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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흑림살이 (235)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나에게 말을 붙이고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오래 있을 거야.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잘 모르겠어.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라고 말하게 될까.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라고.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내가 무엇을 사랑하고무엇을 후회했는지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끝없이 집착했는지매달리며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때로는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그러니까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그 윤곽의 사이사이,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어리고지워진 그..
땡벌을 죽였다.독일에서는 최소 1만에서 5만 유로의 벌칙금이 책정된 고귀한 땡벌*을.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책상에 앉아 노동에 몰입해 있던 어제 오후,나의 치렁한 머리카락 안팎을 쏘다니며 문제의 땡벌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놀라 일어나서 머리를 가로젓고 일렁여도 녀석은 그 놀이를 멈출 기세가 없었다.하는 수 없이 당장 손에 닿았던 휴지 여러 장을 접어 손가락힘으로 녀석을 짓누르고땡벌과 함께 휴지에 싸였던 내 머릿칼 스무 가닥도 싹뚝 잘랐다.땡벌을, 잘린 내 머리카락과 함께 휴지통에 장례하면서 아주 잠깐 승리의 안도감이 있었던 것 같다.녀석이 내 얼굴에 벌침을 쏠 적의가 있었는지, 땡벌 쪽의 변호사가 훗날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극구 정당방어, 맞아 그 정당방어였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앞서 썼듯이..
등산을 해서 올라가려 했지만 그냥 차 타고 바로 산 위의 산수도원으로 갔다.건물 주변에 잔디 주차장이 여기저기 있었지만 우리를 위해 비워둘리 만무했다. 하는 수없이 어슬렁어슬렁 산을 내려와서 겨우 주차를 하니, 수도원 산 위까지 걸어야 하니 그나마 아주 조금 등산할 기회가 생겼었다. 더위에 지친 이들이 그늘에 앉아 있다.우리 또한 주유소를 찾느라 ...ㅎ 수도원 아랫동네인 오베르네(이날 우리는 이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의 에티코 공작의 딸 오딜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딸의 불행을 두고볼 수 없어서 죽이려 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피해 딸을 구하고자 수도원에 맡겼다.수도원에서 12세가 된 오딜리아는 레겐스부르크 에르하르트에서 세례를 받을 즈음 시력을 되찾았다.그러므로..
엘사스 지역, 스트라스부르크 옆, 성 오딜리아* 산에 올랐다.성오딜리아라는 성인의 이름을 딴 수도원이 있는 이 곳은엘사스 지역 뿐만이 아니라 중부 유럽 일대에서도 가장 알려진 성지의 하나. 차 한대를 다 채울 4명 친구끼리 한 주 전에 의기투합, 계획했었다.원래는 일찍 출발해서 수도원까지 걸어올라 아점심을 먹자 했지만 다 모여서 출발지를 벗어난 게 정오가 지나서였다.우리 중 피아니스트 친구 F가 무려 3시간도 더 늦게 왔기 때문이었다.나와는 음악 작업을 함께 하고 있기도 한 이 친구는모임때마다 번번이 늦어서 "시간예술 하는 친구가 왜 이모양이냐"는 핀잔을 주어온 터였는데이날은 아예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지각을 했다.나 말고 다른 2명은 이 와중에도 그래도 와 준 게 어디냐는 표정이었다.그러고 보니 ..
아 볕이다! 이른 아침 여름볕이 비스듬히 들어올 땐 '아, 이 은총을 어쩌지?" 싶어서마냥 그 곳에 우두커니 서 있게 된다. (사실은 너무 좋아서 우물쭈물...) 식물들이 볕 아래 벙긋벙긋 웃는 모습,나도 그들 닮은 얼굴로 핸드폰 사진을 찍는 중. 오늘은 특히 2주 휴가의 첫날,책장을 스치다가 움베르또의 '장미이름으로'가 눈에 띄어 꺼냈다.별써 몇 년째 첫부분만 적어도 서너 번 반복하였지만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던 책. 여름볕이 좋아커피 홀짝이며 사진 몇장 담다 보니 배가 고파, 아침을 급히 차렸다.아보카도를 얹은 곡밀호박씨빵 고목나무가 여름볕을 가리기 시작하면서 아침식사와 함께 신문을 다 읽고'장미이름으로' 또한 조금 읽고커피도 두잔 더 내려서 마셨다. 이런 평범..
주말아침 청소삼매경일 때 절친 유타가 문자를 했다."산책갈래?" 라고 라고 해서 그러자 했더니대뜸 "등산은 어때?" 라고 강도를 높힌다.고민 1초도 없이 "그러지 뭐." 라고 하고몇 시간 만에 배낭 꾸려서 떠났다. 친구나 나나 요즘 부쩍 쌓인 게 많아서 어디 뭐든 좀 꾹꾹 밝고 와야 할 처지, 그래서 원 없이 밟고 또 밟은 끝에 전망대에 올랐다.앞 사진의 오른쪽 표지판을 찍은 사진.근처 흑림 도시(마을)의 지명 표시가 되어 있다. 오른 쪽 아래 길게 보이는 도시가 밧 헤렌알프*.수도원과 박물관, 숲병원 등이 자리한, 지역에서 꽤나 알려진 관광명소이다. 전망대의 왼쪽 전경.왼쪽 가장자리, 산을 몇 개 너머에 라인강이 지렁이처럼 뉘어 흐르고 있다. 종일 웅크렸던 하늘이 이때쯤 굵은 빗방..
여름의 한 복판이다.뜨거운 시간을 산 하루를 위로하듯 거의 날마다 대지의 이마 위가 붉게 물든다. 해가 막 지고 어둠이 거의 올림픽 1백미터 달리기 선수의 속력처럼 밀려드는 때. 모종하기엔 한참 늦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늦어진 모종을 일터 동료로부터 받고 부랴부랴 만든 호흐벳(Hochbeet)에 심었다.가지 토마토 고추들.... 이른 낙과,사과나무 아래 잡초를 정리한 덕분에 그나마 덜 지저분하다. 어린 포도나무, 햇수로는 3년이지만 올해 옮겨 심고 나름 잘 자라고 있다.글로디올러스 붉은 꽃은 우연히 동석하였을 뿐... 볕이 점점 줄어들고어둠이 대지를 장악해가는 중 노을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머잖아 호미를 씻고 나도 하루의 땀을 씻어야지. 오두막 안 풍경...
딱따구리라는 새에 대해 오래 생각했었다.학술적이거나 탐구를 위해서가 아닌, 다만 그들 작은 몸이 쉼없이 해대는 망치질 때문이었다.제목에도 썼지만 하루 1만 2천번까지 망치질을 한다고 하니 몸체는 23-26cm,몸무게 60-90g의 제구로 견디기엔 중노동이 아닐 수 없다.어디까지나 사람에 준한 것이지만 그들은 유독 휴일에 부지런하다.예를 들어 공휴일이나 일요일 혹은 휴가에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중일 때가 그렇다.독일은 주말이나 공휴일에 잔디를 깎거나 기계음 같은 소음을 내는 것이 법에 위배되어 즉각 벌금조치가 내려지지만 인간이 정한 휴일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딱따구리는 휴일만 골라서 망치질을 해대는 듯 하다.(평일에도 딱따구리가 부지런할까? 사실 난 잘 모른다.) 교장선..
비가 몇 주째 내리다가 용케도 맑은 날, 호기심 하나로 계단을 오른다. 성벽 오른쪽 아랜 뭘까? 성 안으로 통하는 개구멍? 가파른 계단은 오르라고 있는 것. 오르는 정도에 따라 앞 풍경도 달라진다. 사람이라곤 나 외엔 없어서 낙엽을 밟는 내 걸음소리 뿐이다. 문득 먼 곳을 보고 방금 올라온 아랫동네도 내려다 본다 가파른 계단이 계속되고 위를 향해 오른다. 오른 지점에서 뒤를 돌아 보면 이런 풍경. 아래 박물관과 교회, 또 그 아래로 마을이 또 그 아래엔 시냇가가 흐를 것이다. 무너진 성벽이나 임의로 가림을 해 놓은 나무막대기에도 검푸른 이끼들이 점령해 있다. 너도밤나무잎이 거의 카페트처럼 계단에 뿌려지고 있다. 이 성엔 벌써 몇 번이나 이런 풍경이 펼쳐졌을까. 여기가 차고입구일까. 담쟁이 너머 성벽 위에..
몇 주 전 모임을 가졌던 친구네 동네, 진입로 사진이다. 무심코 올려다 본 왼쪽 위에 솟은 저건 성(Burg) 같은데? 서행을 하며 손전화 사진을 찍으며, 세세한 것들은 친구에게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입구에 적힌 동네 이름 나이덴슈타인Neidenstein, 직역을 하면 '부러운 돌', '탐나는 돌'쯤 되겠지만 마을의 기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친구에게 또한 물어봐야 겠다. 높은 지대에 성을 쌓고 아래 길 옆 오른 쪽으로 마치 이 동네를 감싸듯 둥글게 하천이 흐른다. 중세 장원제도와 군사적 요새로서 이상적인 지형인 셈. 저 성 주인이 남작(Baron) *이란다. 남작의 땅은 넓고 넓어서 근처에 어지간하면 그의 것이라 했고 친구도 텃밭으로 그의 땅을 조금 소작하고 있다 하였다. 여기까지가 마을에 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