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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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17. 1. 31. 05:19

 

설 잘 쇠셨지요? 

바빠서 주시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숲은 제 계절을 성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눈 아래 바짝 엎드린 풀들, 그 마른 이파리 어딘가에 숨죽인 곤충의 알들도 있겠고요. 

다들 제자리에서 제보폭으로 살아주는 것들이 고맙습니다.

 

동봉할 사진을 고르다가 의문이 생겼습니다.

아래 숲그늘의 눈은 어찌하여 저리 푸를까요? 

 

건강하시고,

행복한 2월을 보내십시오

 

 

 

 

 

 

 

뒷산으로 난 흑림가도군요. 나무들이 눈옷을 벗었으니 봄을 기다려도 될 것 같군요

 
 
 
 

즐거운 편지

/황동규 

 

 

1.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필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할 뿐이다

 

그동안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천양희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시집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산마을에도 축제(Fasching)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알록달록한 거리장식이....

 

 

 

 

변명은 슬프다
/권경인

 

 

 

오래 병들어 푹푹 썩어버린 
지상의 작은 방 한칸을 버리고 
눈비 오는 동안 조용히 길을 물어 한천에 닿다 
너무 또렷하여 빛 한점 내비치지 않는 
마음의 원시림 
누추하고도 귀한 것들이 제 속의 숨은 보석을 끌고 
산을 올라간다 
다스릴 것 하도 많아서 길은 끝이 없는데 
제 그림자 하나로 넉넉히 차운 밤 밝히고도 
어둠은 스스로 어찌하려는 것인지 
제 안에 수많은 새들을 기른다 
단 한번의 비상을 꿈꾸어 전생애를 탕진하고도 
가장 힘든 길은 언제나 내 안에 있으니 
한꺼번에 마음의 가지를 터는 일이란 얼마나 혹독한 것인가 
말이란 할수록 많아지는 법 
할말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아무 말도 못할 때 
그는 말한다 
오를수록 먼 길이 있으니 
지금 깨어 있는 자 영원히 깨어 있으리라 
이 골짜기 저 능선 
바람의 길에도 도가 있으니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의 고통 속에도 길이 있으리라


공중에서 끊임없이 몸을 바꾸는 잠언 몇 줄기 
깨어진 영혼의 아픈 틈을 메우듯 
군더더기란 그런 것이다 

 

 

 

 

우리동네 길갓집이군요.

 

 

 

밤눈

/김광규

 

 

겨울밤

노천 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 푸른하늘2017.01.31 00:26 신고

    숲이 숲일지라도 숲지기님이 사시는 가까운 숲은
    흑림이라고 부르시면 더 흑림처럼 보입니다,
    소나무들도 침엽수림 숲으로 더 촘촘히 보이는
    나무들이 길가에 서있기만 해도
    그것은 숲지기님의 멋진 흑림입니다.

    겨울 흑림위의 파란 하늘이 눈위에 반영이 되어서 푸루스름하게 보이나 봅니다.
    허리가 곧은 소나무들 그 키크고 올곧게 자라,독일인의 기상을 올려 주나 봅니다.
    2월 초하루.또 다시 새로운 달에 숨쉬면서,하늘을 우러르면
    긴긴날 지나도록 잊고 지냈던 긴 턴넬같던
    겨울을 벗어나 이제 초봄을 맞게 되겠지요.

    제가 지금 뭐라고 한것이지요?

    답글
    • 숲지기2017.01.31 16:37

      블랙 포르스트(Black Forest)나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라고 원래 부릅니다.
      우리말로 굳이 하자니 흑림이 되었고요,
      처음엔 참 어색했습니다, 흑림..... 베를린을 백림이라고도 하니 더 이상했고요 ㅎㅎ

      아직은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라서 더 좋습니다.
      아직도 집 뒤 등산로에는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습니다.
      철따라 들꽃이 피는데, 가끔식 오를 때마다 혼자보기 아까울 때가 있어요.
      들꽃은 그냥 야생의 평범한 꽃들인데, 모여서 한꺼 번에 피니 그것도 장관이지요.

      제가 시골태생이라서 숲하고 친한 것 같습니다.
      푸른하늘님께선 도시분이신데도 ? ㅎㅎ
      죄송합니다 제 선입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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