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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나의 테오 형제들. 지독한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인간을 숙주로 하여 기생하는 전대미문 새로운 종의 미생물이 나타나 한 사람을, 아니 한 마을을 한 나라를 아니 전 세계를 송두리째 점령해 갔다. 감염이 되면 가장 먼저 인지 능력에 신호를 보내는데 미친 듯 날뛰고 흥분하는 것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감염자는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다는 신뢰를 가지고 자신만의 도덕성, 학문적인 다달음, 외골적인 신앙을 철저히 신봉한다. 이로써 내 것이 아닌, 내 생각이 아닌 것을 배격하고 불신하니 사회는 험악해지고 그에 따른 불안이 날로 커져만 갔다. 전염병은 마치 회오리바람 같았다. 병이 퍼져갈수록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워 졌다. 슬픈 가운데 분노하였다. 판단력의 혼란에 빠진 나머지 이..
기차도 버스도 없었다. 기껏해야 마차가 최고의 교통수단일 때였던 1786년 9월 3일 새볏 3시 여정에 올랐다. 소위 야반도주였던 것. 어머니는 물론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은 물론, 처음엔 이름도 가명을 썼다, 이유는 뻔하다, 누구에게도 알려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는 , 그러니까 37세의 괴테는 성실한 바이마르의 행정장관으로서 창작적인 욕구는 눌릴 대로 눌려 있었고, 7세 연상의 유부녀와 플라토닉한 연애를 자그마치 12년째나 지리지리하게 끌던 중이었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그리스 로마의 문화에 굶주릴대로 굶주려 있었다. 티쉬바인이 그린 괴테, 로마근처 "캄파냐에서 괴테"라는 제목의 수채화. "Goethe in der Campagna" - Gemälde des Goeth..
한때는 문예의 중심지로서 내노라 하는 당대의 지성들이 모여들었던 바이마르, 독일살이 20년이 지났건만 나는 여전히 그곳에 발 한번 내딛지 못하였었다. 바이마르가 독일고전문학*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춘사월 봄인 지금, 괴테*의 봄정원이 참 보고 싶었었다. 늘 그렇듯 다른 일정을 소화하는 김에, 마지막 하루를 고스란히 떼어서 내 몫으로만 썼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학자들에 의해 괴테의 작품들이 연구되는 것으로 안다. 전문성이 희박한 나는 그날의 감상을 피상적이고 짧게 쓰기로 한다. . 위에 나란히 보이는 두 사람은 절친한 문학친구, 쉴러*가 바이마르에서 문학잡지를 발행했던고로 당시에도 대작가로서 명성을 날리던 괴테와 가까워졌었다. 괴테가 50년 넘게 살았던 집이다. 소위 뼈대있는 명문가의 기대주로..
요 며칠 낯선 마을을 운전하는 중, 길섶까지 가지를 늘어뜨린 목련꽃들을 자주 본다. 살짝 가슴이 데이는 순간이다. 어둠이 덜 가신 새벽녘임에도 잎 없이 피어난 목련꽃 가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꽃잎이 막 벙그는 목련은 아사코를 연상케 한다. 수필가 피천득씨의 속의 그녀를 나는 여학교 국어책에서 만났었고 4월 이맘때면 그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산다. 목련꽃이 피어 있던 모교에서 교복입은 우리는 그림 같은 연못가 벤치에 앉아 무슨 이야긴지를 했었다. ...... 작가는 아사코를 3번 만났다. 만난 횟수만큼 등장하는 꽃도 3종류인데 스위트피, 목련꽃,백합이 그것이다. 첫 만남에서는 '아사코는 '스위트피이'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피이'는 아사코같이 어..
"시인의 텃밭"...... 이 제목에 걸맞는 이름으로 헤르만 헤세 만한 사람이 있을까. 헤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이곳 남부 독일의 흑림이니, 텃밭 농사일을 할 때 헤세를 떠올릴 때가 많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문학작품 속에는 직,간접으로 흑림의 숲마을과 개울이 등장한다. 그의 소설의 등장인물을 연상하게끔 하게 살고 있는 지인들도 이 흑림에는 여럿 있다. 황야의 늑대처럼 또는 골드문트나 나르치스처럼 ........ 가이엔호프의 헤세가 살던 집. 꽤 오래 전에 찍어온 사진들이지만 자주 꺼내어 보게 된다. 헤세는 거의 평생동안 텃밭을 가꾸며 살았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18세쯤부터 20대 초반까지 아주 잠시 독일 튀빙엔 시내와 스위스 바젤의 서점 점원으로 일한 경험 외엔 그 어떤 얽매이는 직업도 가져본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