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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110)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안부 /장석남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이른 봄빛의 분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목이 햇빛 속에 들었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저것이 아닌가 하는 물리(物理)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그 방에도 들겠는데 가꾸시는 매화 분(盆)은 피었다 졌겠어요 흉내 내어 심은 마당가 홍매나무 아래 앉아 목도리를 여미기도 합니다 꽃봉오리가 날로 번져나오니 이보다 반가운 손님도 드물겠습니다 행사(行事) 삼아 돌을 하나 옮겼습니다 돌 아래, 그늘 자리의 섭섭함을 보았고 새로 앉은 자리의 청빈한 배부름을 보아두었습니다 책상머리에서는 글자 대신 손바닥을 폅니다 뒤집어보기도 합니다 마디와 마디들이 이제 제법 고문(古文)입니다 이럴 땐 눈도 좀 감았다 떠야 합니다 이만하면 안부는 괜찮습니다 다만 오도카니 앉아 있기 일쑵니다 꽃이 말하다 ..
산꼭대기 집 너머로 해가 넘어갔다. 이하는 하산하며 찍은 사진들. 모서리 /최서림 시는 모서리지 둥근 원이 아니다. 시인이 모가 났는데 시가 둥글면 가면처럼 쓸쓸하다. 시인이 둥글다는 것은 지나친 인격자란 것이다. 세상과 맞붙어 싸울 바보가 못 된다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상처도 없이 매끄럽게 잘 살아낸다는 것이다. 시가 빨아먹고 자랄 진물이 없다는 것이다. 진물은 生의 모서리로 모인다. ㅡ문학의 오늘 2018, 겨울호 한대의 차가 바로 코 앞에서 거의 걷는 속도로 간다. 고맙다. 신체와 콘트라베이스 /송재학 잠들지 못하는 밤의 손발로 나무를 깎아 떠나는 사람을 베꼈더니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온몸을 내어주었더니 누군가 아가미만 남긴 채 속을 헐어내고 뉘엿뉘엿 편서풍에 헹구었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섞이고 마주..
억울한 것들의 새벽 /이건청 묵호항 어시장엘 갔는데 바닷물 채워진 플라스틱 통, 유리 수조 속에, 막 잡혀온 가자미며 숭어, 고등어들이 들끓고 있었다. 어떤 놈은 통 밖까지 튀어나와 어시장 시멘트 바닥을 기어가기도 하였다. 꿈틀, 꿈틀 수평선 쪽으로 몸을 옮겨보고 있었다. 필사적인 것들이 필사적인 것들끼리 밀치며, 부딪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시 /유정이 당신 손닿는 곳마다 잎사귀가 하나씩 생겨난다 가지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매달린다 나는 새로 태어난 잎사귀와 손뼉을 치고 웃거나 어깨 위로 모이는 햇볕과 얼굴을 부비며 논다 내게 손바닥을 보이며 잎사귀는 어떤 운명을 궁금해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지 않은 다른 길이 궁금하다 지팡이는 어디다 두고 나는 왜 두꺼운 안경과 나란히 앉아 있었나 당신 손닿은 곳마..
축하합니다 /정호승 이 봄날에 꽃으로 피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이 겨울날에 눈으로 내리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괜찮아요, 손 드세요, 손 들어보세요 아, 네,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신 분 손 드셨군요 바위에 씨 뿌리다가 지치신 분 손 드셨군요 첫눈을 기다리다가 서서 죽으신 분도 손 드셨군요 네, 네, 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실패를 축하합니다 천국이 없어 예수가 울고 있는 오늘밤에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희망없이 열심히 살아갈 희망이 생겼습니다 축하합니다 ㅡ시집 문학과 지성 2018 밤이, 밤이, 밤이 /박상순 밤이 일어선다. 밤이 걷는다. 길고 긴 글자들을 가진 밤이 걷는다. 황혼의 글자는 바다를 건넌다. 바람의 글자는 빗속에서 태어났다. 12월의..
* 사람이 풍경으로 태어나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 낡음에 대하여 /위선환 낡는 때문이다. 눈 내린 겨울이고 봄이 오고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고 눈은 아직 내리는 것, 낡는 때문이다. 살갗을 스치며 바람이 지나가는 것, 전신에 바람무늬가 밀리는 것, 살이 닳는 것, 낡는 때문이다. 뒤돌아서 오래 보는 것, 먼 데서 못 박는 소리 들리는 것, 외마디 소리치는 것, 낡는 때문이다. 놀 붉고 이마가 붉는 것, 구부리고 이름 부르는 것, 땅바닥에 얼굴 부딪치는 것, 낡는 ..
소문난 가정식 백반 /안성덕 식탁마다 두서넛씩 둘러앉고 외따로이 외톨박이 하나,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내와 나를 반 어거지로 짝 맞춰 앉힌다 놓친 끼니때라 더러 빈자리가 보이는데도 참, 상술 한 번 기차다 소문난 게 야박한 인심인가 싶다가 의지가지없는 타관에서 제 식구 아닌 낯선 아낙이 퍼주는 밥을 꾸역꾸역 우겨넣으며 울컥 목이 멜지도 모를 심사를 헤아린 성싶다고 자위해본다 정읍 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 소문난 밥집 어머니뻘 늙은 안주인의 속내가 집밥 같다 잘 띄운 청국장 뚝배기처럼 깊고 고등어조림의 무 조각처럼 달다 달그락달그락, 겸상한 두 사내의 뻘쭘한 밥숟가락 소리 삼 년 묵은 갓김치가 코끝을 문득 톡, 쏜다 사촌 형수 /이길원 치마 자락처럼 늘어진 고향 선산, 사촌형수는 그 가슴에 선산을 안고 살았다..
무인도 /이영광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을 때면 어디 섬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결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떻게 죄짓고 어떻게 벌받아야 하는지 힘없이 알 것 같을 때는 어디든 무인도로 가고 싶다 가서, 무인도의 밤 무인도의 감옥을, 그 망망대해를 수혈받고 싶다 어떻게 망가지고 어떻게 견디고 안녕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그만 살아야 하는지 캄캄히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밤이면 반드시, 그 절해도에 가고 싶다 가서, 모든 기정사실들을 포기하고 한 백 년 징역 살고 싶다 돌이 되는 시간으로 절반을 살고 시간이 되는 돌로 절반을 살면, 다시는 여기 오지 말거라 머릿속 메모리 칩을 그 천국에 압수당하고 만기 출소해서 이 신기한 지옥으로, 처음 보는 곳으로 두리번두리번 또 건너오고..
반쯤 깨진 연탄 /안도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
꽃 주위를 맴돌던 벌이 어떻게 꽃의 영역에 발을 내딛으며, 연인인 벌을 맞아서 나직이 떨던 꽃들은 또 얼마만에 꽃잎을 오므리는지를 보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한 나절에 일어납니다. 7월은 꽃에게도 벌에게도 놓쳐서는 안 될 한때이지요. 시들을 빌어 오면서 쓰신 분들께 존경과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올해 마당의 보레취꽃들과 그들의 연인 벌 한마리 깻잎 반찬 /김순진 깻잎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실에 꿴 깻잎뭉치처럼 뭉쳐 살고 싶다 서로 떨어져 국수 수제비를 먹고 살다가도 만나기만 하면 서로 따끈한 쌀밥 한 술 산다고 우기며 깻잎을 얹어주고 싶은 사람 아래 있는 깻잎 꼭지를 젓가락으로 잡아주고 싶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깻잎장아찌가 서로 붙어 잘 일어나지 않을 때 밑장을 지그시 눌러주..
5월은 서둘러 갔고 이제 막 6월에 와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6월에 닿은 게 아니라, 우리의 의지로 새달을 맞았으므로 당당합니다. 6월엔 수동적일 수가 없지요. 지구 북반구에 발 딛고 사는 생명을 가진 그 어떤 것도 잎을 내고 손을 흔들다가 문득 튼실한 가지 하나을 뻗습니다. 6월의 숲은 날마다 녹색으로 덧칠을 하는 듯 흑녹색이 됩니다. 이름하야 이곳이 흑림이지요. ...... 하필 이런 때에 저는 카프카의 이 떠오릅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극의 그 끝에 또 다른 극은 있다고나 할까요.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불편과 냉대를 부르고, 급기야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떠나게 됩니다. 수동의 극치이자, 문학의 잔혹성을 말 할 때 더 좋은 예가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지요. 그야말로 변신입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