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시인의 텃밭, 헤르만 헤세의 가이엔호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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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텃밭, 헤르만 헤세의 가이엔호프

숲 지기 2017. 9. 4. 00:26

Bildergebnis für hesse aquarell

 

"시인의 텃밭"......

이 제목에 걸맞는 이름으로 헤르만 헤세 만한 사람이 있을까.

헤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이곳 남부 독일의 흑림이니, 텃밭 농사일을 할 때 헤세를 떠올릴 때가 많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문학작품 속에는 직,간접으로 흑림의 숲마을과 개울이 등장한다.

그의 소설의 등장인물을 연상하게끔 하게 살고 있는 지인들도 이 흑림에는 여럿 있다.

황야의 늑대처럼 또는 골드문트나 나르치스처럼 ........

 

 

 

 

 

 

가이엔호프의 헤세가 살던 집.  꽤 오래 전에 찍어온 사진들이지만 자주 꺼내어 보게 된다.

 

 

 

 

 

헤세는 거의 평생동안 텃밭을 가꾸며 살았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18세쯤부터 20대 초반까지 아주 잠시 독일 튀빙엔 시내와 스위스 바젤의 서점 점원으로 일한 경험 외엔 그 어떤 얽매이는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는 그는 농삿일과 꽃 가꾸기를 소일거리로 둔 전업작가의 삶을 살았다..

헤르만 헤세를 이야기 할 때는그 무엇보다도 작가적인 면을 우선적으로 이야기 하여야 하겠지만, 문학적인 견해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번역되고 여러 통로를 통해다양하게 해석되어온 바, 굳이 블록에서까지(잘 알지도 못하면서)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 입을 다물 것이다. 대신 문학 그 외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그의 일생과 농사이야기,수채화그리기,나비수집 등에 대해서는 자주 쓸 것 같다.

 

 

 

 

 

 

Dichter Hesse bei der Gartenarbeit, Sohn Bruno hilft mit.

젊은 아빠 헤르만 헤세, 맏아들 브루노와 보덴제 호숫가 가이에호프애서 텃밭을 고르는 모습

 

 

 

 

 

1904년 헤세는 보덴제(Bodensee) 호수변에 집을 구하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자급자족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전기도 물도 없는 집을 빌려서 일일이 손으로 밭을 일구고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지자 그 곳을 윗밭이라 칭했다..

윗밭을 만든 그 아래에도 하나의 밭을 더 일궜는데 그 이름을 아랫밭이라 지었다는데, 뭐 당연한 말씀!

농촌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헤세는 신중했다. 호숫가의 집과 땅을 첫해는 모두 빌렸었지만,자신이 생긴 이듬해 자신의 이름으로 집도 땅도 장만하게 되었다.

밭 옆에 길을 내고 잔디밭도 만들고 길 옆엔 지그제그식으로 밤나무 여러 그루도 심었다. 그의 고향 마을 칼브(Calw)에는 흑림에서도 밤나무가 유난히 많은 동네로 알려져 있는데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그곳으로 들기 2년 전 헤세는 9년 연상의 여인 마리아 베르노울리를 만났고 또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스위스 바젤에서도 꽤 알아주는 가문의 잘 나가던 여류 사진작가였었다.

그에 비해 헤세는 당시만 하여도 보잘 것 없는 문학청년에 불과하였다. 어줍잖게 작품집을 낸 적이 있긴 하였지만 흔히 말해서 잘 나가는 케리어우먼이었던 마리아와는 무명작가의 기울어진 조합이었던 것.

 

마리아는 헤세가 대성하게 될 것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사랑 하나만 내세워서 결혼을 했을 것이고, 신혼의 부부가 호숫가 맨땅을 일구게 된 것도 그녀의 주장이 컸을 것으로 생각한다.

당시 19세기 초, 유럽에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자유롭고 청빈한 삶을 동경하는 이들이 많았다. 마리아 헤세도 그 중 한 사람으로, 남편 헤세와 톨스토이처럼 살아갈 꿈을 꾸었었다고도 한다.

이 시절 헤세부부에게서 3명의 아들들이 태어났다, 브루노, 한스 하인리히, 마틴이 그들이다. 브루노* 등이 그들이다.

 

 

 

 

 

 

헤세 살던 집과 박물관 입구이다. 호수 주변 주택가에 있어서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찾지 못할, 꼭꼭 숨어 있는 듯한 입구이다.

 

 

 

 

 

사람 사는 일의 거개가 그러하듯 아이들을 낳고 행복했던 몇년간의 신혼생활 후에 헤세는 연상의 아내 마리아(애칭으로 '미아'라고 불렀음)와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1918년 급기야는 별거에 이혼까지 하게 된다. 헤세가 여행이 잦아서 집을 자주 비웠던 것이 파탄의 원인이라고 하는데, 부부사이의 일이라서 당사자들 외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정답이지 싶다.

마리아는 헤세와의 결혼생활 중에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다(실제로 이들이 이혼을 한 후 마리아는 바로 정신병동에 입원을 함).

문학인으로서는 대성을 하였지만 이상적인 남편감은 되지 못하였다고 그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말한다. 이기적이고 편협되고, 때로는 냉소적이어서 그의 여인들은 외로움을 숙명처럼 떠 안고 살아야 했다.

오랫동안 신경 쇠약 증세를 가졌었던 헤세가 ADHD(주의력 결핍증)을 앓았다 하는 주장이 근래에 제기되고 있는데, 그의 아내의 역할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번이나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쪽, 그러니까 여인들이 대부분 그를 더 좋아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헤세는 복도 많은 사람이다.

 

 

 

 

 

Bildergebnis für hesse aquarell

헤세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생뚱맞은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심리치료를 하면서 그는 수채화그리기를 시작하였다. 처음엔 치료의 한 방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전시회를 따로 열 만큼 수채화 그리기는 그의 인생에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호수마을인 이곳에서 생활할 당시, 그는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주옥 같은 많은 작품을 생산하게 된다.

생활을 단순히 하고 창작의 세계는 날로 넓혀갔지 않았을까.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했던 헤세의 텃밭인생이 시작된 가이엔호프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적한 농촌마을이다(내가 보기엔).

 

 

 

 

 

입구에 들어서면 중후한 정장차림의 헤르만 헤세의 사진이 방문객을 맞는다.

 

 

 

 

 

사실 생전의 헤세는 방문객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텃밭일을 할 때는 방문객 사절이라는 팻말을 걸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쳐(?)들어오는 극성 문학팬들에게는 아주 싫은 내색을 하며 외면하였다고.

 

헤세가 일군 밭터는 지금 개인소유가 되어서

방문객들이 자유로이 들어갈 수 없도록 했다, 헤세 생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호기심어린 외부의 관심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훗날 1927년 7월 2일에 50세 생일 기념으로 이곳에서 가까운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도시 콘스탄츠의 국립극장에서 수채화전시겸, 파티도 했던 모양. 상세 내용은 글자가 너무 작아서, 사진을 찍어온 나도 읽기 곤란 ㅎㅎ

 

 

 

 

 

 

 

 

 

 

 

 

 

헤세의 집필실에서 바라다보이던 보덴제 호수풍경.한여름인지라 수면에는 요트 몇척이 유유히 떠 있었다.

 

 

 

 

 

 

 

오늘은 이만 쓰고.....

이 난은 다음 기회에 두고두고 쓸 예정이다.

 

 

 

 

(사진 휴가 갔음)............
헤르만 헤세와......
이렇게 그를 만났다

 

 

*브루노(Bruno 1905–1999, 화가 그래픽디자이너), 한스 하인리히(Hans Heinrich 1909–2003, 장식가),마틴(Martin 1911–1968, 사진작가)

 

  • eunbee2017.09.04 14:21 신고

    오호호~~ 이렇게 멋진 포스팅을 주실줄 알았어요.
    헷세 할아버지의 안경이 늘 정답게 보이던 사진들,
    그러나 그분의 '유리알 유희'는 어찌나 아리송하던지요.
    선물해주신 분의 정성을 생각해서 억지로 읽어내던 일이
    새삼스럽네요.ㅎ 데미안은 한때 우리들의 독서 목록 제 일
    위치가 아니었는지요. 그의 시도 좋아했지요.

    이제는 고향을 같이하고 있는 숲지기님께,
    그곳을 숲지기님 보다 먼저 고향으로 정하신 그 분의
    시를 옮겨 볼게요.^^

    <마을의 저녁 무렵>

    양떼를 몰고 목동이
    조용한 오솔길을 가고 있다.
    집들은 잠이 오는 듯
    벌써 깜빡이고 있다.

    나는 이 마을에서, 지금
    단 하나의 이방인
    슬픔으로 하여 나의 마음은
    그리움의 잔을 남김없이 비운다.

    길을 따라 어디로 가든
    벽난로에는 따뜻한 불이 타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고향과 조국을 느껴보지 못했다.

    **

    헤세의 시를 다 읊고나서
    해저문 숲 속 고요로운 집, 문고리에
    열쇠를 채우며 하루를 닫는
    숲지기님의 모습을 그려보며.. 저녁인사를 드립니다.

    "늘 평온한 밤 보내세요."

    답글
    • 숲지기2017.09.04 16:53

      고맙습니다.
      헤세의 시도 잘 읽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랐지만 자발적으로 떠났던 고향을
      생각합니다.

      작가라면, 고향은 그냥 고향이 아니지 싶습니다
      어느 부분의 감각세포들이 보다 따갑게 반응을 하는 작가라면 말입니다.
      헤세는, 독일인이지만 머릿속엔 인도의 늙은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는 듯 살았지 싶습니다. 혼자만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교 같은데는 적응도 못했고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음날을 세운듯 냉소적인 문구는
      독일인의 적혈구에 근거했다고 봅니다.
      그게 내재했기 때문에, 그 공통분모가 있어서
      그때도 성공했고 지금도 먹히고 있고요.

      댓글을 자꾸만 이원론적으로 달게 되네요.
      글을 쓸 줄 모르는 탓이지요. 또한 무식하기도 하고요 제가...ㅎ
      감자를 캐러 밭으로 갑니다.
      보라색이 선명한 감자가 제 밭에서 자라나 보석처럼 숨어 있걸랑요 ㅎ

      잘 주무십시오 은비님.

  • 지리산 아줌마2017.09.05 01:11 신고

    젊은 날, 헷세를 참 좋아했었는데...
    너무 멋집니다. 숲지기님.

    답글
    • 숲지기2017.09.05 14:36

      길게 썼었는데 댓글이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필요에 의해 지웠을까요?
      다시 씁니다.

      지리산 아줌마님, 반갑습니다.
      님의 블록에 가서 많은 것을 배웠지요.
      앞으로도 자주 가 뵐 것 같습니다.

  • 숲지기2017.09.05 14:34

    이 글을 깃점으로 얼마간 인터넷으로부터 멀리 있게 됩니다.
    독일에서는'메디언 다이어트'라고 하지요.

    제 블록에 들러주신 모든 분들, 행복하십시오.

    답글
  • cecilia2017.09.05 15:11 신고

    아주 오래 전 데미안을 읽으면서 헷세를 좋아했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생뚱맞다고 표현하신 헷세의 그림을 보면서
    그가 그림도 그렸다는 것도 오늘 첨 알았구요.

    독일에는 '메디언 다이어트' 라는 것도 있군요,

    답글
    • 숲지기2017.09.28 15:13

      세실리아님, 반갑습니다.
      헤세가 살아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하긴 작품을 통해서도 간접 조우를 할 수는 있지만요.

      메디언다이어트를 필요할 때마다 합니다.
      어떤 땐 문으로부터 아주 먼 숲으로 귀화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 안나2017.09.18 14:42 신고

    뒤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드디어 다 읽었지요.
    참 곱게 사시는구나 그곳도 많이 외로울텐데...
    친구신청은 언제 새 소식이 뜨는지 기다릴려고...
    제 포스팅 읽기 부담 갖지 마시구요.
    일 하신후 돌아와 새 포스팅 있을때까지
    빈 방에 저 혼자 놀러왔다 갈께요.

    이곳은 기온이 벌써 10도 이하로 내려갔어요
    이상기온 탓인지 단풍이 고울거 같지 않은데
    그곳도 그럴까요?
    건강하게 일하시고 있길~ [비밀댓글]

    답글
    • 숲지기2017.09.28 15:15

      대단하십니다 안나님.
      독일친구에게 안나님 이야기를 했어요.
      혹시 다시 바덴바덴이라도 오시면 같이 뵈어요.
      [비밀댓글]

  • 추풍령2018.04.13 17:39 신고

    헤르만 헷세에 관한 님의 블로그를 이제야 읽게 되였네요. 헷세의 전기를 잘 쓰셨읍니다 그토록 주옥같은 시와 수필을 남겨 놓은 헷세도 본인 자신 좀 괴벽한 면이 있군요.
    결혼을 3번이나 하다니....이 글을 읽으려고 열어 본 창에서 우연히 숲지기님의
    실물 사진도 보게 되네요. 낭만 시인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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