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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텃밭 (4)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유난히 올해 나는 텃밭에서 무능하다. 여름이 되면서부터 여기저기 설치던 코스모스가 이제는 대놓고 섭정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꽃들이 저토록 뻔질나게 길 섶에 나와 놀아도 교통정리를 할 엄두도 못낸다. 눈치껏 조심조심 비켜다니는 저 길도 여차하면 막아버린다 할까봐. 기세 등등하던 고추밭 상추밭은 기가 팍 죽었고, 토마토밭은 지들끼리 바빠서 참견도 안 한다. "연분홍 치마의 꽃바람이 휘날~ 리더~ 라~ " (더 이상은 모름 ㅎㅎ)~ , 이런 가사의 뽕짝이 연상되는 코스모스꽃들 꽃들의 춘추전국시대. 누구든 좋아, 맘대로 펴봐! 마치 누가 그러기라도 한 것처럼 ㅎㅎ 작은 별들처럼 꼬꼬마 흰꽃을 무리지어 핀 것은 부추, 코스모스 등살에 숨어숨어 피었다. 얼마간은 저들의 세상에서 꼼짝도 못하고 지낼 듯 하다. 여..
추수를 하고 있다. 농장의 풀과 나무들이 저마다 조상에게로 받은 모습으로 열매를 맺었다. 어떤 것들은 정성껏 돌보았고 어떤 것들은 마치 남의 집 자식처럼 쳐다도 안 봤는데, 보란 듯이 아름드리 결실을 선물한다. 윗줄 오른쪽이 성직자의 모자고추 혹은 종모양고추, '2017년 그해의 고추'의 영예를 차지했던 종류. 맨 아래 오른 쪽은 검은 토마토. 가만 보니, 내 의도보다는 자기들 배짱대로 자란 것들이 대부분이네. 애호박은 안 자라고 안 열리기로 동맹이라도 맺은 듯 알뜰하게 제자리 멈춤을 하였고, '성직자의 모자'라는 이름의 고추(혹은 종모양고추)는 가지가 부러질지 모르니 게으름도 좀 부리며 자라라 했건만 듣는 둥 마는 둥 하루가 다르게 저 종모양의 고추를 새로 달고 나왔었다. 오른쪽 보라감자 사이에 하바네..
"시인의 텃밭"...... 이 제목에 걸맞는 이름으로 헤르만 헤세 만한 사람이 있을까. 헤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이곳 남부 독일의 흑림이니, 텃밭 농사일을 할 때 헤세를 떠올릴 때가 많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문학작품 속에는 직,간접으로 흑림의 숲마을과 개울이 등장한다. 그의 소설의 등장인물을 연상하게끔 하게 살고 있는 지인들도 이 흑림에는 여럿 있다. 황야의 늑대처럼 또는 골드문트나 나르치스처럼 ........ 가이엔호프의 헤세가 살던 집. 꽤 오래 전에 찍어온 사진들이지만 자주 꺼내어 보게 된다. 헤세는 거의 평생동안 텃밭을 가꾸며 살았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18세쯤부터 20대 초반까지 아주 잠시 독일 튀빙엔 시내와 스위스 바젤의 서점 점원으로 일한 경험 외엔 그 어떤 얽매이는 직업도 가져본 적..
9월입니다 지난 8월 한달은 빠른 새가 비상하는 속도로 지나갔습니다, 마치 모르는 사이에 시간도둑이라도 다녀간 것처럼 말이지요. 숲과 들풀들도 바쁘게 성숙해져간 한달, 저는 시 한편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보냈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로써 지리하고 편편한 저의 나날들에 조금은 굴곡의 변화를 가져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9월에 어울리는 시들을 써주신 시인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도 편지 쓰기에 임합니다. 타지에서 쓰는 컴인지라, 남의 사진들로만 편지를 채운 게 좀 걸리긴 서 합니다만......... 행운의 9월을 빌어드립니다. 신발論 /마경덕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무더기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