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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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하루입니다.

숲 지기 2017. 10. 1. 01:24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 아랫마을 가게에 들렀는데

예상대로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그때 만난 하늘그림을 보여드립니다.

 

이번 달엔 그래서 무지개 소재/주제 시들을 몇편 골랐습니다.

절감하시고, 

무지개처럼 산뜻한 10월을 맞으세요.

 

 

 

 

 

해 쪽으로 운전하며 귀가하던 중에 소나기가 쏟아졌지요 저렇게..... 

그때 차 뒷거울을 보았는데, 아래 사진들이 바로 뒷쪽에 이어진 풍경들입니다.

 

 

 

/임영조

 

 


무조건 섞이고 싶다
섞여서 흘러가고 싶다
가다가 거대한 산이라도 만나면
감쪽같이 통정하듯 스미고 싶다


더 깊게
더 낮게 흐르고 흘러
그대 잠든 마을을 지나 간혹 
맹물 같은 여자라도 만나면
아무런 부담 없이 맨살로 섞여
짜디짠 바다에 닿고 싶다


온갖 잡념을 풀고
맛도 색깔도 냄새도 풀고
참 밍밍하게 살아온 생을 지우고
찝찔한 양수 속에 씨를 키우듯
외로운 섬 하나 키우고 싶다


그 후 햇빛 좋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증발했다가
문득 그대 잠깬 마을에
비가 되어 만날까
눈이 되어 만날까
돌아온 탕자의 뒤늦은 속죄
그 쓰라린 참회의 눈물이 될까.

 

 

 

임영조 시전집 『그대에게 가는 길 1(제3시집)』(천년의 시작, 2008)

 

 

 

무지개의 밑둥치가 보입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무지개를 본 적이 없었지요. 

 

 

 

물의 정성분석

 

/마종기

 

 

 

 

동양이고 서양이고 물이란 게

가만히 앉아 있는 성질이 못 되어

찢어진 곳이거나, 보이지 않는

틈까지 찾아가, 미세한 결핍까지

채우고야 흐르는데

떠나고 헤어지는 게 버릇이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면

공중으로 온몸을 날려

소식도 안 남기고 증발해버리지.

 

물에게 제 모습을 간직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원래의 모습이란 게 무엇일까.

가벼운 수소와 산소가 만나

함께 살기로 한 날부터

정성분석 실험실은 늘 젖어 있었다.

 

물은 아무의 말도 듣지 않는다.

철들 나이가 되어도

무리를 떠난 물은,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른다.

물은 물끼리 만나야 산다는 것,

서로 섞여야 살 수 있다는 것,

그나마도 모를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물은 어느 때부터 알았을까.

호흡이 무너지며 글썽이는 물.

함께 살았던 날들만

반짝이는 축제였다는 걸

언제부터 알았을까.

 

그러나 길 떠나지 않는 몸은

눈치만 보다가 죽고 만다.

움직여라. 게으른 물들,

좌절에 흔들려보지 않은 물은

얼어서 결박되든가,

썩어서 사라질 뿐이다.

흔들려라, 젊은 날에는,

그래야 산다.

 

 

물이여, 그렇다면 잘 가라.

한때는 빛이었고 별이었던,

눈꽃과 얼음으로 크게 피어나던

추억의 물이여, 잘 가라.

어딘가 높은 곳, 물의 가족이

애타게 부르던 소리도 희미해졌다.

길 잃은 물의 집이 어디였던지?

 

그날들이 다 지나고 돌아서면

한가롭고 자유롭고 싶어서일까,

방향을 바꾸어 하늘로도 향하고

색을 바꾼 구름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헤어진 인연을 못 잊어

비가 되어 땅에 다시 내려오겠지만

죽어서 하늘에 갔다는 말도

이제야 조금은 알 듯하다.

 

긴 비 그친 우리 마을에

큰 무지개 하나가 선다.

얼마 만에 보는 황홀이냐.

그렇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알몸의 물이 춤을 춘다.

물이 색이 되어 하늘에 올랐다.

 

 

 

문학과사회 (2014. 겨울)

 

 

 

 

아주 옅어진 무지개, 숨은그림찾기 같지요?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라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서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무지개를 다 담기엔 제 카메라가 너무 작고, 렌즈에도 빗방울이 묻었습니다. 

 

 

 

무지개 2
/임영조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
이승에서 다시 만나 맺자고
서로 나눈 반쪽 가락지
오늘 홀연 서산 위에 떠 있네
사랑의 증표 아직 녹슬지 않고
일곱 빛깔 섬섬히 눈이 부신데
볼수록 내 가슴 마냥 뛰는데
그대는 어찌 안 보이는가?
그 동안 나는 한 점 뜬구름으로
마을에서 산으로 들고 강으로
그대 찾아 섬도 가고 절에도 갔네
오늘도 매봉에 혼자 올라 야호!
앞산이 무너져라 불러도 감감
그대는 지금 어디에 숨어 있나?
말 못할 그 무슨 속사정 있길래
둘이 나눈 무지개표 가락지
그 반쪽 사랑이 이제야 보여주나?
저무는 하늘가에 슬며시 내건
저 눈 아리게 빛 부신 파혼(破婚)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제6시집 시인의 모자)』(천년의 시작, 2008)














  • 노루2017.10.01 06:01 신고

    무지개처럼 예쁜 마을에
    무지개 뜨니, 그것도 한 집 옆구리에서 솟아 오르니,
    저렇듯 더 더 예쁘네요.

    함께 살았던 날들이
    반짝이는 축제였던 걸
    무지개 뜨면 ....

    답글
    • 숲지기2017.10.01 20:19

      휴가 중이신 것으로 아는데,
      일주일에 단 하루 인터넷을 하시나 봅니다.
      그 귀한 시간에 제 블록을 방문해주시다니요.

      하,
      집 옆구리로부터 솟아난 무지개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ㅎㅎ
      저 일대는 관광지이긴 하여도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흑림의 산골음식으로도 꽤 알려져 있고요.

  • eunbee2017.10.01 13:24 신고

    새벽 세 시 반이 되도록 원고와 씨름을 하시는 열정에
    감탄합니다. 매력넘치는 트로트의 왕자가 부르시는
    노래에 젖으시면서도 원고를 놓지 않으셨네요.

    저는 숲지기님 덕분에 좋은 시도 읽고, 유튜브 통해서
    세 곡의 노래도 찾아듣고, 또 저렇게 멋진 풍경 속에
    잠기기도 한 한가로운 하루 였답니다.

    라인강변이든 윗동네 숲이든 요즘 날씨가 싸늘 하지 않을까
    염려되는걸요. 그곳 가을은 을씨년스런 날이 많던데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스하게 지내세요.

    저는 그무엇이나 비교적 빨리 익히고 좋아하는 것이
    다양하나, 미쳐야 미친다는데..ㅋ 그냥 즐기기만 해요.ㅎ
    그래서 삶이 무지개빛처럼 알록달록 즐거워요.ㅎ

    답글
    • 숲지기2017.10.01 20:34

      "미쳐야 미친다"는 뜻을 추측할 뿐이지만,
      그 말 속에 후끈한 열정이 느껴집니다.
      은비님과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지인들을 초대하여 점심을 먹었습니다.원고마감시간은 넉넉했지만,
      초대객들과 편한 시간을 가지려면 미리 일을 다 마무리했어야 했었습니다.

      가을 기운이 들고부터 난방을 했으니 벌써 몇주 되었습니다..
      추워도 견디다 보면 어김없이 감기가 찾아와서
      이젠 미리미리 스카프 두르고 울양말도 신습니다.

      은비님도 감기조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해피 16142017.10.02 02:53 신고

    첨 인사드립니다.
    안나님 공간에서 이끌리어 왔네요.
    동화속처럼 아름 다운 마을에 살고 계시는군요.
    항상 미세먼지 걱정하는 저들한테는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맑은 공기, 아름다운 자연경관속에서 창작활동 하시는 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강은교님의 시 다시 한번 잘 감상하고 갑니다.

    답글
    • 숲지기2017.10.02 14:51

      해피님 반갑습니다.
      안나님을 만난 것을 행운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덕분에 해피님도 뵙고요.
      강은교시인을 좋아하시는군요.
      낭창낭창한 목소리의 눈빛이 깊은 분으로 기억합니다. 학교다닐 때 한번 뵌 적이 있습니다.

      숲에서의 생활에 대해서인데요, 몇년 전부터 직접 겪는 일인데
      문명도시에서 생긴 피부 트러블 같은 것이 숲에 들어와 이틀만 지나면 거의는 아문다는 것입니다. 피곤하면 손발이 붓는 증상도 숲에서는 없고요.
      논리적인 설명을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체험한 것을 말씀드리는 것 외에는요.

    • 해피 16142017.10.03 02:31 신고

      저 자주 놀러 와도 되나요?

    • 숲지기2017.10.03 14:13

      영광입니다.
      자주 뵙고 싶습니다.

  • 가을하늘2017.10.03 04:27 신고

    무지개 오랜만에 보네요
    언제나 아름다워요~^^*

    답글
    • 숲지기2017.10.03 14:15

      가을하늘님 덕분에 옛친구 생각을 요며칠 골똘히 합니다.
      추석 잘 쇠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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