어왔으니 보다 못한 가시나무가 가뒀나? 이래서 신화는 계속되는 것인가? 삼지창(♆)을 자랑스레 보여주는 로마의 신 넵툰은 원래 그리스의 포세이돈 즉 바다의 제왕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용왕님 격인 넵툰을 유럽에선 우물이나 분수이름으로 많이들 지었다. 위에 벌거벗은 아저씨가 넵툰, 삼지창을 반드시 들고 다니는 게 특색이라면 특색. (볼로냐의 분수대) 가을의 한복판에 넵툰 방향은 막혔지만, 볕이 제왕격이다. 이때 올려다본 하늘. 아마도 꿀밤나무였던 것 같은 낡은 고목 위로 비행기가 쭉쭉 선을 긋는 중이다, 위에서부터..
섬 / 손세실리아 네 곁에 오래 머물고 싶어 안경을 두고 왔다 나직한 목소리로 늙은 시인의 사랑 얘기 들려주고 싶어 쥐 오줌 얼룩진 절판 시집을 두고 왔다 새로 산 우산도 밤색 스웨터도 두고 왔다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날을 몰라 거기 나를 두고 왔다 ....... 여러 벌 스웨터와 안경, 오래된 시집까지 곰비임비 쌓아두고 왔고 그렇게 믿을 수 있지만 목소린 아닌 것 같다. 목소릴 두고 올 수 있을까 내 목소릴 그러니까, 여전히 데리고 있는 이가 있을까? ....... 마당의 여름하늘 댓글 8 파란편지2021.09.04 04:07 신고 그러니까 거의 다 두고 온 거죠? 뭐 하려고 왔는지, 왜 와야 했는지... 그만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렇게 온 사람이 잘한 건지도 모르긴 합니다...
작별 /이시영 민들레는 마지막으로 자기의 가장 아끼던 씨앗을 바람에게 건네주며 아주 멀리 데려가 단단한 땅에 심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민들레 도전기 (daum.net) 민들레 도전기 아이* 와 민들레, 짧은 사진이야기 뭐 재미있는 게 없을까, 아이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씨앗을 붕붕 띄운 민들레 줄기 하나. 허리를 굽히고 원하는 것을 조그만 손아귀에 넣어 잡아 당겼다. 어? 되 blog.daum.net 숲의 푸른점심, 서시 (daum.net) 숲의 푸른점심, 서시 서시 /이성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 blog.daum.net 댓글 6 파란편지2021.07.14..
노래하는 모자 /반칠환 그는 창고를 짓지 않았을 때에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날 나를 들여 양치기로 삼았다. 그는 내가 노래할 때마다 모자를 하나씩 씌워준다. 나는 점점 높아진다. 노래를 들은 양들은 하나씩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 노래하는 나는 입이 있지만, 반짝이는 별들은 항문조차 없다. 노래를 할 때마다 모자는 높아지고 나는 점점 납작해진다. 나는 그의 창고에 매혹되어 종종 그를 잊지만, 그는 때마다 나를 불러 찬미하라 한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그가 모든 것이 부족한 나를 찾는다. 어디에나 있어도 안 보이는 그가, 어디에 숨어도 보이는 나를 찾는다. 처음엔 목이 쉬도록 노래 불렀지만 이제는 허밍으로 노래한다. 절창으로 부른다고 그의 영광이 높아지고, 음치로 부른다고 광영이 낮..
해변의 마지막 집 /이병률 바닷가 민박집 방문을 열어 보여주시는 할머니 - 이 방이 이래 추워 보여도 이거 하나 키면 따땃합니더 할머니는 한사코 선풍기를 가리키며 난로라고 하신다 다른 할 일이 없는데도 몇 번을 물으신다 - 참말로 잠만 잘낍니껴 할머니는 나를 바람쯤으로 여기는 게 분명하고 나는 자꾸 이 할머니가 나 돌아갈 때 데려갈 사람쯤으로 여겨져서 할머니가 시간을 물을 때마다 대답하느라 어두워진다 밤 바다 소리가 하도 유난해 마당에 나와서는 나무에 걸쳐 있는 달을 올려다보는데 - 와요? 나무가 뭐라 합니껴 반반 /이병률 여관에 간 적이 있어요 처음이었답니다 어느 작은 도시였는데 하필이면 우리는 네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여자 둘 남자 둘이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난감해하면서 방 ..
눈치껏 셋이 앉아 그림놀이를 하였다. 평상시엔 '그저 즐겨나 볼까'하던 것이지만 오늘 만큼은 비장함 마저 느껴진 화투놀이였다. 열과 성을 다하여 아무리 일러주어도 내집 문을 나서면 다 까먹나 보다. 독일인들에겐 화투놀이 인식 유전자가 선천적으로 결여된 듯. 비약 풍약을 수십번 일렀건만 똥인지 비인지도 도무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건 그렇다 쳐도 우리 3명일 때, 몇 장을 손에 들고 몇 장을 펼치는지 아는 사람? 우리 셋 그냥 닥치는대로 그때그때 달리해봤는데 번번이 파투! 또 파투! 화투 참 어렵다. (한때 숲지기는 집안에서 알아주는 화투 신동이었음, 믿거나 말거나....) 댓글 2 파란편지2021.03.10 09:16 신고 하하하~ 화투놀이 자체보다 거기 화투가 있는 것이 재미있고, 그들과 그 놀이를 하신..
마치 한 해의 소소한 절기를 맞듯, 귀가 모차르트를 원하고 , 눈이 동화를 원할 때가 있다. 일전에 그래서 ' '인어공주'를 읽어야 겠어, 이왕이면 사탕을 빨듯 천천히..... ' 그랬다. 동화적인(동화니까) 문장들의 명료함이랄까, 읽기를 잘 했다 싶다. 요샛말로 미니멀리스트들의 정갈함과 닮았다 할까. 예의 짧고 단정한 몇 문장을 주머니에 넣고 산책을 할 때도 있고 며칠간 그것들에 대입을 한 우리시대의 상징적 일화들을 떠올려 볼 때도 있다. 인어공주의 작가 안데르센은 덴마르크 출신이지만 지인들에게 '나는 이탈리아 사람이야'라는 농담을 즐겨 할 만큼 이탈리아 여행을 퍽도 즐겼다 한다. 동화 '인어공주'도 이탈리아 남부 즉 지중해 연안에 있을 때 구상하고 집필하였다. 어느 깊고 푸른 바닷속, 화려한 조개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