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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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22. 8. 1. 09:42

 

 

너는 장마를 장미라고 읽는다

​/현이령

장미 연립 반지하 방에 누워 옆방을 엿본다

나는 장마가 길어져 그 방으로 가지 못하고

퉁퉁 불은 손가락으로 너에게 편지를 띄운다

물속에 잠긴 말들

장마를 안고 피어난 꽃은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다

겁먹은 얼굴로 우는 꽃다발

지난 밤은 비가 너무 깔깔대며 웃더라

소리 없는 뉴스가 들리고

장마에 천둥이 요란하다

저녁은 꽃잎을 넣은 비빔밥으로 할까?

아무렇게나 으깨진 꽃잎

가시에 찔린 손으로 너에게 간다

붉게 물든 고백들

백만 송이 장미가 피는 동안 장마는 매일 시작된다

오늘 밤도 창문에 혈흔을 찍는 꽃잎

장마다

장미다

장마다

장미다

모르는 어제를 꽃점으로 치면

마지막 입에서도 붉은 꽃잎이 떨어진다

혀는 자주 입속을 떠나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너를 본다

아무도 울지 않는 아침

불어 터진 라면을 두고 혼자 앉는다

가랑가랑 빗물이 들어찬 방

나는 장마가 길어져 그 방으로 가지 못하고

반지하 방에 누워 고스란히 장대비를 맞는다

뜨거운 장마의 다른 말은 잃어버린 장미

식어버린 등 뒤에서 욕창으로 피어나는

붉은 당신

​- 공정한시인의사회  2022, 7월호

 

 

 

 

 

 

내 생애 처음 돈 벌기

/ 마경덕

 

 

졸업을 했으면 밥값을 해야지

동네 어르신들 참견이 심장을 찌르는 비수 같았다

빈둥빈둥

밥심은 남아돌고 밥값은 멀리 있었다

어느 날 슬며시 다가온 일거리

비린내 묻히는 일인디 니가 헐는지 모르겄다

아무거나 시켜만 주세요

나에겐 비린내보다 더 부끄러운 것이 많았다

햇살이 쨍쨍한 바닷가

노련한 아줌마들 틈에 스무 살이 쪼그려 앉아 시키는 대로 풀치의 배를 갈랐다

때를 놓쳐 한물간 어린 갈치

기름진 내장에서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난생처음 내 손으로 돈을 번다는 기쁨에

팔뚝의 소름을 털어내며

종일 다듬은 갈치 다섯 상자

한동안 꿈에서도 고물고물 구더기가 손등을 기어다녔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던 품삯

갈치장사 김씨가 망해서 돈을 받지 못했다고

엄마는 말했지만,

난 알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번 몇 푼은 가난한 엄마의 몫이었다

- 창작21  2022, 봄호

 

 

 

 

 

 

 

먹어도 먹어도

/이대흠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는 농심 새우깡처럼,

아무리 그리워해도 나의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고,

바삭바삭 금방 무너질 듯 마른기침을 토하며,

그리워 그리워해도 그리움은,

질리지 않고,

물 같은 당신께 닿으면 한꺼번에 녹아 버릴 듯,

왠지 당신의 이름만 떠올라도 불길처럼,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그리움은,

- '눈물속에는 고래가 산다'  창비 1997

 

 

..................

 

..... 언젠가부터 글씨체를 교정하고 있다.

내가 써놓고도 무슨 글자인지 도대체 알 수 없어 쩔쩔매게 되는 지경까지 왔으므로.

혹자는 상형문자 같다 할 만큼 난필 중의 난필을 이제서야 손볼 생각을 하다니,

숲지기 나이 많이 먹는 중.

 

..... 뿐만 아니라 요가도 시작했다.

코로나 감염, 3차례의 예방주사 경험이

몸을 위해 뭐든 하도록 했다. 

 

..... 20년도 더 전에 겪었던 '장마'는 생각할 때 마다 머릿속이 흥건해 진다.

그 즈음 인도에서 겪었던 몬순의 기억도 간헐적으로 찾아 든다.

장마를 장미로 꽃 피우다니-(너는 장마를 장미라고 읽는다

​/현이령).

.....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새우깡처럼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그리움이 될 게 뻔하다-(먹어도 먹어도

/이대흠).

 

마지막 초하루 편지 

 

 

 

  • Chris2022.08.01 21:50 신고

    시의 톤이 조금 무거워 보인다.
    조금은 슬퍼야 무게가 있지.
    해피 앤딩이 경박해 보이는 것 처럼.

    나는 무협지를 좋아한다.
    나쁘놈은 꼭 죽고
    종편은 무조건 해피앤딩이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도 슬픈데
    내가 모르는 죽음 이후에 희망을 걸고 사는 것은
    내 수준에 벅차다.

    장마를 장미라고 읽고
    자살을 살자라고 우기면서
    진흙탕이 천국이라는 환시를 앓는 것.
    이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답글
    • 숲지기2022.08.02 16:16

      곧 없어질텐데 그럼에도 댓글을 주셨습니다.
      글로 기록되지 않는 말의 경우처럼
      사라질 댓글입니다.

      크리스님의 무협지 이야긴 언젠가 들었지 싶은데, 매번 접할 때마다 재밌습니다.
      한번 손에 들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절대로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죠.

      시는 약자의 편입니다.
      빛의 반대에서 암울하고 쓸쓸하고
      무한히 실패하는 자들의 향유물이지요.
      그리스 비극에 열광해 온 이유도 그 점에 있을 거고요.
      (아는 척 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워낙 모르는 사람이라서요)

      자살을 살자로 읽기,
      우리말은 여러모로 우수합니다.



    • Chris2022.08.03 15:25 신고

      누군가의 강의에서 들은 말, 내가 듣고 보고 쓰고... 한 것들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나의 저 아래 무의식 세계 창고 속에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다. 꺼내 쓰는 프로그램만 작동되면 언제든지 자동 창고에 저장된 물건처럼 밖으로 나온다.

      저는 댓글 사라지는 것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 댓글이 어치피 주옥같은 것들이 아니고, 또 쓰면 되지요. 그땐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멍청했던 댓글들이 사라지는 것도 좋구요. ㅎㅎ

      저는 시를 모릅니다. 시가 암울하고 실패한 자들의 향유물이라면, 그것으로 끝인가요? 뭐 더 나갈 곳이 없나요? 저 바닥에서 끝이라면 좀 답답해질 것 같습니다. 무협지처럼 어떻게 뿅~하고 절벽 아래에서 솟구쳐 오를 수 없나요?

    • 숲지기2022.08.12 14:41

      실패한 자들의 향유뮬, 맞긴하죠.
      그러나 그걸 걸러내지 않는다면 실패자의 피곤한 넋두리만 되는데
      그걸 누가 읽고 싶어 할까요.
      한때 낭만주의자들에겐 그런 단순 무기(?)도 먹힐 때가 있긴 했지만요.
      요는 고도의 정제력을 가지고
      실패하고 번민하는 지리한 그 곳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더 깊어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혹자는 승화라고도 하죠.
      저는 하수여서 그런 단어를 범(?)할 땐 좀 떨립니다.

      그리고 무협지에서처럼 뿅하고 하늘로부터 내려오거나 또 올라가는 것, 있습니다.
      시적인 착상이죠.
      아주 잠깐이지만 착상이 스칠 때 메모지를 필히 준비하고 받아적어야 합니다.
      기억했다가 나중에,,,, 그러면 증발하죠 대부분.

      바로 밭에 풋고추 따러 갑니다.
      토마토도 따오고요,
      특히 덜핀 호박꽃을 따서 이뿌게 볶아
      접시에 꽃 피게 할 겁니다.

  • snooker2022.08.04 13:44 신고

    썩은 사과, 벌레먹은 사과 올렸는디
    구경허러 안 오시네예.ㅎㅎ
    다음이 아이고 내이바랑게여.

    답글
    • 숲지기2022.08.12 14:42

      내이바,
      여튼 칸또르쌤 작명에는 엄지를 세워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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