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9월의 시편지를 띄웁니다. 본문

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9월의 시편지를 띄웁니다.

숲 지기 2016. 8. 29. 19:18

 

 

 

 

 

 

 

 

 

 

 

9월이 옵니다.

날이 밝아 침실 창문을 열면, 손가락에 만져지는 바람 한점이 신선합니다. 

금세 푸릇푸릇 높아진 하늘지붕은 

책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라고 말해주지요.  

 

9월과 맞는 시 몇 편 고르면서 

이슬을 뒤집어 쓰고 깨어나는 제 동네의 친숙한 풀들의 모습들도 동봉합니다. 

 

행복한 9월 맞으세요.

 

 

 

 

 

 

물봉선입니다. 이슬방울이 떨어질락말락....

 

 

 

 

 

 

 

 





벌레의 작은 입을 생각한다

/이기철




벌레의 작은 입을 생각한다, 5월에
개암 살구 오디 으름 자두 머루 다래 산딸잎을 벌레가 먹고 내가 먹는다
벌레의 맑은 눈을 생각한다, 7월에
오이 상추 가지 감자 고사리 무릇 고들빼기 참나물을 벌레가 먹고 내가 먹는다
벌레의 밝은 귀를 생각한다, 9월에
비파 참취 털머위 자주쓴풀 수세미 참깨 산오이풀 골바위취를 벌레가 먹고 내가 먹는다
그 작은 입으로 호고 박고 궁글려 만든 밝고 따뜻한 벌레의 집을 생각한다


















쇠뜨기가 맞지요? 












9월
/고영민
 
그리고 9월이 왔다


산구절초의 아홉 마디 위에 꽃이 사뿐히 얹혀져 있었다
 


수로水路를 따라 물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누군지 모를 당신들 생각으로
꼬박 하루를 다 보냈다
 


햇살 곳곳에 어제 없던 그늘이 박혀 있었다
이맘때부터 왜 물은 깊어질까
산은 멀어지고 생각은 더 골똘해지고
돌의 맥박은 빨라질까
 


나무에 등을 붙이고 서서
문득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왕버들 아래 무심히 앉아
더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이윽고 저녁이 와
내 손끝 검은 심지에 불을 붙이자
환하게 빛났다
자꾸만 입안에 침이 고였다
 
『시인세계』(2011, 겨울)









 

깨꽃입니다. 보기엔 미미하나 저 작고 흰 꽃이 지면 씨방엔 3알씩의 그 위대한 들깨씨가 자리를 잡습니다. 

 

 

 

 

 

 

9월과 구월들

/김미정 

 

 

구름이 구름을 삼키는 날들
누구라도 불러주면 좋겠어 
코스모스 가느다란 목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
바람은 버스에서 내리고 너는 떠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손가락들은 모두 어디로 숨어버렸나 
약속을 좋아하는                
그때 난 휘어진 그림자를 움켜쥐고 뛰어갔지
바람이 따라 왔던가
너의 오른 손과 나의 왼손을 남겨두고
9월이 오면 떠나자고 했지

 

골목에서 터지기 시작한 울음들이 번지고
잠 속으로 흐르는 낡은 노래 사이
너의 젖은 혀는 담장이처럼 
벽을 타고 올라갔지
어디든지 날아가고파

 
한 그림자에서 천천히 
어느 그림자가 빠져나가고

 

기다리던 정거장은 버스를 스치며
이제 막 풍경을 떠나는 시든 꽃잎처럼
너무 느리거나 빨리 지워지는 것들
차라리 일부러 그랬다고 말해주지
미처 돌아서지 못하는 바람들
출렁이는 맨발로
다행스러운 8월을 건너고 있다

 

허공에 떠있는 저어 먼 허공에서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현대시』(2009. 10)

 

 

 

 

 

 

 

 

 

찔레잎인가?? 

오늘 가서 한번 물어봐야 겠습니다. '너 누구니?' 이렇게요.

 

 

 

 

 

 

 

9월 

/엄원태

 

치르르르르르르르, 자전거 체인  소리에

비켜서며 돌아보니, 없다!

 

풀숲 여치 울음은, 꼭 뒤통수에 바짝 달라붙는다.

 

(네 베로나 여행 소식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잘 지내는 거 같아 다행이구나)

 

돌아서고 나서야 듣는다.

한참, 보이지 않던 것들의 소식을......

 

 

―『애지』(2008. 겨울)

 

 

 

 

 

 

 

 

 

외적의 침입 흔적이 적나라한 어린나무의 잎입니다. 단풍나무인 아혼(Ahorn)인 것 같지요?

 

 

 

 

 

 

 

9월

/헤르만 헤세

 


우수(憂愁) 어린 정원
피어 있는 꽃에 싸느다란 비가 내린다.
그러자 여름은 봄을 부르르 떨면서
말없이 자신의 임종을 맞이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나뭇잎이 펄럭펄럭
높다란 아카시아나무로부터 떨어진다.
그러자 여름은 깜짝 놀라 힘없는 미소를
꿈이 사라지는 마당에다 보낸다.


이미 그 전부터 장미꽃 옆에서
다소곳이 휴식을 기다리고 있던 여름은
이윽고 천천히 그 커다란
피곤에 지친 눈을 감는다.

 

 

―-김희보 편저『세계의 명시』(종로서적, 1987)

 

 

 

 

 

 

 

 

 

이슬을 보석알처럼 달고 있는 이 풀은 수크령이라고 여겼던 건데,,,, 언젠가부터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이름은, 모릅니다.

 

 

 

 

 

 

 

 

이른 아침에 올라보면 계곡에 햇살이 드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마을 뒷산에 올라... 

 
  • 푸른하늘2016.08.29 15:35 신고

    참 젊음이 좋네요.
    가을이오면 가을이 온다고 알려주시니까요.
    저는 가는 계절이나 오는 계절이나
    그저 덤덤히 맞이 하고 산지 오래 되었네요.

    코르크처럼 부드러운 나무가 되어서리
    마음도 아닌것이 마음인척 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박재된 나무?
    코르크는 나무면서도 조금은 부드럽지요.

    그래도 올해부터는 저도 좀 가을을 느껴 보아야 겠네요.
    너무 일상을 덤덤하게 무풍지역을 걷는 사람처럼
    사뿐히 해나가는 것이 어떨때는 그게 평화로 보이겠지만
    제게도 어쩌면 먼 허공으로 날아 가고픈 바램이 현실속에서....

    답글
    • 숲지기2016.09.07 22:49

      푸른하늘님 반갑습니다.
      "마음도 아닌 것이 마음인 척하는", 표현이 모호하고
      선문답인 듯 깊습니다.

      마음 아닌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안 되고,
      마음인 척하는 것 또한 구분을 못합니다.
      아니 구분을 하려 덤빈 적도 없군요.

      산에서 구름하고만 대화를 해선지
      좀 왔다갔다 합니다.
      내일 쯤 다시 댓글을 쓰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