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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9월에 읽는 시 본문
소식
/이덕규
흰나비 한 마리가 너럭바위 위에 앉아
아무런 기약 없이 떨어져 쌓이는 꽃잎 사연들을
벌써 여러장째
복사하듯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먼 실연의 벼랑 끝에 맺힌 꽃봉오리에게
이 사태를 전하러 가야 하는데
흰나비가 문득 날개를 접고 골똘해집니다
한때 뜨거웠던 기억에 피가 도는지
캄캄했던 바위가 조금씩 물렁해지는 한낮입니다
- 오직 사람 아닌 것, 문학동네, 2023
두부 이야기
/정끝별
출생의 비밀처럼 자루 속 누런 콩들이 쏟아진다
이야기는 그렇게 실수처럼 시작된다
비긋는 늦여름 저녁 식탁에 놓일 숟가락 개수를 결정해야 해, 그게 라스트신이거든
물먹다 나왔는데 또 물먹으며 으깨진다
시간의 맷돌은 돌아가고 똑딱똑딱 떨어져 고인
너의 나날은 푹푹 삶아져야 고소해지고
거품을 잘 거둬낼수록 순해진다
매 순간의 물과 불 앞에선 묵묵한 캐릭터가 필요해
오랜 짠물은 너의 단맛을 끌어올려준다
몽글한 웅얼거림과 뜨거운 울먹임이 뒤섞여 엉겼다가
무명 보자기에 걸러지면서 단단해지는 이 플롯을
구원이라 할까 벌 아니면 꿈이라 할까
담담한 눈빛과 덤덤한 낯빛으로 맞이하는 밥상에서
만만찮은 희망으로 만만한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콩밭 매는 마음과 콩밭에 간 마음을 쓸어 담아
써 내려가야 갈 너의 한밤이 희고 깊다
밤새 이야기는 그렇게 쏟아지고 불려져
아침의 너는 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ㅡ시집 『모래는 뭐래』(창비, 2023)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강처럼
/ 문태준
내 몸을 지나가는 빛들을 받아서 혹은 지나간 빛들을 받아서
가을강처럼 슬프게 내가 이곳에 서 있게 될 줄이야
격렬함도 없이 그냥 서늘하기만 해서 자꾸 마음이 결리는 그런 가을강처럼
저물게 저물게 이곳에 허물어지는 빛으로 서 있게 될 줄이야
주름이 도닥도닥 맺힌 듯 졸망스러운 낯빛으로 어정거리게 될 줄이야
- 문태준,『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
....................
.....' ~될 줄이야.'. 하는 탄식어를 입으로 내뱉은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자꾸 마음이 결리는 서정일변의 시 '~ 가을강처럼'
내 몸을 스캔하고 지나는 빛, 그 빛 소재로 머릿속 빠르게 소묘 한장 그렸다.
그 바탕에 수채물감까지 입힐까 고민했다.
...... 시 '소식'은 한편의 신화처럼 읽었다.
(시인은 떨어진 꽃잎 사연을 복사하는 행위라 했지만)
나비가 날개를 접었다가 폈다가 할 때의 미세한 바람이 시 읽는 내 코끝에 감지되었다.
마침내 날개를 접고 골똘해 졌다 할 때는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의 바위가 말랑말랑 만져졌다.
이 시를 3번 정도 읽었다.
처음엔 나비만 보였고, 두번짼 꽃잎 사연이
그리고 세번짼 빵반죽처럼 말랑해진 바위가 제 자리를 찾아 열을 식히고 있었다.
네번째까지는 안 읽어도 되겠다.
...... 사람을 만나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왼손 주먹을 쥐어보라고 하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딱 쥐어진 주먹크기 만큼이 얼추 그 사람의 심장 크기이다.
참고로 나는 손가락이 길쭉하여 쥔 주먹도 작다, 고로 소심쟁이.
마음 속 애인에게 민들레 씨앗에 붙은 흰날개를 달아 줄 생각이다.
어디든 날아가 실한 뿌리 내리고 잘 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