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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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17. 7. 1. 09:18

7월 초하루 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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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던 어느 날엔가 라벤더 벌판을 지난 적이 있습니다.

그땐 디지털카메라가 없었고, 

벌판 풍경 정도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해지면 다시 와야겠다고요.

 

보랏빛 물결이 광활하게 펼쳐진 저 라벤더꽃밭을 지금 대한다면, 

그때와는 감회가 다를 것입니다. 

나이도 이미 지긋해졌고요, 

무엇보다도 디지털카메라 손 쉬운 것 하나쯤도 이제 구비할 수 있고요.

그럼에도 떠나지 못합니다.

아니 떠나지 않는 대신 변명을 합니다.

"지금 아니고 나중에 갈 거야"라고요.

그러게요, 

'나중에'가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

 

책상 위에 꽂아둔 라벤더꽃 냄새를 맡다가 초하루 시편지를 쓰자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다녀가신 반가운 닉들에도 

라벤더향 같은 시(詩)냄새가 풀풀 묻어날 듯 하고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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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사랑

/조동례

 

 

벼랑 앞에 서면

목숨 걸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마이산 탑사 앞

암벽을 끌어안은 능소화 또한

아무도 받아 줄 이 없는 절박함이

벼랑을 끌어안을 힘이 된 것이리라


매달리는 사랑은 언제나 불안하여

자칫 숨통을 조이기도 하지만

실낱같은 뿌리마저 내밀어

지나간 상처를 받아들여야

벌어진 사이가 붙는 거라며 


칠월 염천 등줄기에

죽음을 무릅쓴 사랑꽃 피었다

노을빛 조등 줄줄이 내걸고

제 상 치르듯

젖 뗀 잎들은 바닥으로 보내며

생의 절개지에 벽화를 그리는 그녀 


목숨 걸고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서 유서 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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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여자 2
/이대흠


쓸쓸함이 노을 든 억새꽃 같은 여자와
살고 싶었네 쭈구러지기 시작한 피부에
물고기 눈처럼 순한 눈망울을 끔뻑거리던 여자
산죽처럼 서걱거리는 연애로 청춘을 다 탕진하고
세상 밖으로 가는 길을 손목에 세기려 했던 여자
나는 맹감잎 같은 귀로 그녀의 소리에 귀를 귀울였지만
어쩌지 못한 가시가 그녀를 다치게 하였네.

사랑한다 말하면 밥 뜸들일 때의 숯불처럼
자분자분 끓어오르는 여자
그 여자를 생각하면
분홍이나 노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외풍 심한 겨울밤에도 마음 한쪽에 아랫목이 생겼네
연두 뚝뚝 떨어질 듯 연한 감잎처럼 순한 귀를 가진 여자

그 여자와 어느 산 아래 흙집 지어 살림 차리고
찰방거리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주고 소꼴을 베러
새벽이슬 깨뜨리며 바지게 지고 들로 나가리
익은 낫질에 후딱 오른 한 바지게 풀짐에선
아직은 좀 비릿한 그녀의 살냄새 나리
그런 날이면 밥상도 제쳐두고 그녀의 몸내 맡으리
그녀가 등목을 해주는 여름이 오면
별 낮은 밤하늘 반딧불이처럼
깜빡깜빡 서로의 반짝임을 바라보리

몸물이 올라 가을이면 노란 산국이 되는 여자
그 여자 어깨를 주물러주며 함께 늙어가고 싶었네
아이 둘 낳기에는 너무 늦은 여자
여전히 순정은 치자꽃 같아서 스치기만 하여도
달큼한 향내를 풍기는 여자 그 여자 낯빛에 스민 그늘
그 그늘 아래서는 슬픔도 마냥 슬픈 것만이 아니고
기쁨도 그저 환한 것만이 아니라서
따뜻한 슬픔에 마음은 그저 노곤해지고

행여 다툰 날이면 그 여자 눈동자 속 눈부처 향해 절을 하리
그녀느 이내순하게 무릎을 굻겠지 그러다보면
버석거리는 마음에도 단풍들리라
서로의 아픈 데를 어루만져주며
조금식 잎을 떨구는 감나무들처럼 담담히
나란히 빈 몸으로 겨울을 맞고 싶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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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빛 여름

 /정용화

  

 

 꽃이 피려는지 심장 근처가 가렵다

 

 

 고여있던 시간이 몸 안에서 전구를 켠 듯 환해지면 그늘진 곳에서 철지나 피어있는 치자꽃의 하루를 빌려 당신에게 간다 잘 익은 구름으로 만든 싱싱한 어제를 두 손에 들고

 

 집요한 질문들로 봄을 장악하고 나서야 꽃들은 물빛으로 흐른다 환한 손금의 한때에 작은 꽃문을 내고 툭치는 손길에 어깨를 내어주고 싶은 계절 제대로 여물지 못한 저녁을 미리 꺼내 종소리에 담가 그 속에 숨어 우리 꽃이나 잔뜩 피워볼까

 

 

  나무들이 초록 입술을 뱉어낼 때 구름 한 모금 입에 물고 여름이 귓속으로 흘러든다 당신 얼굴에 박혀있는 열 개의 꽃들이 하얗게 젖고 있다 지금은 무르익은 언어로 방금 도착한 마음을 위로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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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쌈 싸 먹고 싶다
푸른색을 어쩌지 못해 
발치에 흘리고 있는
잎사귀 뜯어
구름 모서리에 

툭툭 털고
밥 한 숟갈
촘촘한 햇살에 비벼
씀바귀 얹고
땀방울 맺힌 나무 아래
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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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먹히다

/조동례

 

 

칠월 땡볕 까마중 그늘 아래

사마귀를 먹고 있는 사마귀 한 마리

뜨거운 사랑 뒤처리를 하고 있다

은근한 장난기가 발동하여

먹다만 몸통을 슬그머니 건들자

남은 사랑을 물고

어두운 곳을 찾아 필사적이다

 

먹히고 싶다는 말, 저런 거다

사랑한다 나랑 살자 그런

흔해 빠진 말에 먹히지 않고

물러설 곳 두지 않고 목숨부터 맡기는 것

            

 

 

(편지에 삽입한 사진들은 싸이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이쁜준서2017.07.02 19:01 신고

    목숨걸고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서 유서를 쓰는 것이라고 하셨나요?
    이대흠 시인의 광양여자2는 저 시 속에 이야기들은 다 경험한 실 생활 같습니다.
    밥 끓일 때 숯불처럼 자분자분 끓어 오르는 이란 표현은 앞으로 환경에서는
    나올 수 없는 표현인듯 합니다.
    우리세대가 시골에서 산 사람들은 여름날 들에서 일하고 오셔서 너무 더우니
    등목을 하셨지요. 등목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아내가 남편에게, 어머니들은
    딸이나 며느리가, 젊은 여인네들은 등목은 못하고, 밤이면 들의 샘으로 갔지요.

    치자꽃을 가꾸면 정말로 스치기만 하면 달콤한 향기가 납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 얼굴을 내밀면 향기가 너무 진해 몇 발자국 떨어지게 됩니다.

    라벤더 보라색이 너무 보기 좋아서 또 향기까지 좋아서 올 해는 폿트 식물로
    3개를 잉글러쉬 라벤더로 들였습니다.
    월동이 된다해서 월동을 해서 내년에는 더 번식한 포기로 보고 싶어서
    정성을 들이는 중입니다.
    곱고 아름다운 라벤더 꽃 잘 보았습니다.

    7월도 즐거우시기 바랍니다.

    답글
    • 숲지기2017.07.02 23:55

      공교롭게도 저도 라벤더를 몇 무더기 샀습니다. 이 포스트를 올린 바로 다음날 말이지요.
      많은 식물들이 꽃만 이쁘거나 향만 좋은데,
      라벤더의 경우는 꽃이 이쁨과 꽤 괜찮은 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등목이야기를 써주셔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릴 때 오라버니나 삼촌 등 남자분들은 이렇게 샘가에서 훌렁 벗고 등물을 하셨었지요. 저는 직접 해본 적은 없고 오라버니의 등에 물을 끼얹어준 적은 있고요.
      참 애틋한 기억이예요 이쁜준서님.

      '사랑'에 관해서는 위에 시들에서 수 많은 실례가 있지요.
      맨 아래 사마귀의 사랑을 대하니 오싹해지기까지 합니다.

    • 이쁜준서2017.07.03 03:35 신고

      사마귀의 사랑은 정말 오싹한 사랑입니다.
      저는 저런 사랑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하

    • 숲지기2017.07.08 22:52

      2017.07.06 16:47수정|답글|삭제
      하하, 그렇죠 .
      여러 종류의 사랑 가운데 아주 독특한 형태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휴, 이걸 굳이 사랑이라고 명명을 한 시인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 노루2017.07.07 05:58 신고

    하나하나 다 시인이 힘들여 쓴 시로 보이는데
    아마 그래선지 더 시인의 시흥/시상에 젖어들지
    않고 그냥 이만큼 떨어져 있게 되네요, 저는. ㅎ

    답글
    • 숲지기2017.07.08 23:02

      그 말씀, 잘 이해합니다.
      저는 모차르트가 1년의 약 3주는 좋고 나머지 시간은 정말 유치하게 들립니다.
      애들 장난 같고 말이지요 ㅎㅎ
      다행히 세상엔 시인들이 많아서 독자들은 골라서 읽을 수 있고요,
      아무 것도 안 읽어도 되고요.
      정말 읽을 게 없는 궁극엔 직접 써도 되고요.

      노루님 건강하시지요? 여긴 간만에 폭염이 며칠 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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