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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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림에서 띄우는 초하룻날 시편지/춘삼월입니다

숲 지기 2016. 2. 29. 07:42

 

 

 

 

 

 

춘삼월입니다

 

 

마음놓고 "봄"을 이야기해도 되는 3월입니다.

봄비가 오는 중에도 희끗희끗 비행하는 눈발이 보이지만,

어디 봄눈만큼 순한 게 있을라고요.

고집이 없어서,

뭐랄 새도 없이 제 알아서 얼른 녹고 말지요.

 

'맞아, 시는 이런 거였지'라며 읽을 때마다 한대 맞은 느낌이 드는 시,

치닫고 매달리고 급기야 기진맥진하여 마침표를 찍어놓고도

그 마침표에서 다시 힘을 내어 내달려가는..... 뭐 그런 느낌의 시,

이윤학님의 <오리>를 이달의 시로 골라 봅니다.

 

이 시를 읽으면

얀 울리히(Jan Ullrich)라는 독일의 싸일클 선수의 어느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투어 데 프랑스(Tour de France 2005년)에서 두번째로 준우승을 한 뒤,

이런 말을 했습니다.

 

"뙤약볕 오르막길을 며칠을 통해 달리고

입술이 갈라지고 폐가 찢어질 듯한 고통에 쓰러져 '아' 한마디 할 수도 없는 그 때에도, 

벌떡 일어나서 마치 개선장군처럼 나아가야 하는 게 싸이클 선수이다." 라고요.  

 

시드니올림픽 우승을 비롯하여 싸이클계 수퍼스타였던 그가 도핑으로 6개월인가 선수생활 정지를 먹고

재기하여 다시 쾌거를 얻고서 한 말이지요.

 

어떤가요?

시 창작의 길도 별반 다르지 않지 싶습니다.

 

저마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지상의 생명들이 잎 피우고 가지를 뻗는

춘삼월입니다.

 

 

 

 

 

 

 

 

 

 

오리/ 이윤학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대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난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난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었지

난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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