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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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에서 띄우는 <11월 초하루 시편지 >

숲 지기 2016. 10. 31. 13:20

 





10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올해도 2달이 남았군요.

하고싶은 말들이 은행잎만큼 많아서 샛노란 생각들 뿐이었었지만, 
그냥 짧게 인사만 하기로 합니다. 


11월, 너무 많이 쓸쓸해 마시고,
계획했던 한해의 숙제들 잘 마무리하십시오. 


건강하십시오. 














Seebach









11월
/장 석 남
 
 
  이제 모든 청춘은 지나갔습니다 덥고 비린 사랑놀이도
풀숲처럼 말라 주저앉았습니다 세상을 굽어보고자 한 꿈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안 것도 겨우 엊그제 저물녘, 엄지만한
새가 담장에 앉았다 몸을 피해 가시나무 가지 사이로 총총
히 숨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난 뒤였습니다
  세상을 저승처럼 둘러보던 새 이마와 가슴을 꽃같이 환
히 밝히고서 몇줄의 시를 적고 외워보다가 부끄러워 다시
어둠속으로 숨는 어느 저녁이 올 것입니다
  숲이 비었으니 이제 머지않아 빈 자리로 첫눈이 내릴 것
입니다 눈이 대지를 다 덮은, 코끝이 시린 아침 나는 세상
에 다시 나듯 문을 열고 나서고 싶습니다 가시넝쿨 위로 햇
빛은 무덤처럼 내려쌓일 것입니다 신(神)은 그 맨몸을 흐르
던 냇가의 살얼음으로도 보이시고 바위틈의 침침한 어둠으
로도 보이시며 첫눈의 해석을 독려할 것입니다
  살던 집의 그림자도 점점점 길어집니다 첫딸을 낳은 아
침처럼 잃었던 경탄을 되찾고 숲으로 이어진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득한 숲길이 되려 합니다 햇빛 아래의 가
여운 첫눈이 되려고 합니다 누군가의 휘파람이 되려고 합
니다 밥과 국을 뜨던 소리들도 식어서 함께 바람소리를 낼
것입니다
 






Ortenau









비밀정원
/정용주
 

다래 덩굴처럼
산속으로 이어진 오솔길
죽어 쓰러진 나무들 스스로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엉킨 덩굴에 매달려 쪼그라든 몇 개 산열매처럼
지워져가는 길의 가지 끝에서
돌무더기 쌓아놓은 흔적만 남아 있는
화전민들의 옛 집터
증거해야 할 아무 자랑도 없이
부서져 내리지 못하는 이끼 덮인 돌 위의 돌
언제부터 자란 오미자 덩굴이
쓸쓸한 흔적의 정원에 공중 그물을 엮었다
스웨터를 장식하는 구슬 같은
오미자 송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햇살의 정적을 빨아먹으며 몸을 붉혀가는 오미자 열매
스스로 제 고독을 완성시켜가고 있다

 
 




Ortenau





더 늙어서 만나자는 말
/이화은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네
더 늙어서 만나자는 말
 
한 번도 사랑한다 말 한 적 없는데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네
 
시작도 끝도 없어야
정말 사랑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힘껏 늙어가는 중이네
 
시간의 흰 이마에
날마다 첫눈이 내리고
스무 살의 노인이 마침내 내게로 걸어오는데
 
이제 그만 늙어도 된다는 말
아무도 하지 않네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네











 

 

A5 Autobahn

 

 

 

 

/황학주

 

 

어둑해져 도착한 마음은 붓끝을 꿈결에 두었다 
감은사지는 뼈를 묻었는지 
낮의 문장과 밤의 문장 사이 오래된 초승달이 떴다 

가끔은 서로의 문장들 팍삭 깨지기도 하는 
동탑과 서탑 
심장을 싸맨 채 우는 날도 흔하겠으나 
견딜 의사가 있는 자세로 
돌 안에 악기를 둔 마음으로 

낮의 문장과 밤의 문장 어느 쪽이든 
저마다 감은사를 가졌답니다 
세상에 나간 적 없는 바깥을 아득히 펼친 

동탑과 서탑을 실로 묶듯 
나는 눈에 안 띄는 문장으로 두 탑을 돌았다 

차가운 11월 초승이라고는 하나 
짝을 가진 그 밤 
감은사라 부르기 전부터 지새우던 
하룻밤이 타올랐다 

탑 사이 행간엔 낮밤이 없었다

 

  • 푸른하늘2016.10.31 23:46 신고

    저녁밥 준비하는 사이에 도어벨을 요란하게 울리는동네아이들,
    "해피할로윈!"아이들 날입니다.
    문앞에 둔 캔디가 반이상 없어졌네요.
    맨 처음에는 3명이 오더니 6명씩 세구룹을 보냈거든요.
    어찌 생각하면 꼭 아이들에게 도네이션하는 기분입니다.
    오늘이 마지막날이네요.
    내일은 11월입니다.11월 잘 보낵시고,행복하십시오.!!!

    답글
    • 숲지기2016.11.01 00:37

      여긴 37분 전부터 이미 11월입니다.
      푸른하늘님도 해피 할로윈!!
      언젠가 저도 가발쓰고 검은망또 걸치고 그 대열에 끼었더랬습니다.
      마스크 쓴 그룹이 무서워서 아주 잠깐만 거리를 쏘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장식을 하는 대신 호박으로 요리를 했고요,
      내년엔 거나하게 놀아볼까 합니다.
      푸른하늘님도 행복한 11월을 맞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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