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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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을 기다리며

숲 지기 2016. 5. 20. 03:21





열흘이나 더 남았지만,

유월을 기다리는 편지를 미리 띄웁니다.

봄꽃들이 아직은 다 지지 않았고, 

그 꽃들을 적시는 비들을 아직은 봄비라고 불러도 좋은 때입니다. 

  

남은 오월과 또 희망의 유월에 

행복하시고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 

안녕히.....




(구동독의 시골풍경들을 동봉합니다.

운전 중에 만난 풍경들인지라 욕심만큼 담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오분간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러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버릴 생(生),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빗방울

/오규원 



빗방울이 개나리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통에 돕-돕-돕-돕 떨어진다











소나기

/권주열

 

 

 

  구름의 언어는 때론 왁자지껄하다 갑작스레 우산들이 여기저기 커다란 귀로 변하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저 이방인의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문처럼 공기를 밀고 퍼지는 동안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언어 떼들, 유리에 투명하게 달겨 붙다가 툭 툭 쓰러진다 가만히 보면 저 언어들은 수직으로 일제히 그리고 쏜살같이 움직인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구름의 말을 전할 수 가 없다 대충 알아들었다고 해도 도랑에는 이미 거품 같은 죽은 말들이 콸콸 넘친 다음이다 가끔 너를 지나치는 내 피 속에도 소나기가 지나갈 ?가 있다

 










 

한 다발 장대비

/조말선

 

 

 

  한 다발의 장대비가 배달되었다 밑둥이 바싹 잘린 장대비 머리에 구름을 매단 장대비 구름은 활짝 피어 있었다 포장을 하지 않은 장대비는 노란 리본에 질끈 묶여 있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용의주도하게 꼬리를 잘라버렸다 뿌리째 보낸 비에 내가 다 젖을까봐? 그는 한번도 비를 맞아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군다 비는 바깥에 두는 것이 좋아, 그는 활짝 핀 구름만 보고 버리라 한다 비는 오래 맞을 것이 못 된다고 한다 나는 한 다발의 장대비를 궁리했다 꽃병에 꽂아도 보았다가 거꾸로 매달기도 했다 구름은 점점 허물어졌다 구름은 점점 병색을 띄었다 한번 잘린 구름은 뜬구름이 되었다 한번 잘린 장대비는 쏟아지고 없었다 나는 노란 본에 질끈 묶여 있었다








행복한 봄날

/김소연

 

 

 

너의 가시와 나의 가시가

깍지 낀 양손과도 같았다

맞물려서 서로의 살이 되는

 

찔려서 흘린 피와

찌르면서 흘린 피로 접착된

악수와도 같았다

 

너를 버리면

내가 사라지는,

나를 지우면

네가 없어지는

이 서러운 심사를 대신하여

 

꽃을 버리는 나무와

나무를 저버리는 꽃 이파리가

사방천지에 흥건하다

 

야멸차게 걸어잠근 문 안에서

처연하게 돌아서는 문 밖에서

서로 다른 입술로 새어 나오는 한숨이 있었는데

흘리는 눈물의 연유는 다르지 않았다

 

꽃봉오리를 여는 피곤에 대하여도

이 얼굴에 흉터처럼 드리워진

나뭇가지 그림자에 대하여도

우리의 귀에 새순이 날 때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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