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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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해변의 마지막 집

숲 지기 2021. 3. 22. 23:55

해변의 마지막 집

/이병률 

바닷가 민박집 방문을 열어 보여주시는 할머니

- 이 방이 이래 추워 보여도 이거 하나 키면 따땃합니더

할머니는 한사코 선풍기를 가리키며 난로라고 하신다

다른 할 일이 없는데도 몇 번을 물으신다

- 참말로 잠만 잘낍니껴

할머니는 나를 바람쯤으로 여기는 게 분명하고

나는 자꾸 이 할머니가 나 돌아갈 때 데려갈 사람쯤으로 여겨져서

할머니가 시간을 물을 때마다 대답하느라 어두워진다

밤 바다 소리가 하도 유난해 마당에 나와서는

나무에 걸쳐 있는 달을 올려다보는데

- 와요? 나무가 뭐라 합니껴

 

 

 

반반

/이병률

여관에 간 적이 있어요 처음이었답니다

 

어느 작은 도시였는데

하필이면 우리는 네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여자 둘 남자 둘이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난감해하면서 방 하나는 안 된다고 하였기에

우리는 길을 잃은 사슴이었었지요

어찌어찌 방에는 들어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잠깐만 기다리라면서

끌듯이 커다란 병풍을 들고 왔더랬죠

 

정확히 방의 반을 가르는 병풍을 가운데 두고

남자들은 한쪽에 자고 여자는 다른 한쪽에 자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병풍을 사이에 두고 따로 누웠습니다

너머를 상관하기엔 막중한 게 버티고 있어

그냥 웃었던 것도 같습니다

나는 건너가 궁금했던 것이 아니라

달밤의 입자가 궁금했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한데 섞여 잠을 자는 건

좋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머리에 환히 불이 들어오고서야 알았습니다

 

한참 세월 흘러 그 병풍을 사이에 두고 따로 잠을 잤던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인 두 사람은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여태 혼자로 살고 있으니

 

가릴 것은 가리고 나눌 것은 나누는

거참 신통한 병풍인가요

 

..........................

 

 

 

못 가본 곳, 

아니 가 본 곳 조차도 그 안녕이 궁금하고 

같이 했던 이들에 대한 절절함

멀쩡한 날 콩나물 자라듯 한다.

 

그래서일까,

찬찬히 되짚으며 한번 더 읽은

신화의 마력이 묻어나는 시,

두편 모셔왔다.

 

 

  • 파란편지2021.03.23 05:47 신고

    저는 이병률 시인을 알지 못합니다.
    그의 시만 몇 편 읽었습니다.
    그는 '신사'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여기 두 편의 시에서도 그의 신사다운 모습을 엿보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답글
    • 숲지기2021.03.23 21:54

      이미 읽은 적이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이분의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문학지나 시집은 형편상 접할 수가 없고요
      고맙게도 누군가 온라인에 옮겨 놓은 것들만 읽습니다.
      이만한 혜택이 어딘가 싶죠.

      신사라 하셨습니다.
      아, 어려워서요

    • 파란편지2021.03.23 23:09 신고

      ㅎㅎㅎ~
      느낌으로요.
      저는 2009년에 어디서 봤는데 이미 보셨겠지요? '장도열차'

      .......................................................

      장도열차 / 이병률 (1967~ )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

      PC 화면에 이 시인의 어떤 시를 적어놓고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네요.

    • 숲지기2021.03.24 11:49

      대단한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말길을 참 쉽고 경제적으로 엽니다.
      고맙습니다 교장선생님.

    • 숲지기2021.03.24 11:50

      저도 이미 이 시를 필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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