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2월에 읽는 시 본문

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2월에 읽는 시

숲 지기 2023. 2. 1. 06:14

 

 

사랑합니다

/이정록

 

제가 드려야 할 말이 아니라

제가 늘 들어야 할 말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언젠가 사용설명서까지 올 거라 믿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내 상처에만 필요한 약이라고 여겼습니다.

옹알이부터 시작한 최초의 말인 걸 잊어버리고

고쳐 쓴 유언장의 사라진 글자처럼 생각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건넨 흉터들,

그 바늘 자국을 이어보고야 알았습니다.

마중물을 들이켠 펌프처럼 숨이 턱, 막혀왔습니다.

기름에 튀긴 아이스크림처럼 당신의 차가움을 지키겠습니다.

빙하기에 갇힌 당신의 심장을 감싸겠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별자리처럼 아름다운 말이었습니다.

봉숭아 꽃물을 들인 새끼손톱 초승달에

신혼방을 차리는 가슴 뛰는 말이었습니다.

당신을 당신 그대로 사랑합니다.

별자리와 구름의 이름도 바라보는 쪽에서

마음대로 이름 붙인 것이었습니다.

까치밥에겐 늦었다는 원망 따위는 없습니다.

당신의 부리가 아플까봐 햇살에 언 몸을 녹이던

까치밥이 바닥을 칩니다. 사랑합니다.

몸통 가득한 얼음을 녹여서

마중물을 들이켠 펌프처럼

숨이 퍽, 터졌습니다.

- '그럴 때가 있다' - 창비 2022.

 

 

 

 

 

 

 

 

나와 백석과 하얀 차와 한계령

/김왕노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는 백석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면

오늘 밤 푹푹 눈은 내려라.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여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앉아 적설의 양만큼 그리움을 푹푹 쌓는다.

그리움을 쌓으면서 생각한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눈이 푹푹 쌓이는 밤에는

차를 타고 한계령을 넘어가 한 살림 차려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그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 누군가는 이 쌓이는 적설의 그리움이라면

아니 올 리가 없다.

한계령을 넘어간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름을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한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그 누군가는 나를 사랑하고

주차장에서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차는 오늘 밤이 좋아

부릉부릉 혼자서 시동을 걸어 볼 것이다.

*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패러디해서.

 

 

 

 

 

 

사람을 찾습니다

/서정홍

 

몸과 마음이 지친

쓸쓸한 벗을 찾아가

가만가만 술 한잔 따르는 사람

 

담 넘어 들려오는

이웃집 노인의 기침 소리만 듣고도

마음이 짠한 사람

남한테 아무런 조건도 기대도 없이

베풀고 또 베풀면서도

그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

 

남의 실수와 잘못을 보면서

혹시 ‘나’도 잘못 살고 있지 않나 싶어

제 삶을 되돌아보는 사람

 

골목길 발소리만 들려도

‘아, 사람이구나!’싶어

그냥 마음 설레는 사람

 

 

 

................

 

..... 술술 읽히는 시들,

댓가 없이 읽고 또 가져올 수 있음에 감사한다.

 

..... 무사히 2023년에 착지를 한 뒤 1월을 잘 살았다.

뚜껑을 새로 연 2월은 어떻게 채울까? 

작년에 꾸역꾸역 바꾼 글씨체로 굵직한 계획들을 쓰고,

그 아래 공간엔 미주알고주알 자잘하게 실천 내용을 채워 썼다.

나는 눈이 낮고 자잘한 사람,

이렇게 써 놓고,

그 위에 더러 밑줄만 그으면서도 아주 잘 논다. 

 

..... 일터에 올해부터 새 시스템을 들이는 바람에 머리 쓸 일이 많아졌다.

한달이 지났지만 기계치에 돌머리 소유자인 나는 여전히 적응단계...

그런 와중에 남독일 젊은 사진협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5명 작가들이 주제를 놓고 피 터지게 토론하고 정기적 전시회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올해의 그들 주제는 „테크닉 Technik“ 이라 정했다는데 , 어떻게들 접근할지 궁금하다.

2월2일 그들 만남에 초대를 받았고, 일단 만나는 볼 생각이다.

그 이전에, 지난 1월 중순까지의 바덴주 작가협회전에 수채화 졸작 잘 보여주었고.

숲에 은닉하고 산다는 말이 말짱 거짓말이 되어가는 나날이다.

 

..... 블로그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할 일 마치고 블로그를 열지만 자주 그 앞에서 졸고 있다.

감히 친구라고는 못하겠지만,  

존경하며 식구처럼 친숙하신 분들이 아프지 마셨으면 좋겠다. 

다치지도 마셨으면 한다.

 

..... 사진은 눈 속에 피어난 크로쿠스와 희끗희끗 눈이 녹고 있는 겨울초원

 

'책상서랍 > 초하루 시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에 읽는 시  (17) 2023.04.01
3월에 읽는 시  (20) 2023.03.01
2023년 정월에 읽는 시  (10) 2023.01.01
12월에 읽는 시  (10) 2022.12.01
11월에 읽는 시  (0) 2022.11.0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