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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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8월에 읽는 시

숲 지기 2023. 8. 1. 12:02

 

 

장마 그친 뒤 

/ 이성부

흰 구름 한 자락이

산의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사뿐히 땅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하늘로 드높이 올라가지도 못하는

흰 구름 한 자락이

산비탈을 이리저리 핥으며

머뭇거린다

산은 골짜기에 깊게 성감대가 숨어 있어

꿈적도 하지 않고

꼿꼿이 고개를 세워 먼 곳만 바라본다

크고 작은 일에 부대끼다 상처받는 마음들도

한동안은 저렇게 맑은 산봉우리로

고개 쳐들 날 있느니

비로소 먼 데 빛나는 강줄기를 보고

희망의 굽이굽이에 서리를 입김도 피어올라

함박꽃 웃음 온 산에 가득하다

흰 구름 한 자락이

별 볼 일 없다 고개를 넘어 사라진다

- 이성부 '도둑 산길' - 책만드는집, 2010

 

 

 

 

 

한여름 밤

/ 조향미

빈틈이 없다

하늘과 땅 사이가 팽팽하다

개구리 떼 미친 발광(發光)의 곡성

뾰족한 입이 생기로운 모기들

안개처럼 자욱한 하루살이 하루살이

우주를 채우는 저 왕성한 생기

모든 생에는 폭발할 듯 이런 여름이 있다

- 조향미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실천문학사, 2006

 

 

 

 

 

 

석류나무가 있는 풍경

/나호열

 

심장을 닮은 석류가 그예 울음을 터뜨렸을 때

기적을 울리며 떠나가는 마지막 기차가 남긴 발자국을 생각한다

붉어서 슬픈 심장의 고동소리가 남긴

폐역의 녹슬어가는 철로와 

인적이 끊긴 대합실 안으로 몸을 비틀어 꽃을 피운 칡넝쿨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고요가 저리할까

스스로 뛰어내려 흙에 눈물을 묻는 석류처럼

오늘 또 한 사람

가슴이 붉다

 

 

 

 

..... 일정에 따라 오늘처럼 새벽에도 또 해가 중천에 뜬 때에도 일어난다.

아무리 여름 하루라지만 날이 밝아지기까지는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 시각 시 읽는 일이 선물같다. 

써주신 시인분들께(댓가없이 가져왔음에도) 감사한다. 

 

..... 7월도 그랬지만 8월은 더 꽉꽉 채워 살 것이다.

귀가 먹먹하도록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그립지만 

이 곳의 거의 모든 생들도 폭발할 듯한 한여름이다.

 

...... 사진들은 독일 흑림의 길가 포도밭,

운전하며 곁눈질로 보고만 다니는 곳. 

저 밭능선 사이를 걷겠다고 벼르지만 매년 생각 뿐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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