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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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하루 시편지, 흑림에서 띄웁니다.

숲 지기 2017. 3. 31. 00:04

 

 

4월입니다.

 

제 아무리 빼어난 봄잎이라도 하늘이 배경이 되어줄 때 빛이 제대로 납니다

시를 가까이 하는 일도 그와 같지 싶습니다. 

봄잎으로 태어나 스스로 빛을 받거나 아니면 

잎들의 탄생을 북돋아 주고 드높고 푸른 하늘배경이 되어주거나 말이지요.

 

늘 그래 왔듯이 4월에도, 

시를 더욱 가까이 하고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버드나무의 한 종류, 가늘고 긴 가지가 늘어지게 자람

 

 

 

 

 

얼마나 많은 허방다리가
/강해림
 

산 입구 천막식당에 중년의 남녀가 들어선다
가만 보니 둘 다 장님이다
남자는 찬 없이 국수만 후루룩 말아 먹곤
연거푸 소주잔을 비워대는데
여자는 찬그릇을 더듬어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젓가락을 든다


그릇과 그릇 사이


얼마나 많은 허방다리가
푹푹 발목 빠지고 무릎 깨지게 했을까
좌충우돌 난감함으로 달아올랐을 손가락 끝
감각의 제국을 세웠을까


그곳은 해가 뜨지 않는 나라
빛이 없어 캄캄하여도 집 찾아 돌아오고
밤이면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느라 가위로 피 묻은 탯줄을 잘랐을 테고


이윽고 얼굴이 불콰해진 남자는
한 손엔 지팡이, 한 손엔 여자 손잡고 제왕처럼 식당문을 나선다
꽃구경 간다
복사꽃 날리고
꽃향기에
어둠의 빛 알갱이가
톡톡,
꽃눈처럼 일제히 터져 나와 눈부시고

 
 






 
흔히 너도밤나무라고도 부르는 가짜밤(못먹는밤)나무의 새순







 

 

꽃을 피우는 일
/이정자

꽃을 피우는 일은
꽃이 꽃인 줄도 모르고 확, 깨어나는 일이다
숨어 있는 열망이 용틀임하는 것이다
생의 어느 순간 어느 때
운명처럼 찾아와 화인을 찍고 갈 일인지 아무도 모른다
신의 영역이기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생 한 번도 꽃 피운 적 없이
살다간 이가 이 세상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꽃 진 자리 그 어둠을 견디어 낸 사람에게는
그래서 신생의 봄날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꽃 피어 본 이는 안다
꽃의 향기가 어둠을 이긴 빛이라는 것을


ㅡ시집 <아름다운 것은 길을 낸다>










 


튤립나무의 새잎이 나오는 풍경2

 

 

 

 

4월과 아침

/오규원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잠시 서로 어리둥절하네
밤새 젖은 풀 사이에 서 있다가
몸이 축축해진 바람이 풀밭에서 나와
나무 위로 올라가 있네
어제 밤하늘에 가서 별이 되어 반짝이다가
슬그머니 제 자리로 돌아온 돌들이
늦은 아침 잠에 단단하게 들어 있네

 

 

 

 

 

튤립나무에 새잎이 나오는 풍경2

 

 

 

 

 

나무 같은 사람/이기철

 



나무 같은 사람 만나면 나도 나무가 되어
그의 곁에 서고 싶다
그가 푸른 이파리로 흔들리면 나도 그의 이파리에 잠시 맺는
이슬이 되고 싶다


그 둥치 땅 위에 세우고
그 잎새 하늘에 피워 놓고도
제 모습 땅 속에 감추고 있는 뿌리 같은 사람 만나면
그의 안 보이는 마음 속에
놀 같은 방 한 칸 지어
그와 하룻밤 자고 싶다


햇빛 밝은 날 저자에 나가
비둘기처럼 어깨 여린 사람 만나면
수박색 속옷 한 벌 그에게 사 주고
그의 버드나무 잎 같은 미소 한번 바라보고 싶다


갓 사온 시금치 다듬어 놓고
거울 앞에서 머리 빗는 시금치 같은 사람,
접으면 손수건만하고 펼치면 저녁놀만한 가슴 지닌 사람
그가 걸어온 길, 발에 맞는 평상화


늦은 밤에 혼자서 엽록색 잉크로 편지 쓰는 사람
그가 잠자리에 들 때 나는 혼자 불켜진 방에 앉아
그의 치마 벗는 소리 듣고 싶다
 

 

 

 

 

 

 

 

 

 

침엽수인 것 맞지만 이름은 ? 

 

  • 푸른하늘2017.03.31 05:01 신고

    나무마다 사진이 멋집니다.

    오늘은 큰병4개에 김치를 담았지요.
    좀 편하려고 부엌 식탁에서 의자에 양반다리하고 앉아서
    배추두통,알타리두단 ,열무 두단을 다듬고 씻어서 절였다가
    또 씻고 김치양념 만들어 두었다가 버무려 병에 담고
    순두부지리와 조기 한마리로 저녁을 먹은후 저녁8시가 되어서야
    다리가 너무 아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네요.
    한국서 45년-50년전 삐었던 오른쪽 발목이 아프기시작하네요.
    정말 알수 없습니다.그동안 잘걷고 살아 왔는데,
    양반다리로 앉아 있었던 자세가 나빴을까요?
    내일 아침까지 이렇게 아프면 의사에게 가보아야지요.
    쿡쿡쑤시고 붓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하룻동안에도 참다리로 많이 걸어 다녔네요.

    미국서는 내일 아침이 되어야 4월1일입니다.
    이렇게 멋진 시를 올려 주셨는데,제 발목 아픈 얘기만하니
    저도 어이없네요.숲지기님.왜냐면 지금 다른 생각을 못하겠어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미안합니다.

    답글
    • 숲지기2017.03.31 15:55

      아이쿠 중노동을 하셨군요 푸른하늘님.
      쑤시고 붓고 하신다니 염려가 됩니다.
      물론 식구분들 드실 반찬을 만드셨지만, 장시간 양반다리를 하시다니.....그 또한 놀랍습니다.

      저는 꿇어 앉기와 같은 바닥에 앉는 것이 불편합니다.
      어릴 땐 잘 앉았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아주 짧은 시간 앉아 있어도 옆 엉덩이가 당기고요 ㅎㅎㅎ

      빠른 쾌유를 빌어드립니다.

    • 푸른하늘2017.03.31 16:02 신고

      어제 수영하면서 두발로 벽을찰때 오른발을 더 힘을 줘서 그런것같아요.
      제 습관이 왼발로만 힘을 주기에 바꿔 보았더니 그럽니다.
      남편이 침맞으러 가자고 차속에서 기다립니다.^^

    • 숲지기2017.04.01 05:24

      푸른하늘님 치료 받고 오셨겠지요?
      그리고 지금은 통증없이 말끔하게 다 나으셨지요?
      그러시기를 빕니다.

  • 노루2017.04.01 04:05 신고

    사월 초하루 시 편지, 전야에 잘 읽어봅니다.
    오월이 오기 전에 다시 또 읽어보게 되겠지요. ㅎ

    툴립나무, 좋아하는 나무라 반갑네요.
    저 소나무 사진도 참 좋고요.

    답글
    • 숲지기2017.04.01 05:39

      매월 한번씩 시절에 맞는 시들을 찾고 읽는 것이 기쁨입니다.
      그 어떤 언어보다도 모국어로 읽는 시들이어서
      그 정서를 공감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큽니다.

      튤립나무를 저도 좋아합니다.
      다만 너무 크게 자라서 고개를 높이 들고 멀리 있는 나뭇가지를 당겨서 찍습니다.
      고묵들에게 저는 일말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로하신 분들로부터 느껴지는 뿌리 깊은 인성이 그들에게도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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