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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정월에 읽는 시

숲 지기 2023. 1. 1. 12:48

 

 

가왕도 가는 길

/최삼용

 

 

간혹 삶이 부담스러워

한 번쯤 길을 잃고 싶은 날 있다면

별발이 바다로 마구 쏟아지는 가왕도로 가자

드러누운 묘혈 자리에서 별 헤는 망자의 삭은 가슴 닮아

언제나 침묵한 채 바다를 지키는 작은 섬

은둔이나 칩거를 핑계 삼지 않더라도
인적 떠나 시간까지 멈춘 그 섬에 들면

온통 코발트 빛 눈부심만 낭자하게 춤을 추리

끝이 또 다른 시작이라면

오늘의 곤궁 또한 풍요의 척도가 되겠지만

겨울이 창창한 햇살 발라 추위를 말리는 갯가에

빨간 입술 벌린 채 동백꽃이 바다와 살고

최신형 네비게이션을 켜도 뭍에서 끝난 지도에서는

그곳으로 가는 길 찾을수 없어

말품 발품 다 팔아야 하네

그래서 적당히 두고 온 걱정 삭혀 두고

오늘은 나 여기서 이만 길을 잃으려 하네

 

―시집『그날 만난 봄 바다』(그루, 2022)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1956

 

 

............................

 

 

... 가왕도라는 섬이 실재로 있는지, 시인 만의 가상의 섬인지 알 수 없다.

코발트빛이 낭자하게 춤 추고

별발이 바다로 마구 쏟아지는 그곳이라 했다.

인적을 떠나 시간까지 멈춘다는 그 섬에 

시인은 지금쯤 동백꽃 꽃망울을 맺게 하느라 아주 바쁠 것이다.

나의 조국엔 어쩌면 가왕도라는 섬이 실재로 있을 것도 같다.

올핸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있기를......

 

... 큰 시인 김수영의 기침이 인상적이다.

기침은 우리 몸의 매우 중요한 보호반사 작용이다.

즉 이물질, 점액 등의 제거 를 위한 기도 청소 쯤으로 설명하며 

감염이나 폐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반사적 폭발적인 공기분출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기침은 증상일 뿐 그 자체로는 질병이 아니다.

 

김수영은 죽음과 영혼까지 잊을 만큼 밤새 고민한

젊은 시인의 호흡으로, 그 호흡의 부산물로

기침하고 또 가래를 뱉으라 했다

그것도 하얀 눈 위에.

 

... 한 해의 시작이 홀가분하다.

세상을 좀 더 알게 된 지난 해, 그 감사함을 딛은 내 몸에게 새 속옷을 입혔다.

흐려서 볼 수 없더라도 

저 높은 어딘가에 이딴 만한 새 해가 떠 있을 것이다.

 

... 훌륭한 시들을 댓가없이 모셔왔다.

써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사진은 이웃 실비에리할머님댁 울타리의 설중명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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