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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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정월에 읽는 시

숲 지기 2024. 1. 1. 03:02

 

 

 

두꺼비집이 떨어지는 근하신년
​/김승희

일 년 열두 달 처음 열리는 새해 첫날에
영하 17도에
근하신년!
갑자기 정전이 오고
우리 집에 전기가 끊어지고
난데없이 벽 위의 신발장 위에 두꺼비집이 내려오고
피라미드에서도 어두운 두꺼비집이 떨어지고
보일러 텔레비전 냉장고 밥솥 에어 프라이어도
모든 가전도 다 안 돌아가고
어쩌자는 것인가
삶이 갑자기 바뀌고 밤이 갈라지고
주술이 술렁거리는 피라미드 속 어두운 밤
새해 첫날
정전의 밤
철물점 아줌마도 새해 첫날에 고향 시골에 가고
전기 수리공도 한전 검침원도
다들 새해 첫날이라 놀고
저 아래 도시는 강추위에 어두운 빛은 더 춥고
앞집도 모르고 뒷집도 모르고 옆집도 모르고
두꺼비집은 밤새워 힘없이 떨어지고
온몸으로 동시에 두꺼비집은 내려가고
하얀 빨래는 빙폭처럼 얼어붙고
어쩌자는 것인가
지구가 태양을 맴돌지 않는 날이라도
몸에서 정신이 떠나가고
벽지에 그림자가 돌아오고
어두운 하역장 트럭에서 석탄은 와르르 쏟아지고
영하 한파에 신생아를 버리고 달아난 여인
강보 안에 싸인 아기가 응애응애 울고
폭설 아래 전봇대 아래
살을 찢는 엄동설한 속 신생아 옆에
누군가 황급히 놓고 간, 빨간 딸기 바구니가 놓여 있는
너의 근하신년

-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3년 2월호

 

 

 

 

나무로 살기
/김윤현

음지 양지 따라 다가서지도 물러나지도 않기
가지와 잎이 다르게 생겼다고 남을 내치지 않기
주어 없는 문장처럼 가볍게 호흡하기
매일 매일의 변화를 눈에 뜨지 않게 이어가기
바람이 불면 때를 놓치지 않고 스트레칭하기
구름이 다가오면 지나갈 때까지 모른척하기
아무리 알아주는 이 없어도 뿌리는 드러내지 않기
어떤 일이 있어도 푸르름은 유지하기

 

- 계간 '시인시대' 2023년 가을호

 

 

 

 

 

 

 

안녕, 낭만적으로 인사하고 우리는 고전적으로 헤어진다

/ 박정대

 

한때 모든 노래는 사랑이었다

한때 모든 노래는 혁명이었다

모든 노래는 사랑에서 발원하여 혁명으로 가는 급행열차였다

반짝이는 차창의 불빛조차도 일종의 혁명을 닮아 있었다

나는 그리움의 힘으로 마시고

설움의 목울대로 노래하였으나

그 어떤 것도 세상을 위한 복무는 아니었다

내가 떠나온 그 무엇을 위해서도 복무하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복무했으니

오 미천하고 비루했던 사랑이여

나는 이제 이 별에서의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

나의 이제 이 별에서의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다

삶은 다른 곳에 있고

나는 여전히 이 행성의 삶에 속하지 않으니

나는 이제 내 작은 숲으로 가야겠다

그곳에서 빛의 음악을 들으며

햇살의 은빛 파도를 서핑하려니

이것은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그것은 어떤 저항의 멜랑콜리

저것은 끊임없이 이 거리로 착륙해오는 차갑고도 뜨거운 불멸의 반가사유

-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달아실 2023

 

 

 

............

 

 

 

 

..... 2024년, 짝수 해가 밝았다.

나는 숫자 홀수를 좋아한다. 홀수 중에서도 소수*를 편애한다. 

새해 2024는 홀수가 하나도 없는 짝수 해,

그러므로 올핸 내 살아온 기호와 습관을 되짚어 볼 생각이다.

 

.....우리나라완 달리 여긴 새해가 몇 시간 더디다.

이글 올릴 즈음 우리나란 이미 새해를 맞았겠지만,

망년회 장소인 피아니스트친구네 집을 향해 운전 중일 것이다. 

 

..... 자기애의 명상, 내가 짓는 가장 멋진 미소를 스스로에게 주었다.

12월 한달 간 마태복음을 읽었다. 

그간 생각의 좌표를 잃었거나 의문을 가졌던 것들이 성경을 읽음으로써 어느만큼 해갈되었다. 

 

..... 한햇동안 시 읽게 해주신 시 생산자들(시인들)에게 감사하며

눈 사진은 스위스 어느 시골이 배경이 되어 주었다.

.

이글 읽는 분들께, 많이 웃는 한해가 되길 빌어드린다.

 

 

 

 

 

 

*소수-약수가 1과 자기 자신 뿐인 자연수,1과 자신만으로 나눠 떨어지는 1보다 큰 정수. 예를 들면 2,1,3,7,11,17,23,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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