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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115)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가시/ 정호승지은 죄가 많아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손등에는 채송화가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장미는 시들지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슬며시 그만두었다- 정호승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2004 장마 / 안상학세상 살기 힘든 날비조차 사람 마음 긁는 날강가에 나가..

감자꽃 필 무렵 / 허림 아날로그 시계 바늘이 북쪽을 가리키고 있다감자꽃이 피었다내면 광원 월둔 골짜기안개 풀리면서땅 속 감자가 여무는 동안안부 편지 한 줄 쓰지 못했다산그늘 먹물로 풀리는그날 저녁밥은 먹고 사냐는 문자를 받았다- '말 주머니' 북인, 2014 가난한 풍경 / 조동례외롭다는 이유로세상 등지고 싶은 사람 하나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건그도 배고프고 나도 배고팠던 것세상을 등진 그가나에게 한 발짝 다가오면벼랑을 등지고 사는 나물러설 곳이 벼랑이어서벼랑이 한 발짝 가까워지는데아는지 모르는지간절하고 절박한 마음 하나로물러설 곳도 나아갈 곳도 잊고주머니에서 풀씨 몇 개비상금처럼 털어내고 있다하마터면 나도 외롭다는 말을탈탈 털어놓을 뻔했다- 조동례,『달을 가리키던 손가락 』(삶창, 2013..

이슬/이기철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았으므로저 순결에 도달할 수 있었다아무 것도 먹은 맘 없었으므로저 순결에 도달할 수 있었다나락이 어딘 줄 모르므로 공중에 매달릴 수 있었다누굴 한 번 지독히 사랑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었으므로저리도 투명한 몸일 수 있었다숨어서 지내는 일생이 전부인 물방울피마저 하얘서 물방울인 이슬가시에 찔리면 제 피를 어디에 잠궈 두나 산에 사는 작은 새여 / 장석남감꽃이 나왔다신문을 접고 감꽃을 본다참 먼 길을 온 거다벽에 걸린 달력 옛그림엔 말 씻는 늙은이 진지하고살찐 말은 지그시 눈 감았다어디서 나비라도 한 마리 날아와라날아와서 말 끌고 가라성밖 막다른 골목 어귀에 자리 잡고 살지만번거롭다, 밥이나 먹고 사는 일이야 간단할 것인데이 눈치 저 눈치 며칠째 이 小市民을..

봄비 / 배한봉당신은 새 잎사귀의 걸음으로 내게 들어왔다하늘에서 대지로 조용조용 속삭이며 노크하던당신의 발자국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뛰고피가 돌아 세계의 상처에 살이 차올랐고구름의 눈썹 아래로 휴가 떠난 태양의 안부가 궁금했지만간절했던 것들은 간절하게 자라서척박한 페이지에 초록빛 문장을 새겨 넣었다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면 그새 새로 출간된날개가 내 겨드랑이에서 언뜻 보였다투명한 잎사귀의 걸음으로 당신이 내게 들어올 때나뭇가지 안에 갇혀 신음하던 그 춥고 아픈,간절한 것들이 찍어놓은 푸른 바코드젖은 말들이 도처에서 재잘대며 걸어 나오고 있다당신의 아이들이 재잘대며 달려 나오고 있다- 배한봉 '주남지의 새들' 천년의시작 2017 라일락 / 허수경라일락어떡하지,이 봄을 아리게살아버리려면?신나..

벚꽃 반쯤 떨어지고 / 황인숙 한 소절 비가 내리고 바람 불고 벚꽃나무 심장이 구석구석 뛰고 두근거림이 흩날리는 공원 소롯길 환하게 열린 배경을 한 여인네가 틀어막고 있다 엉덩이 옆에 놓인 배낭만 한 온몸을 컴컴하게 웅크리고 고단하고 옅은 잠에 들어 있다 벚꽃 반쯤 떨어지고 반쯤 나뭇가지에 멈추고. - 황인숙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2003 눈빛으로 말하다 / 나호열 떠나보지 않은 사람에게 기다려 보지 않은 사람에게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잔뜩 움켜쥐었다가 제풀에 놓아 버린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독약 같은 그리움은 찾아오지 않는다 달빛을 담아 봉한 항아리를 가슴에 묻어 놓고 평생 말문을 닫은 사람 눈빛으로 보고 눈빛으로 듣는다 그리움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꽃 그저 멀기만 ..

명자나무 곁에서 / 임영조 오랜 침묵만이 꽃을 피울까 영하에도 꼿꼿이 언 손 들고 벌서던 침묵의 가지 끝에 돋는 응어리 진홍빛 뾰루지를 보는 것도 아프다 오늘은 기어이 발설하리라 잉걸처럼 뜨겁고 위험한 자백 궁금해, 귀를 갖다 대본다 (아직 입 열때가 아니다!) 삼월의 끄덩이를 잡아채는 꽃샘바람 이미 붉어 탱탱한 입술 꼭 다문 명자꽃 망울이 뾰로통하다 해도, 그리운 명자 씨! 어서 귀엣말을 속삭여다오 그 내밀한 사랑의 불씨로 내 가슴속 외로움 다 태워다오 그게 혹 새빨간 거짓말일지라도 오늘은 다 곧이듣고 싶다 아직도 입다물고 망설이는 명자 씨! 온몸에 은근히 가시를 숨긴! - 임영조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민음사 2000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 문신 누가 아프다는 이..

기억한다 / 류시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많은 것이 자신이 희망하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상처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에 자신이 미워졌다고 고백한 시인을 기억한다 눈사람에게 추워도 불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한 시인을 기억한다 끝까지 울면 마지막 울음 속에 웃음이 숨어있다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사람이니까 넘어져도 괜찮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나는 정원사이자 꽃이라고 노래한 시인을 기억한다 언제부터 시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언제부터 시인이기를 그만두었느냐고 되물은 시인을 기억한다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느냐고 물은 시인을..

두꺼비집이 떨어지는 근하신년 /김승희 일 년 열두 달 처음 열리는 새해 첫날에 영하 17도에 근하신년! 갑자기 정전이 오고 우리 집에 전기가 끊어지고 난데없이 벽 위의 신발장 위에 두꺼비집이 내려오고 피라미드에서도 어두운 두꺼비집이 떨어지고 보일러 텔레비전 냉장고 밥솥 에어 프라이어도 모든 가전도 다 안 돌아가고 어쩌자는 것인가 삶이 갑자기 바뀌고 밤이 갈라지고 주술이 술렁거리는 피라미드 속 어두운 밤 새해 첫날 정전의 밤 철물점 아줌마도 새해 첫날에 고향 시골에 가고 전기 수리공도 한전 검침원도 다들 새해 첫날이라 놀고 저 아래 도시는 강추위에 어두운 빛은 더 춥고 앞집도 모르고 뒷집도 모르고 옆집도 모르고 두꺼비집은 밤새워 힘없이 떨어지고 온몸으로 동시에 두꺼비집은 내려가고 하얀 빨래는 빙폭처럼..

손의 고백 / 문정희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의 손이 언제나 욕망을 쥐는 데만 사용되고 있다는 말도 거짓임을 압니다 솨아솨아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 보면 무엇을 쥐었을 때보다 그저 흘려보낸 것이 더 많았음을 압니다 처음 다가든 사랑조차도 그렇게 흘러보내고 백기처럼 오래 흔들었습니다 대낮인데도 밖은 어둡고 무거워 상처 입은 짐승처럼 진종일 웅크리고 앉아 숨죽여 본 사람은 압니다 아무 욕망도 없이 캄캄한 절벽 어느새 초침을 닮아버린 우리들의 발걸음 집중 호우로 퍼붓는 포탄들과 최신식 비극과 햄버거처럼 흔한 싸구려 행복들 속에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매장된 동물처럼 일어설 수도 걸어갈 수도 없어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솨아솨아 흘려보낸 작은 오솔길이 와락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

도반 /이상국 비는 오다 그치고 가을이 나그네처럼 지나간다 나도 한 때는 시냇물처럼 바빴으나 누구에게서 문자도 한 통 없는 날 조금은 세상에게 삐친 나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준다. 양파 접시 옆ㅇㅔ 묵은 춘장 앉혀 놓고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어디냐고 무덤덤하게 마주 앉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멀리 있고 밥보다 짜장묜에 끌리는 날 그래도 나에게 내가 있어 동네 중국집 데리고 가 짜장면을 시켜준다. -이상국'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2021 섬 /정용주 대체로, 소통은 하고 있으나 관여하지 않으면 섬이라 한다 가고자 하면 갈 수 있으나 마음에 두고 있으면 섬이라 한다 고요한 것 같으나 폭풍에 쌓이고 몰아치지만 잔잔해지면 섬이라 한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면 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