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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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숲 지기 2021. 9. 4. 07:43

 

 

/ 손세실리아

네 곁에 오래 머물고 싶어

안경을 두고 왔다

나직한 목소리로

늙은 시인의 사랑 얘기 들려주고 싶어

쥐 오줌 얼룩진 절판 시집을 두고 왔다

새로 산 우산도

밤색 스웨터도 두고 왔다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날을 몰라

거기

나를 두고 왔다

 

 

 

 

 

 

....... 여러 벌 스웨터와 안경,

오래된 시집까지 곰비임비 쌓아두고 왔고

그렇게 믿을 수 있지만 

목소린 아닌 것 같다.

 

목소릴 두고 올 수 있을까

내 목소릴 그러니까,

여전히 데리고 있는 이가 있을까? 

 

....... 마당의 여름하늘 

 

  • 파란편지2021.09.04 04:07 신고

    그러니까 거의 다 두고 온 거죠?
    뭐 하려고 왔는지, 왜 와야 했는지...
    그만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렇게 온 사람이 잘한 건지도 모르긴 합니다.
    그런 느낌을 가지고 떠나버리면 금방 이것저것 두고 온 걸 생각하게 되겠지요.
    섬, 기억 속?

    답글
    • 숲지기2021.09.05 18:55

      교장선생님께선 누군가로부터 떠나실 분은 아니신 듯 합니다만,
      그래도 다시 가보고 싶은 사람이나 장소를 가지고 계십니까?

      다 두고 기억만 가져왔을까요,
      고향은 저에게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잃고나서부터
      저의, 제가 두고 왔다고 여기는 것은
      오랫동안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아서
      그 것들끼리 외로운 섬이 되어 있구나 싶습니다.

      더 외롭거나 덜 외로운 섬이 있을 뿐, 사람의 기억은 다 섬인 것 같아요.

    • 파란편지2021.09.06 12:52 신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가보고 싶은 사람이나 장소가 없는 사람.
      지금은 당연히 가고 없는 사람, 그나마 그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다 바꾸어버린 곳인데도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기억에 남아 '시도때도' 없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승에서 떠나는 시간까지 그렇게 기억되겠지요.

      고향도 그런 곳 중의 하나죠?
      다 변해서 그리운 그 곳은 다만 기억일 뿐이죠.
      가 볼 필요도 없는 곳인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떠올리는 곳이 고향입니다.
      기억치고는 참 지독한 기억이죠.
      숲지기님 고향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그렇다면
      좀 매정한 제안이 되겠지만 다 버리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그리움만 가지시면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아하, 그게 섬이군요.
      아, 이제 보니까 숲지기님 말씀이 그런 게 아닐까 싶군요. 나 참...

    • 숲지기2021.09.07 22:45

      고국에 고향에 다녀온 게 2007년입니다.
      꽤나 오래 되었지만 그건 횟수일 뿐입니다.
      저는 날마다 고향에 가고
      고향 뒷산에 오르고
      소꼽친구들을 만납니다.
      시도때도 없이 만나왔으니 이렇게 오래 못 보고 있음에도 견딜만합니다.

      교장선생님의 매정하다 하신 제안을 이해합니다.
      어쩌면 그 편이 수월할 겁니다.
      요즘은 수가 늘어서
      감성의 벽을 얇게 하는 단어를 안 쓰고요, 그런 음악도 듣지 않습니다.
      향수병을 피해가는 묘책입니다.

  • style esther2021.09.08 05:06 신고

    실제로도 그러잖아요..
    아주 떠나고 싶지는 않아서...

    아주아주 가끔 하늘의 구름을 보며
    조금씩 흘러가는 걸 보며 '가는거야?' 혼잣말 할 때가 있어요.
    모든 게 다 아쉽기만 할 때가...

    답글
    • 숲지기2021.09.10 12:16

      요즘처럼 '단절'이라는 단어가 와닿은 적이 없습니다.이런 때, 두고 온 것을 생각하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할까요.
      자의적 소외를 택했으므로 비교적 수월할 거라 저도 생각했지만
      그렇습니다,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무심코 보고 있습니다.
      에스터님처럼 말을 걸 정도는 아니지만 언젠가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 Chris2021.11.28 10:22 신고

    언뜻 떠오르는 내 생각
    내것을 다 내리고 봐야 대상의 진실된 모습을 볼수 있다.
    뜻은 이해 되는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사랑한다는 마음도
    내가 정한 기준의 틀을 통과하여 내게 일어나는 감정인것 같다.
    그 기준마저 내릴 수 있어서 내려버리면,
    사랑하는 마음 조차 없어지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틀린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내 기준이 올바른 기준인지 항상 숙고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조금 혼란 스럽다.

    답글
    • 숲지기2021.11.28 15:11

      이 시는 '사랑'에 있어 초등들보다는
      거의 졸업생들의 실상 같습니다.

      너무나 자주 쓰고 흔한 단어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가둬놓으면
      그 때문에 지옥도 되고 또 천국도 되겠지요.

      '자신없다'
      '틀린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고 쓰신 뜻을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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