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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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숲 지기 2021. 11. 12. 07:53

사랑

/ 곽재구

 

물을 따라 강둑을 걸었다

바람이 불어와 풀들을 보듬었다

소주 두 홉을 마신 사람이 풀냄새 두 말을 마셨다

풀은 주량이 어떻게 되나

술 먹지 않은 무싯날 태풍이 불어왔다

미친바람이 풀의 몸을 쥐어뜯었다

풀은 온몸이 술이며 노래며 춤이며 심장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풀은 바람을 보듬고 구천 멀리 날아갔다

풀과 함께 날아가던 새들이 한 골짜기에 내려앉았고

조용해진 풀밭에 새들이 알을 낳았고

바람에 날려 온 꽃씨들이 풀 틈 사이 꽃을 피웠고

알을 나온 아기 새들이 톡톡 꽃잎을 쪼았고

풀밭에서 새로운 음악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

 

 

 

썬글라스를 끼고 보고 싶은 단어가 있다.

요즘의 어떤 단어 앞에선 마스크를 하고 싶은 충동도 인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우며

시인은 고민을 했을까? 

(윗문장 꿑에 물음표를 넣은 나는 얼마나 제한적인가 )

 

나는 이 시를 용케도 요즘시대에 집필되는 신화처럼 읽었다.

그 사실을 써 놓고 글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가 한다.

함께 올린 춤추는 그림도 시와 딱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다가

온라인 쇼핑으로 끝내 수채화붓을 주문하였다.

인과관계가 확연한 시를 읽고서도

내가 쓰는 문장과 문장은 따로 논다. 

 

 

  • 파란편지2021.11.14 12:34 신고

    저 그림 같은 포즈의 로댕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로댕은 카뮤를 버렸으므로 그의 모든 사랑은 그리 길지는 않은 사랑인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랑을 보고 '바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저 시에도 나오는 바람...
    '한바탕' 불어가는 바람...
    썬글라스, 마스크 얘기를 하셔서 망설이다가 씁니다. 저 시에서 저렇게 써서 정말 싫은 단어가 된 게 두어 가지 보였습니다.

    이 포스팅을 열기 전, 제목만 보였을 때, 숲지기님 사랑 이야긴가 했습니다.

    답글
    • 숲지기2021.11.14 13:47

      저는 바람을 인정합니다.
      볼 수는 없지만 그 불가항력의 실체는
      앞산 뒷산의 장대한 고목들을 순식간에 눕혔죠.
      그 후 10년이 지났지만 숲엔 바람의 흔적이 뚜렷이 남았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멀리서 본 숲 풍경이고요,
      바람이 밀어 버렸던 그 땅을 디뎌보면
      비로소 수 많은 종류의 식물이 그곳을 차지하고 자랍니다.
      큰 나무들의 그늘에서 싹을 틔울 용기도 없었던 그런 식물들이 말입니다.

      작가들마다 집착하는 단어가 있고 생각이 있을 겁니다.
      교장선생님 말씀에 저도 한 번 더 쭉 다시 읽었습니다.
      로뎅에,로댕의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잘 다듬어진 육체 형태보다
      그가 남겨둔 둔탁한 밑돌을 더 좋아합니다.
      그가 여자를 버렸군요.
      버림받은 여자는 로뎅을 딛고 설 수 있었을턴데...
      갑자기 이런 말을 툭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 파란편지2021.11.15 00:26 신고

      숲지기님의 말씀 중에서 첫 대문을 은유로 읽고나서
      둘째 대문을 읽으며 '그게 아닌가?' 했습니다.
      은유인지, 사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로댕의 제자 카뮤는 인체의 표현에서 로댕과 똑같았습니다.
      그만큼 그를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몸과 마음 정신을 그는 송두리째 점령해버리고 버렸습니다.
      그녀는 일생을 정신병원에 갇혀서 지내다가 그녀의 생명을 거두었습니다.
      숲지기님도 다 아실 사실을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를 미워합니다.

    • 숲지기2021.11.15 01:49

      로뎅은 그의 아내를 1864년에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하여 1917년 1월에 결혼하였습니다.
      그녀의 아내가 폐렴으로 운명한 게 같은 해 2월이니, 생애 마지막 단 몇 주만 법적인 부부로 산 것입니다.
      반면 끌로델은 로뎅이 미래의 아내와 동거 중인 상태에서 만났습니다.
      1883년 제자로 만나 연인이 되었고,
      10년 후인 1893년에 헤어졌죠.

      10년이나 지속했던 연애(불륜)에는 일화도 많을 것입니다.
      더구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 아닙니까. 알 사람들은 다 알았겠죠.
      그러니 이별 또한 어디 쉬웠겠습니까.

      지나고 보니 나쁜 남자였고,
      지나고 보니 허탈했겠죠.

      연애가 손익관계 혹은 이용(당)한
      남자와 여자의 전형만 같아서 불편합니다.

      불륜은 어지간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서요.


    • 숲지기2021.11.15 02:08

      꼰대같은 답글을 드리고
      마음에 걸려서 다시 씁니다요.
      실연을 하고 병을 얻은 끌로델에 대한 연민의 말씀 이해 못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로뎅과 끌로델은 예술과 도덕,
      두 가지의 잣대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 Chris2021.11.15 05:40 신고

    시에 대해서는 문외한 입니다.
    그래도 다들 시가 대단하다고 하니 눈에 힘을 주고 읽습니다.
    어떤 시는 내게 와 닿고 어떤 시는 솔직히 말해서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는 느낌인 모양입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좋은 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느낌은 나만의 것이니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아 참 편합니다.
    사랑이란 시에서 조금 느꼈습니다.
    그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니 쑥스러워서 그만 두겠습니다.
    이것이 제 한계인 모양입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좋아 보입니다.

    답글
    • 숲지기2021.11.15 15:05

      시는 음악 같은 것일 겁니다.
      언어라는 도구를 쓰니,
      음악보다는 구체화 된 반면 제한적입니다.

      (여기서부턴 TMI 인데요)
      애초에 작곡가가 곡을 만들지만
      그걸 연주하는 사람, 듣는 사람에 의해서 그때그때 다릅니다.
      시 또한 시인이 썼지만,
      그 결실은 읽는 사람이 가져갑니다.

      세상에 시는 많고요,
      읽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 Chris2021.11.15 15:37 신고

      제 생각과 거의 일치합니다.
      한가지 질문,
      TMI가 '굳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정보'란 뜻이 맞습니까. 잘 몰라서 구글에서 찾아보니 그렇게 나오네요.
      제가 보기보다는 좀 구식이라서... ㅋㅋ [비밀댓글]

    • 숲지기2021.11.15 16:12

      Too much information 그러 하실 수 있지만요,
      하나마나 한, 굳이 안 해도 되는
      사족 같은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저 또한 구식입니다요 하하

      [비밀댓글]

  • style esther2021.11.17 17:41 신고

    모르던 시...인데
    덕분에 낭독했습니다.
    저는 곽재구시인의 시중에 확실한 기억은
    '사평역에서'뿐이거든요.
    덩달아 여러가지 추억이 함께 떠올라 잠깐
    아련했네요. 감사합니다.

    답글
    • 숲지기2021.11.18 00:05

      기억을 떠올려 주셔서 감사해요 에스터님.
      읽은지 꽤 되어서 찾아 읽다가
      아예 가져왔습니다.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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