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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읽는 시

숲 지기 2023. 4. 1. 22:28

 

봄편지

/이문재

 

사월의 귀밑머리가 젖어 있다.

밤새 봄비가 다녀가신 모양이다.

연한 초록

잠깐 당신을 생각했다.

떨어지는 꽃잎과

새로 나오는 이파리가

비교적 잘 헤어지고 있다.

접이우산 접고

정오를 건너가는데

봄비 그친 세상 속으로

라일락 향기가 한 칸 더 밝아진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려다 말았다.

미간이 순해진다.

멀리 있던 것들이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저녁까지 혼자 걸어도

유월의 맨 앞까지 혼자 걸어도

오른켠이 허전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의 오른켠도 연일 안녕하실 것이다.

-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이 고목은 은행나무,한 동안 허했던 가지에 초록초록 작은 무엇인가가 꿈틀대고 있다.

 

꽃이 하는 말

/ ​김금용

 

큰일났다

다시 봄이다

꽃이 깨어나지 않으면

봄은 안오는 것일까

봄이 와야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뿜는 것일까

여유 만만한 구름은

가까이 있지 않아서

꽃 피는 일과 관계없다고 뒷짐이지만

일 년에 한 번 피는 꽃은

뒤척이며 향내를 떨구며 밀당을 한다

멈춰있다는 건 착각

꽃도 나도

봄을 쫓아 거듭 태어나고

거듭 죽어간다

-  2022년 '미네르바' 봄호

 

 

봄 풍경을 친구가 핸드폰에 담고 있다.
친구가 보내준 저 순간의 사진

 

맨 처음의 봄

/오광수

 

봄꽃이란 봄꽃 다 피었을 때

우리 생도 피었으면 좋겠네

그늘 속 숨죽이던 이끼도

연파랑 꽃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네

산수유는 이미 노랗고, 개나리는 저리도 환한데

화무십일홍, 화무십일홍

목련꽃 아래서 입맞춤 하던 순간 혼절하듯 숨을 멈추던 당신 시나브로 청춘은 시들어 이제는 꽃이 진자리 송홧가루 흩날리는 지상에서 아직도 네가 그리운 건 지병인거야

봄꽃이란 봄꽃 다 질 때

우리 생도 저물었으면 좋겠네

당신과도 그냥 지나는 소문처럼

찰나의 어디쯤서 스쳤으면 좋겠네

구절초 같은 남루, 먼지 쌓인 민들레인들 어떤가

화무십일홍, 화무십일홍

맨 처음의 봄 꽃 진 자리, 꽃이 필 자리

- 오광수,​'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한 마리 작은 물오리가 꿈쩍도 않고 저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알을 품었구나 싶다.

 

 

...........................

 

꼭 반년 전부터 친구 이네스와 약속을 했었다 

목련이 필 때 성의 뜰을 거닐자고.

그러나 우리는 한 고집 하며 살아온 처지,

3월 한 나절 시간 내는 일이 서로에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구네 부부가 주거니 받거니 코로나까지 걸렸네.

 

그래서 엄포를 놨다, '너 이 봄 놓치면 같은 봄은 다시 볼 수 없을 거야.'라고.

말이 되든 안 되든, 엄포의 효과가 적효했던지 우리는 만났고, 

목련꽃 아래 상춘객이 되너 3월 어느 주말 시간을 물 쓰듯 썼다.

 

"유독 올해 봄꽃들이 더 찬란하지 않니?" 친구가 물었다.

"아냐, 작년에도 아니 그 이전에도 때가 되면 여긴 늘 이랬어.

너만 몰랐던 거야"

"..............(친구는 말없이 자주빛 목련을 응시했다.)"

"너만 몰랐던 거 아니? "

"..............(친구는 그때도 말이 없다)

얼굴을 보니 웃다가 찡그리는 중인지 혹은

찡그린 얼굴에 미소를 덧 입히는 중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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