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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11월에 읽는 시 본문
도반
/이상국
비는 오다 그치고
가을이 나그네처럼 지나간다
나도 한 때는 시냇물처럼 바빴으나
누구에게서 문자도 한 통 없는 날
조금은 세상에게 삐친 나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준다.
양파 접시 옆ㅇㅔ 묵은 춘장 앉혀 놓고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어디냐고
무덤덤하게 마주 앉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멀리 있고
밥보다 짜장묜에 끌리는 날
그래도 나에게 내가 있어
동네 중국집 데리고 가
짜장면을 시켜준다.
-이상국'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2021
섬
/정용주
대체로, 소통은 하고 있으나 관여하지 않으면 섬이라 한다
가고자 하면 갈 수 있으나 마음에 두고 있으면 섬이라 한다
고요한 것 같으나 폭풍에 쌓이고 몰아치지만 잔잔해지면 섬이라 한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면 섬이라 한다
그리워도 오지 않으면 섬이라 한다
그리워도 가지 않으면 섬이라 한다
무수한 섬을 모아 사람이라 한다
- '쏙닥쏙닥',시인동네, 2020
노령에 눕다 / 이기철
- 장수에서
여기 와 미루었던 답신을 쓰네
아무에게도 애린 보내지 않고 살리라 했던 마음
실꾸리처럼 풀려 잡은 펜 자꾸만 홍역을 앓네
잠자리 마른 발이 밟고 간 하늘을 바라며
자꾸 빗금 진 자네 눈썹을 떠올리네
말을 갖지 않은 뫼꽃들은 나를 보고
어서 시집가고 싶다고 말하는 게 틀림없네
내가 벌이 되지 못하니 어찌 저 꽃에게 장가들 수 있는가
늦었는가? 여기 와서 멀어진 한 도시에
나 혼자 보관해 둔 사랑을 꺼내 읽네
자네의 미간 아래쪽으론 자동차 바퀴들이
제 살갗을 조금씩 버리며 달려갈 것이네
무사하지 않은 사람들이 무사한 표정으로 수저를 드는 그곳에도
벌(罰)처럼 가을이 와 조금씩 전염될 것이네
나는 시 한 줄로 세상을 요약해 보이고 싶지만
세상은 일만 페이지의 글줄에도 저 자신을 담지 않네
이른가? 도시는 명랑하고 저녁은 글썽거린다고 나는 쓰네
상처 속의 길은 멀어 언제나 처음부터 헛디디는 것이네
아무도 노랑나비와 할미새와 말벌에 대해 말하지 않을 때
나는 이슬비 대신 금발 햇살과 꽃들의 십자수와
말매미의 음반에 대해 말하려 하네
괜찮은가? 저 계곡물의 백 개의 입에 대해 다 말했으니
이만 펜을 놓네, 무사만 해서야 되겠는가
늘 두근거리는 죄책으로 하루를 물들이게
* 노령: 노령산맥(蘆嶺山脈).
- 이기철,『영원 아래서 잠시』(민음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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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흐르는 물 같다 라는 표현도 함께.
가을이 불쑥 찾아 든 게 언젠데, 머릿속은 낡아버린 여름의 기억으로 놓지 못하고 있다.
몇 주 전에 바론 즉 남작의 성(사진들)에 발을 디뎠었다.
바론은 내가 우연히 그곳에 들른 2주 전에 세상을 떴다 하였고
그 때문인지 가을이 먼저 와 있었다.
지난 주말엔 미망인 친구의 생일잔치이자, 그녀의 새 반려자를 소개하는 파티에 갔었다.
2백여 명의 하객들은 홀랜드인 아니타와 나를 빼곤 모두 그렇고 그런 독일인들이었다.
이런 것이 이 나이에 무슨 별수냐 싶지만
파티에서 자정 넘어 귀가하고도 기어이 청국장을 한 솥 끓여 먹었다.
말하자면 이것이 내 방식의 균형지키기인 셈.
2달 반의 병가를 뒤로하고 직장에 복귀,
시계 속의 작은 부속품으로 되돌아 간 느낌.
시 쓰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