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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54)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숲에 넵툰우물로 가는 방향이라고 표지판은 말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가본 것도 같은 넵툰우물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가시덩굴이 산더미처럼 높이 가로막았다. 바다에 있어야 할 신이 숲에 까지 들어왔으니 보다 못한 가시나무가 가뒀나? 이래서 신화는 계속되는 것인가? 삼지창(♆)을 자랑스레 보여주는 로마의 신 넵툰은 원래 그리스의 포세이돈 즉 바다의 제왕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용왕님 격인 넵툰을 유럽에선 우물이나 분수이름으로 많이들 지었다. 위에 벌거벗은 아저씨가 넵툰, 삼지창을 반드시 들고 다니는 게 특색이라면 특색. (볼로냐의 분수대) 가을의 한복판에 넵툰 방향은 막혔지만, 볕이 제왕격이다. 이때 올려다본 하늘. 아마도 꿀밤나무였던 것 같은 낡은 고목 위로 비행기가 쭉쭉 선을 긋는 중이다, 위에서부터..
섬 / 손세실리아 네 곁에 오래 머물고 싶어 안경을 두고 왔다 나직한 목소리로 늙은 시인의 사랑 얘기 들려주고 싶어 쥐 오줌 얼룩진 절판 시집을 두고 왔다 새로 산 우산도 밤색 스웨터도 두고 왔다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날을 몰라 거기 나를 두고 왔다 ....... 여러 벌 스웨터와 안경, 오래된 시집까지 곰비임비 쌓아두고 왔고 그렇게 믿을 수 있지만 목소린 아닌 것 같다. 목소릴 두고 올 수 있을까 내 목소릴 그러니까, 여전히 데리고 있는 이가 있을까? ....... 마당의 여름하늘 댓글 8 파란편지2021.09.04 04:07 신고 그러니까 거의 다 두고 온 거죠? 뭐 하려고 왔는지, 왜 와야 했는지... 그만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렇게 온 사람이 잘한 건지도 모르긴 합니다...
작별 /이시영 민들레는 마지막으로 자기의 가장 아끼던 씨앗을 바람에게 건네주며 아주 멀리 데려가 단단한 땅에 심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민들레 도전기 (daum.net) 민들레 도전기 아이* 와 민들레, 짧은 사진이야기 뭐 재미있는 게 없을까, 아이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씨앗을 붕붕 띄운 민들레 줄기 하나. 허리를 굽히고 원하는 것을 조그만 손아귀에 넣어 잡아 당겼다. 어? 되 blog.daum.net 숲의 푸른점심, 서시 (daum.net) 숲의 푸른점심, 서시 서시 /이성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 blog.daum.net 댓글 6 파란편지2021.07.14..
노래하는 모자 /반칠환 그는 창고를 짓지 않았을 때에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날 나를 들여 양치기로 삼았다. 그는 내가 노래할 때마다 모자를 하나씩 씌워준다. 나는 점점 높아진다. 노래를 들은 양들은 하나씩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 노래하는 나는 입이 있지만, 반짝이는 별들은 항문조차 없다. 노래를 할 때마다 모자는 높아지고 나는 점점 납작해진다. 나는 그의 창고에 매혹되어 종종 그를 잊지만, 그는 때마다 나를 불러 찬미하라 한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그가 모든 것이 부족한 나를 찾는다. 어디에나 있어도 안 보이는 그가, 어디에 숨어도 보이는 나를 찾는다. 처음엔 목이 쉬도록 노래 불렀지만 이제는 허밍으로 노래한다. 절창으로 부른다고 그의 영광이 높아지고, 음치로 부른다고 광영이 낮..
해변의 마지막 집 /이병률 바닷가 민박집 방문을 열어 보여주시는 할머니 - 이 방이 이래 추워 보여도 이거 하나 키면 따땃합니더 할머니는 한사코 선풍기를 가리키며 난로라고 하신다 다른 할 일이 없는데도 몇 번을 물으신다 - 참말로 잠만 잘낍니껴 할머니는 나를 바람쯤으로 여기는 게 분명하고 나는 자꾸 이 할머니가 나 돌아갈 때 데려갈 사람쯤으로 여겨져서 할머니가 시간을 물을 때마다 대답하느라 어두워진다 밤 바다 소리가 하도 유난해 마당에 나와서는 나무에 걸쳐 있는 달을 올려다보는데 - 와요? 나무가 뭐라 합니껴 반반 /이병률 여관에 간 적이 있어요 처음이었답니다 어느 작은 도시였는데 하필이면 우리는 네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여자 둘 남자 둘이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난감해하면서 방 ..
눈치껏 셋이 앉아 그림놀이를 하였다. 평상시엔 '그저 즐겨나 볼까'하던 것이지만 오늘 만큼은 비장함 마저 느껴진 화투놀이였다. 열과 성을 다하여 아무리 일러주어도 내집 문을 나서면 다 까먹나 보다. 독일인들에겐 화투놀이 인식 유전자가 선천적으로 결여된 듯. 비약 풍약을 수십번 일렀건만 똥인지 비인지도 도무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건 그렇다 쳐도 우리 3명일 때, 몇 장을 손에 들고 몇 장을 펼치는지 아는 사람? 우리 셋 그냥 닥치는대로 그때그때 달리해봤는데 번번이 파투! 또 파투! 화투 참 어렵다. (한때 숲지기는 집안에서 알아주는 화투 신동이었음, 믿거나 말거나....) 댓글 2 파란편지2021.03.10 09:16 신고 하하하~ 화투놀이 자체보다 거기 화투가 있는 것이 재미있고, 그들과 그 놀이를 하신..
마치 한 해의 소소한 절기를 맞듯, 귀가 모차르트를 원하고 , 눈이 동화를 원할 때가 있다. 일전에 그래서 ' '인어공주'를 읽어야 겠어, 이왕이면 사탕을 빨듯 천천히..... ' 그랬다. 동화적인(동화니까) 문장들의 명료함이랄까, 읽기를 잘 했다 싶다. 요샛말로 미니멀리스트들의 정갈함과 닮았다 할까. 예의 짧고 단정한 몇 문장을 주머니에 넣고 산책을 할 때도 있고 며칠간 그것들에 대입을 한 우리시대의 상징적 일화들을 떠올려 볼 때도 있다. 인어공주의 작가 안데르센은 덴마르크 출신이지만 지인들에게 '나는 이탈리아 사람이야'라는 농담을 즐겨 할 만큼 이탈리아 여행을 퍽도 즐겼다 한다. 동화 '인어공주'도 이탈리아 남부 즉 지중해 연안에 있을 때 구상하고 집필하였다. 어느 깊고 푸른 바닷속, 화려한 조개와 ..
댓글 14 이쁜준서2021.02.17 19:29 신고 흑림 자연에서 피는 꽃입니까? 아주 단추처럼 작은 둥글고 납작한 크로거스란 구근을 사서 심은 적이 있는데 꽃몽오리는 약간 크게 보이는데 비슷하게도 보입니다. 참 곱습니다. 눈 속에서 저렇게 꽃몽오리를 올려 곧 피겠는데요. 정말로 보고 싶으셨을 것이고, 아주 반가웠을 것 같습니다. 답글 수정/삭제 숲지기2021.02.17 22:08 눈숲을 쏘다니다가 만났습니다. 사방이 눈이어서 기대치도 않았는데 저렇게 솟아난 모습을 보고 몹시 반가웠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봄이 성큼 오고 있죠. 수정/삭제 파란편지2021.02.18 09:04 신고 와~! 이건 정말....... "보고싶었다" 누구라도 그렇겠습니다. 답글 수정/삭제 숲지기2021.02.18 15:44 발 ..
겨울 호수엔 얼음이 얼었다가 말았다 한다 호수는 그저 제 몸을 다 맡기고 그저 겨울이 하자는대로 한다 그러나 이 차갑고 견고한 아성이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을 나는 안다 이번 겨울엔 숲이 우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바람을 빌어서인데 이날도 잎이 다 떨어진 활엽수들이 딴엔 소리까지 죽여서 울부짖었다. 댓글 8 파란편지2021.02.13 14:33 신고 사진도 글도 무슨 영화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답글 수정/삭제 숲지기2021.02.13 22:56 눈 탓인지 숲동넨 구석구석 영화속 같습니다. 짧은 순간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손전화로 풍경을 담았고요. 수정/삭제 이쁜준서2021.02.13 23:39 신고 호수의 설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번 겨울에 숲이 우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하셨네요. 답글 수정/삭제 숲지..
메일 답장에, 8시가 가까워옴에도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고 쓰고 있는데 바라본 창가의 푸르스름한 새벽에 익숙한 고목 가지들이 눈옷을 덧입고 있네. 앗, 눈이다. 쓰던 메일을 고속으로 얼버무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눈숲에 들었다. 고요히 눈이 쌓이는 시공간에서 새들이 푸득푸득 간헐적으로 숲의 어둠을 깨우고 제법 몸체가 있을 짐승들이 뛰는 소리도 들려 온다 아주 가끔. 그러나 사람의 인기척은 없다. 지금 이 숲에선 그러니까 나무들 들짐승들과 인간을 대표한 내가 함께 눈맞이를 하고 있다. -핸드폰에도 뿌옇게 눈이 내렸다. 댓글 17 파란편지2021.01.03 15:06 신고 조심스러워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또 그런 곳으로 가셨습니까? 축하합니다! 참 희한한 그림입니다. 답글 수정/삭제 숲지기2021.01.0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