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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110)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9월이 옵니다. 날이 밝아 침실 창문을 열면, 손가락에 만져지는 바람 한점이 신선합니다. 금세 푸릇푸릇 높아진 하늘지붕은 책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라고 말해주지요. 9월과 맞는 시 몇 편 고르면서 이슬을 뒤집어 쓰고 깨어나는 제 동네의 친숙한 풀들의 모습들도 동봉합니다. 행복한 9월 맞으세요. 물봉선입니다. 이슬방울이 떨어질락말락.... 벌레의 작은 입을 생각한다 /이기철 벌레의 작은 입을 생각한다, 5월에 개암 살구 오디 으름 자두 머루 다래 산딸잎을 벌레가 먹고 내가 먹는다 벌레의 맑은 눈을 생각한다, 7월에 오이 상추 가지 감자 고사리 무릇 고들빼기 참나물을 벌레가 먹고 내가 먹는다 벌레의 밝은 귀를 생각한다, 9월에 비파 참취 털머위 자주쓴풀 수세미 참깨 산오이풀 골바위취를 벌레가 먹고 내가 먹는다..
지난 달부터 일제히 상륙한 무더위가 지구 북반구를 점령했습니다. 어두워질 때를 기다려서 우리들의 아까운 피를 노리는 무리가 비단 모기 뿐이겠습니까. 마치 게릴라 작전을 방불케 하는 한여름밤, 8월이 시작되는 초하루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전쟁용어로 시작합니다. 이유인즉, 문우..
그간 잘 지내셨지요? 석양 아래 그림자가 피노키오의 코처럼 하염없이 길쭉하게 늘어나던 6월이 가고, 이제는 낮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는 7월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더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지요. 여름을 좋아하는 제가 '7월을 사는 법'은 이렇습니다. 일정을 마친 오후엔 야외수영..
열흘이나 더 남았지만, 유월을 기다리는 편지를 미리 띄웁니다. 봄꽃들이 아직은 다 지지 않았고, 그 꽃들을 적시는 비들을 아직은 봄비라고 불러도 좋은 때입니다. 남은 오월과 또 희망의 유월에 행복하시고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 안녕히..... (구동독의 시골풍경들을 동봉합니다. 운전 ..
오월입니다. 드디어 오월입니다. 먼저 이 달의 시로 , 으로 골라보았습니다. 이맘 때만 되면 귓가에 늘 맴도는 노래가 있습니다. 슈만의 음악적 감성으로 해석한 하이네의 시가 그것인데, 놓치지 마시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지의 끝에 클릭주소와 가사를 첨부하겠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오월을 보내십시오. 맨드라미 /유홍준 여섯 살이었다 꽃이 예뻐 꽃이 좋아 장독대 옆 맨드라미 꽃밭에 가서 놀았다 볏 붉은 맨드라미 잡고 흔들어 댔다 눈이 부셔 눈이 아파 눈이 자꾸만 눈을 비볐다 밤 꼴깍 지새우고 병원에 갔다 돋보기 쓴 의사 양반 눈 크게 뜨고 내 눈 속에서 티끌만한 맨드라미 씨를 찾아냈다 비빈 맨드라미 씨 밤새 비빈 맨드라미 씨 벌써 하얗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했다 내 눈 속에 빨간 꽃을 피우고 있다고 했다 어..
4월입니다. 꾹 참고 일부러 3월 하순까지 기다렸다가 찾아갔는데도 목련꽃들은 입도 제대로 열지 않았더군요. 말을 걸고 달래볼까 해도 목련 고목에 열린 꽃망울들이 어디 하나 둘이어야 말이죠, 이 봄에 뭐가 불만인지 하늘을 찌를 듯 새침한 그들 꽃망울 무리를 눈치껏 그냥 저는 찍어만 왔습니다. 저희 동네에서 목련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만우절부터 시작하는 경쾌한 4월에 봄시들을 띄웁니다. 잘 받아 주십시오. 묵언(默言) /문태준 절마당에 모란이 화사히 피어나고 있었다 누가 저 꽃의 문을 열고 있나 꽃이 꽃잎을 여는 것은 묵언 피어나는 꽃잎에 아침 나절 내내 비가 들이치고 있었다 말하려는 순간 혀를 끊는 비 - 시집 봄밤을 위한 에스키스 2 /천서봉 많은 날 다 보내고, 그 많은 사람 다 보내고 그래도 모자라 ..
춘삼월입니다 마음놓고 "봄"을 이야기해도 되는 3월입니다. 봄비가 오는 중에도 희끗희끗 비행하는 눈발이 보이지만, 어디 봄눈만큼 순한 게 있을라고요. 고집이 없어서, 뭐랄 새도 없이 제 알아서 얼른 녹고 말지요. '맞아, 시는 이런 거였지'라며 읽을 때마다 한대 맞은 느낌이 드는 시, ..
2월 초하룹니다. 세월이 참 빠르지요. 낮에 몇점 빗방울이 창을 사선으로 긋고 가더니 지금은 싸락싸락 싸락눈이 내립니다. 원효사도 멀고 무등산도 아닌 곳이지만, '한 사람을 단 한사람으로만 있게 하는' 눈 시를 2월 초하루 시편지로 고르며 동네 눈풍경들 운전 중에 찍은 몇 점도 동봉..
흑림발 초하루 편지/2016년1월1일 동면에서 일어나 빛을 향해 날개를 편 새의 비상이 좋아서 오세영님의 작품을 새해의 시로 골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대는 다르지만, 몸 속에 해를 품었던 화가 반 고흐의 작품 두어 점도 편지에 동봉합니다. 올리브나무(Olive Trees)/반 고흐 작 새해 새날은 / 오세영 새해 새날은산으로부터 온다 눈송이를 털고침묵으로 일어나 햇빛 앞에 선 나무,나무는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은산으로부터 온다 긴 동면의 부리를 털고그 완전한 정지 속에서 날개를 펴는 새새들은 비상을 두려워하지않는다 새해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아득히 들리는 함성그것은 빛과 ?이 부딪혀 내는 소리,고요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소리,가슴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 새해 새날은산으로부터 온다 얼어붙은 계곡..
매월 초하루 자원하여 자칭 흑림발 편지를 띄우는, 식구 몇 안되는 곳이 있습니다. 미숙하나마 이제 어엿한 블로그도 있고 해서 2016년 부턴 여기에도 그 편지를 올릴까 합니다. 꽃은 꽃이지요, 그 자체로 최상의 아름다움이지 싶습니다. 형체로나 생각으로나 또는 낱말 '꽃'으로나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아는 시(詩)에 대한 생각을 꽃에 비유하여 써봅니다. 시는 ,꽃을 소재로 그려낸 수채화처럼 보이는 그냥 꽃이 화가의 생각 속으로 한번 들어갔다가 다시금 화폭에 피어나는 그런 꽃이지 싶습니다. 어떤 만만한 체험이나 대상이시인의 머리를 쥐어 뜯고는 '시'가 됩니다. 뽕을 먹은 누에가 빛나는 비단을 뿜어내는 이치와도 다르지 않고, 또 꽃의 생명이 유한한데 수채화가 그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