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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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17. 9. 1. 01:45

 

 

 

 

 

 

9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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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한달은 빠른 새가 비상하는 속도로 지나갔습니다,

마치 모르는 사이에 시간도둑이라도 다녀간 것처럼 말이지요.

숲과 들풀들도 바쁘게 성숙해져간 한달, 저는 시 한편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보냈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로써 지리하고 편편한 저의 나날들에 조금은 굴곡의 변화를 가져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9월에 어울리는 시들을 써주신 시인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도 편지 쓰기에 임합니다.  타지에서 쓰는 컴인지라, 남의 사진들로만 편지를 채운 게 좀 걸리긴 서 합니다만.........

 

 

행운의 9월을 빌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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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論

 

/마경덕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무더기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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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 2

 

/김사인

 

 

 

 

 

 

 

이 길, 천지에 기댈 곳 없는 사람 하나 작은 보따리로 울고 간 길

 

그리하여 슬퍼진 길

 

상수리와 생강나무 찔레와 할미꽃과 어린 풀들의

 

이제는 빈, 종일 짐승 하나 지나지 않는

 

환한 캄캄한 길

 

 

 

열일곱에 떠난 그 사람

 

흘러와 조치원 시장통 신기료 영감으로 주저앉았나

 

깁고 닦는 느린 손길

 

골목 끝 남매집에서 저녁마다 혼자 국밥을 먹는,

 

돋보기 너머로 한번씩 먼 데를 보는

 

그의 얼굴

고요하고 캄캄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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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여관
/안도현


왜 이렇게 높은 곳까지 꽃대를 밀어 올렸나
원추리는 막바지에 이르러 후회했다
꽃대 위로 붉은 새가 날아와 꽁지를 폈다 접었다 하고 있었다, 원추리는
어쩔 수 없이 방을 내어주고 다음 달부터 여관비를 인상한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다
멀리서 온 것이나 키가 큰 것은 다 아슬아슬해서 슬픈 것이고
꽃밭에 널어놓은 담요들이 시들시들 마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어린 잠자리들의 휴게소로 간판을 바꾸어 달아도 되는지 면사무소에 문의해 볼까 싶었지만
버스를 타고 올라오기에는 너무나 멀고 낡은 집이어서 관두기로 했다
원추리 꽃대 그늘이 흔들리다가 절반쯤 고개를 접은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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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들은 땅의 미소이다"

 

 

 

 

도둑들
/안도현


생각해보면, 딱 한 번이었다 내 열두어 살쯤에 기역자 손전등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푸석하고 컴컴해진 초가집 처마 속으로 잽싸게 손을 밀어넣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 내 손 끝에 닿던 물큰하고 뜨끈한 그것, 그게 잠자던 참새의 팔딱이는 심장이었는지, 깃털 속에 접어둔 발가락이었는지, 아니면 깜박이던 곤한 눈꺼풀이거나 잔득잔득한 눈곱 같은 것이었는지,
어쩔 줄 모르고 화들짝 내 손끝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던, 그것 때문이었다

나는 사다리 위에서 슬퍼져서 한 발짝 내려갈 엄 두도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허공을 치며 소리내어 엉엉 울지도 못하고, 내 이마 높이에 와 머물던 하늘 한 귀퉁이에서 나 대신 울어주던 별들만 쳐다보았다
정말 별들이 참새같이 까맣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울던 밤이었다

네 몸 속에 처음 손을 넣어보던 날도 그랬다
나는 오래 흐른 강물이 바다에 닿는 순간 멈칫 하 는 때를 생각했고 해가 달의 눈을 가려 지상의 모든 전깃불이 꺼지 는 월식의 밤을 생각했지만, 세상 밖에서 너무 많은 것을 만진 내 손끝은, 나는 너를 훔치는 도둑은 아닌가 싶었다
네가 뜨거워진 몸을 뒤척이며 별처럼 슬프게 우는 소리를 내던 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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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살이라면

 

 

/문정희

 

 

 

 

내가 화살이라면 

 

오직 과녁을 향해

 

허공을 날고 있는 화살이기를

 

 

 

일찍이 시위를 떠났지만

 

전율의 순간이 오기 직전

 

과녁의 키는 더 높이 자라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팽팽한 허공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날고 있음이 전부이기를

 

 

 

금빛 별을 품은 화살촉을 달고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고독의 혈관으로

 

불꽃을 뚫는 장미이기를

 

숨 쉬는 한 떨기 육신이기를

 

 

 

길을 알고 가는 이 아무도 없는 길

 

길을 잃은 자만이 찾을 수 있는

 

그 길을 지금 날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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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들은 흑림 Gengenbach의 골목사진입니다. 

 

 

 

 

 

 

 

  • eunbee2017.09.01 02:13 신고

    초하루에 올려 주시는 시,
    예전 거도 모두 감상하며 고마워했다죠. 지난 달 어느날에.^^
    그믐인 어제부터 기다렸지요. 어느땐 그믐날에 올려주신적도
    있거든요. 신발론,이 특히 맘에 저리네요. 그러한 신발과 함께
    이제 오늘의 외출을 시작하려한답니다. 신발 생각을 특별히
    하게 되는 발걸음일 것 같아요.

    9월!
    멋지게 채색하세요.^^

    답글
    • 숲지기2017.09.01 13:40

      고맙습니다 은비님.

      시 읽는 삶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물론 시 없이도 잘만 살 수 있지만 말입니다.
      같은 일상인데도 시를 읽고 살 땐 그 내용이 달라지지요.
      어쩌면 시도 음악처럼 시간예술이어야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시들도 음악처럼 연거퍼 되뇌이면서
      몸 속 혈관 깊숙이 흐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를 읽을 땐 그래서 아주 작게라도 소리를 내어 읽으면 좋은 것 같아요.
      네, 그러므로 리듬을 내재한 시가 아주 좋구요.

      은비님네 고슴도치가 여전히 뇌리에 있어서 웃음이 나옵니다.

  • eunbee2017.09.02 00:42 신고

    숲지기님, 우리 언제 한번 쁘띠프랑스(스트라스부르) 이쁜 카페에서 만날 수도 있겠어요.ㅎ
    보쿰 사는, 친척보다 가까이 지내는 젊은?남자친구랑 우리애들이랑 독일의 작은 마을과
    성들을 돌아다녔으나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랍니다.ㅋ 다음 기회에는 숲지기님 계시는
    아름다운 골짜기 마을들을 순례하고 싶어요. 지난해에 뒤셀도르프 그 친구가 독일여행 제안했었는데
    제가 한국 올일이 생겨서 미루어 두었어요.

    스트라스부르 살 때엔 다리 건너 독일 쪽 강가에서 망중한을 즐기기도 피크닉을 하기도 했지요.
    오바마도 우리가 건너 다니던 다리를 건넜을까요? 새삼 흥미롭네요.ㅎ
    그때 켈에서 사서 걸치고 다니던 판쵸는 아직도 애용한답니다. 20년 전인데 말이죠.
    스트라스부르에는 큰딸의 시댁이 있어요. 이래저래 깊은 인연이 맺어진 땅, 흑림산에서도 보인다니...
    왠지 숲지기님께 더 큰 친밀감이 생기네요. 그리운 그곳 가까이 사시는 멋진분! 참 반가워요.^^*

    답글
    • 숲지기2017.09.02 01:32

      어머나....
      은비님 제가요 어제까지 보훔을 다녀왔습니다.
      정확히는 보훔 옆의 비텐(Witten)이라는 작은 대학도시인데, 그곳 대학병원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었지요.
      그곳 사람들이 어찌나 오픈되었고 친절한지 참 아늑해지는 곳이었어요.
      혼자 직접 운전을 해서 오가는데 산과 산을 이어서 만든 아우토반에 기진맥진합니다요.

      그리고 켈의 유럽다리 자료를 찾아보니 2009년 4월 4일자 신문이네요.
      http://www.rp-online.de/politik/ausland/symbolisches-treffen-auf-der-europabruecke-aid-1.2300811
      나토 정상 회의를 슈트라스부륵에서 하면서
      오바마 사코지 메르켈.... 등등이 아주 여러 사람들이 평화와 화합 뭐 그런 상징으로 다리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지금은 다리 위에 이름을 쓴 열쇠들이 아주 많이 달렸습니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고, 무지무지 많습니다.

      워낙 제가 집순이인지라,
      흑림 주변에만 사브작사브작 다니는 편인가 봅니다 ㅎ
      여기 오시면 뵙고 싶습니다 은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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