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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110)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명자나무 곁에서 / 임영조 오랜 침묵만이 꽃을 피울까 영하에도 꼿꼿이 언 손 들고 벌서던 침묵의 가지 끝에 돋는 응어리 진홍빛 뾰루지를 보는 것도 아프다 오늘은 기어이 발설하리라 잉걸처럼 뜨겁고 위험한 자백 궁금해, 귀를 갖다 대본다 (아직 입 열때가 아니다!) 삼월의 끄덩이를 잡아채는 꽃샘바람 이미 붉어 탱탱한 입술 꼭 다문 명자꽃 망울이 뾰로통하다 해도, 그리운 명자 씨! 어서 귀엣말을 속삭여다오 그 내밀한 사랑의 불씨로 내 가슴속 외로움 다 태워다오 그게 혹 새빨간 거짓말일지라도 오늘은 다 곧이듣고 싶다 아직도 입다물고 망설이는 명자 씨! 온몸에 은근히 가시를 숨긴! - 임영조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민음사 2000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 문신 누가 아프다는 이..
기억한다 / 류시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많은 것이 자신이 희망하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상처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에 자신이 미워졌다고 고백한 시인을 기억한다 눈사람에게 추워도 불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한 시인을 기억한다 끝까지 울면 마지막 울음 속에 웃음이 숨어있다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사람이니까 넘어져도 괜찮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나는 정원사이자 꽃이라고 노래한 시인을 기억한다 언제부터 시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언제부터 시인이기를 그만두었느냐고 되물은 시인을 기억한다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느냐고 물은 시인을..
두꺼비집이 떨어지는 근하신년 /김승희 일 년 열두 달 처음 열리는 새해 첫날에 영하 17도에 근하신년! 갑자기 정전이 오고 우리 집에 전기가 끊어지고 난데없이 벽 위의 신발장 위에 두꺼비집이 내려오고 피라미드에서도 어두운 두꺼비집이 떨어지고 보일러 텔레비전 냉장고 밥솥 에어 프라이어도 모든 가전도 다 안 돌아가고 어쩌자는 것인가 삶이 갑자기 바뀌고 밤이 갈라지고 주술이 술렁거리는 피라미드 속 어두운 밤 새해 첫날 정전의 밤 철물점 아줌마도 새해 첫날에 고향 시골에 가고 전기 수리공도 한전 검침원도 다들 새해 첫날이라 놀고 저 아래 도시는 강추위에 어두운 빛은 더 춥고 앞집도 모르고 뒷집도 모르고 옆집도 모르고 두꺼비집은 밤새워 힘없이 떨어지고 온몸으로 동시에 두꺼비집은 내려가고 하얀 빨래는 빙폭처럼..
손의 고백 / 문정희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의 손이 언제나 욕망을 쥐는 데만 사용되고 있다는 말도 거짓임을 압니다 솨아솨아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 보면 무엇을 쥐었을 때보다 그저 흘려보낸 것이 더 많았음을 압니다 처음 다가든 사랑조차도 그렇게 흘러보내고 백기처럼 오래 흔들었습니다 대낮인데도 밖은 어둡고 무거워 상처 입은 짐승처럼 진종일 웅크리고 앉아 숨죽여 본 사람은 압니다 아무 욕망도 없이 캄캄한 절벽 어느새 초침을 닮아버린 우리들의 발걸음 집중 호우로 퍼붓는 포탄들과 최신식 비극과 햄버거처럼 흔한 싸구려 행복들 속에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매장된 동물처럼 일어설 수도 걸어갈 수도 없어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솨아솨아 흘려보낸 작은 오솔길이 와락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
도반 /이상국 비는 오다 그치고 가을이 나그네처럼 지나간다 나도 한 때는 시냇물처럼 바빴으나 누구에게서 문자도 한 통 없는 날 조금은 세상에게 삐친 나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준다. 양파 접시 옆ㅇㅔ 묵은 춘장 앉혀 놓고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어디냐고 무덤덤하게 마주 앉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멀리 있고 밥보다 짜장묜에 끌리는 날 그래도 나에게 내가 있어 동네 중국집 데리고 가 짜장면을 시켜준다. -이상국'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2021 섬 /정용주 대체로, 소통은 하고 있으나 관여하지 않으면 섬이라 한다 가고자 하면 갈 수 있으나 마음에 두고 있으면 섬이라 한다 고요한 것 같으나 폭풍에 쌓이고 몰아치지만 잔잔해지면 섬이라 한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면 섬이라..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 권대웅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기억이 있다 당신을 적셨던 사랑 아프지만 아름답게 생포했던 눈물들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 건널목에서 비 맞고 서 있던 청춘들이 우르르 몰려올 때마다 기우뚱 하늘 한구석이 무너지고 그 길로 젖은 불빛들이 부푼다 흐린 주점에서 찢었던 편지들이 창문에 타자기의 활자처럼 찍히는 빗방울의 사연을 듣다보면 모든 사랑의 영혼은 얼룩져 있다 비가 그치고 가슴이 젖었던 것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 몸으로 젖었던 것들만이 잊힐 뿐이다 밤거리를 맨몸으로 서성거리는 빗방울들 사랑이 떠나간 정거장과 쇼윈도와 창문과 나무들의 어깨 위로 구름과 놀던 기억들이 떨어진다 국화 허리 같은 당신이 떨어진다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문학동..
소식 /이덕규 흰나비 한 마리가 너럭바위 위에 앉아 아무런 기약 없이 떨어져 쌓이는 꽃잎 사연들을 벌써 여러장째 복사하듯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먼 실연의 벼랑 끝에 맺힌 꽃봉오리에게 이 사태를 전하러 가야 하는데 흰나비가 문득 날개를 접고 골똘해집니다 한때 뜨거웠던 기억에 피가 도는지 캄캄했던 바위가 조금씩 물렁해지는 한낮입니다 - 오직 사람 아닌 것, 문학동네, 2023 두부 이야기 /정끝별 출생의 비밀처럼 자루 속 누런 콩들이 쏟아진다 이야기는 그렇게 실수처럼 시작된다 비긋는 늦여름 저녁 식탁에 놓일 숟가락 개수를 결정해야 해, 그게 라스트신이거든 물먹다 나왔는데 또 물먹으며 으깨진다 시간의 맷돌은 돌아가고 똑딱똑딱 떨어져 고인 너의 나날은 푹푹 삶아져..
장마 그친 뒤 / 이성부 흰 구름 한 자락이 산의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사뿐히 땅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하늘로 드높이 올라가지도 못하는 흰 구름 한 자락이 산비탈을 이리저리 핥으며 머뭇거린다 산은 골짜기에 깊게 성감대가 숨어 있어 꿈적도 하지 않고 꼿꼿이 고개를 세워 먼 곳만 바라본다 크고 작은 일에 부대끼다 상처받는 마음들도 한동안은 저렇게 맑은 산봉우리로 고개 쳐들 날 있느니 비로소 먼 데 빛나는 강줄기를 보고 희망의 굽이굽이에 서리를 입김도 피어올라 함박꽃 웃음 온 산에 가득하다 흰 구름 한 자락이 별 볼 일 없다 고개를 넘어 사라진다 - 이성부 '도둑 산길' - 책만드는집, 2010 한여름 밤 / 조향미 빈틈이 없다 하늘과 땅 사이가 팽팽하다 개구리 떼 미친 발광(發光..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시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2022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 그런 날 /박형준 오래 서가에 꽂아 둔 낡은..
기다림에 대하여 /정일근 기다림이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늦은 퇴근길 107번 버스를 기다리며 빈 손바닥 가득 기다림의 시를 쓴다 들쥐들이, 무릇 식솔 거느린 모든 포유류들이 품안으로 제 자식들을 부르는 시간, 돌아가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부르고 싶다, 어둠 저편의 길들이여 경화, 태백, 중초 마을의 따스한 불빛들이여 어둠 저편의 길을 불러 깨워 먼 불빛 아래로 돌아가면, 아내는 더운 밥냄새로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리 아이들은 멀리 있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있으리 살아 있음이여, 살아 있음의 가슴 뛰는 기쁨이여 그곳에 내가 살아 있어 빈 손바닥 가득 기다림의 시를 쓴다 푸른 별로 돋아나는 그리운 이름들을 쓴다 꽃의 고요 / 황동규 일고 지는 바람 따라 靑梅 꽃잎이 눈처럼 내리다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