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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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읽는 시

숲 지기 2024. 4. 1. 09:31

 

 

 

 

벚꽃 반쯤 떨어지고 

/ 황인숙

 

한 소절 비가 내리고

바람 불고

벚꽃나무 심장이

구석구석 뛰고

두근거림이 흩날리는

공원 소롯길

환하게 열린 배경을

한 여인네가 틀어막고 있다

엉덩이 옆에 놓인 배낭만 한

온몸을 컴컴하게 웅크리고

고단하고 옅은 잠에 들어 있다

벚꽃 반쯤 떨어지고

반쯤 나뭇가지에 멈추고.

- 황인숙 '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사 2003

 

 

 

 

 

 

눈빛으로 말하다 

/ 나호열

떠나보지 않은 사람에게

기다려 보지 않은 사람에게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잔뜩 움켜쥐었다가

제풀에 놓아 버린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독약 같은 그리움은 찾아오지 않는다

달빛을 담아 봉한 항아리를

가슴에 묻어 놓고

평생 말문을 닫은 사람

눈빛으로 보고

눈빛으로 듣는다

그리움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꽃

그저 멀기만 하다

멀어서 기쁘다

- 나호열 '눈물이 시킨 일' 시학 2011

 

 

 

 

 

 

살구꽃,하르르

/마경덕

 

살구꽃 한 그루

마당에 솥단지 걸고 밥을 짓네

끓어 오르는 밥물,밥물

골목을 넘치네

훌쩍 담 넘는 살구나무

하얀 밥풀떼기 엉겼네

볼따구니 며지도록 밥알을 물고

골목을 바라보네

살구나무에 묶인 천방지축 개 한 마리

컹컹 짖네

인심 좋은 살구나무 옛다 먹어라

밥 한 술 떠서 개에게

던져주네

 

찌그러진 개밥그릇꽃 이파리 떨어지네

저렇게 잠깐 꽃은 지네

꽃인 듯 내가 지네

 

-문학의 전당 2005

 

 

 

 

배다리 헌책방 골목 

/ 이권

배다리 헌책방 골목 아벨서점

이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 반에 반값이 된다

조세희의 난쏘공이 문밖에 나와 지나가는 사람을

호객하고 있지만 별 소득이 없다

마광수의 가자 장미여관은 아예 건너편

여관골목으로 들어가 낮 손님을 받으며

희희낙락 성업 중이다

윤제림의 삼천리호 자전거도 바람이 빠진 채

한쪽 구석에서 이 골목을 떠날 궁리나 하고 있다

임화의 네거리 순이가 아직도 빨간 딱지를

붙인 채 납작 엎드려 있다 숨죽이고

가는귀먹은 바람벽이나 선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골목에 들어서는 사람은 이미 인생의 절반을

탕진해버리고 수십 번을 우려먹었을 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사러 오는 사람일 것이다

사랑하는 영희에게 1975년 가을날 찬우라고

써 놓은 낙서가 좋아 박재삼 시인의 千年의

바람을 이천오백 원에 샀다 몸 구석구석

밑줄 치며 읽었을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 이권 '아버지의 마술' 도서출판 애지 2015

 

 

 

 

.....

부활주간,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선 연중 2번째로 큰 명절,

성금요일부터 부활일요일 부활월요일까지 축제가 이어진다.

나는 잠 싫컷 자는 것으로써 지극히 개인적인 명절을 소화하는 중.

 

.....

잠들지 못한 날은 비 맞고 피어난 동백을 생각했다.

동백을 생각했으므로 잠들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겠다.

해풍이 안내한 밤비거리, 그 착한 섬에 

꿈이었던 것 같은 목소리를 두고 왔다.

 

.....

꽃이 필 뿐만 아니라 

떨어져서도 한참 웃고 있는 꽃을 보았었지.

또 동백이야기이다. 

 

여전히 제주도에 살고 있다. 

 

.....

4월에 읽는 시들에는 주제든 소재든 '꽃'물이 들어있다. 

쓰신 분들께 감사한다.

사진은 친구 이네스와 연중 산책 중에 눈에 들어온 풍경,

지난 3월 중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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