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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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읽는 시

숲 지기 2024. 2. 1. 11:49

 

 

 

기억한다

/ 류시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많은 것이

자신이 희망하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상처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에

자신이 미워졌다고 고백한 시인을 기억한다

눈사람에게

추워도 불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한 시인을 기억한다

끝까지 울면 마지막 울음 속에

웃음이 숨어있다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사람이니까 넘어져도 괜찮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나는 정원사이자 꽃이라고 노래한 시인을 기억한다

언제부터 시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언제부터 시인이기를 그만두었느냐고 되물은 시인을 기억한다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느냐고 물은 시인을 기억한다

나에 대한 기억이 너를 타오르게 하거나

상처주는 일 없기를 바란다고 노래한 시인을 기억한다

꽃은 절정의 순간에

마지막을 예감한다고 쓴 무명 시인을 기억한다

별들은 작거나 부드럽지 않으며

별들은 몸부림치고 죽어 가고 불타오르고 있으며

별들은 예뻐 보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잃어버린 모든 것이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고 쓴 시인을 기억한다

목소리를 잊고 노래하고

다리를 잊고 춤추라고 말한 시인을 기억한다

시를 읽고 운 적이 있던 때를 기억한다

​* 위쪽에서부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벤자민 스바나, 에밀리 디킨슨, 베르톨트 브레히트, 야마자키 소칸, 골웨이 키넬, 아이다 미쓰오, 오시프 만델스탐, 윌리엄 스태포드, 요세프 브로드스키, 페르난도 페소아, 케이틀린 시엘, 네이이라 와히드, 카만드코조리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수오서재 2022

 

 

 

 

 

그런 말

 / 정현종

 

그래요.

드넓은 침묵에 둘러싸여 있는 말이 있어요.

침묵의 우주인 마음에서 싹트는 말이에요.

캄캄한 우주의 머나먼 끝에서 빛이 태어나듯이

그렇게 움직이는 말이 있어요.

말보다 침묵이 더 쟁쟁하게 들리는 말.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침묵으로 둘러싸인 말.

인류의 역사에서 시가 그런 말이었는데,

그래서 삶은 겨우 지탱이 되어 왔는데,

요새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한없이 천박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 '공정한시인의사회', 2023년 12월호

 

 

 

 

 

 

봄을 기다리며 

/ 이상국

겨울산에 가면

나무들의 밑동에

동그랗게 자리가 나 있는 걸 볼 수 있다

자신이 숨결로 눈을 녹인 것이다

저들을 겨우내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퍼올려

몸을 덥히고 있었던 것이다

좀더 가까이 가보면

모든 나무들이

잎이 있던 자리마다 창을 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어디에선가 "봄이다!" 하는 소리만 났다 하면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겨울에 둘러싸인 달동네

멀리서 바라보면 고층빌딩 같은 불빛도

다 그런 것이다

- 이상국,'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창비 2005

 

 

 

 

...................

 

...... 사진은 해 뜰 즈음의 창밖 숲과 친구와 산책을 했던 날의 들길 풍경들.

볕이 든 쪽엔 눈이 녹아 진흙이 묻어났고 응달 빙판에서는 엉금엉금 걸었다.

 

..... 겨울동안 식물을 집안으로 들였다

햇살이 궁한 계절에 가지가 창가 쪽으로 기울었다.

어느 날 식물도 나를 창가에 두었다

나에게도 햇살이 궁했으니. 

 

..... 시들, 아무 댓가 없이 옮겨 왔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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