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텃밭
- 흑림의 봄
- 흑림의 샘
- 프로이덴슈타트
- 감농사
- 헤세
- 루에슈타인
- 흑림의 코스모스
- 익모초
- 마늘풀
- 카셀
- Schwarzwald
- 코바늘뜨기
- 바질리쿰
- 뽕나무
- 독일 주말농장
- 독일흑림
- 흑림의 오래된 자동차
- 뭄멜제
- 독일 흑림
- 우중흑림
- 흑림
- 싸락눈
- 흑림의 겨울
- 흑림의 여뀌
- 바질소금
- 흑림의 성탄
- 잔설
- 힐데가드 폰 빙엔
- 꿀풀
- Today
- Total
목록책상서랍/초하루 시편지 (102)
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다크사이드 오브 더 문 /윤성학 한 사람은 몇 개의 문으로 이루어지는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어둡고 따뜻하고 미끄러웠다 그의 맨 안쪽에 닿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눈이 어둠에 익으며 희미하게 또 하나의 문이 보였다 열고 들어가면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사람의 맨 안쪽에 닿기 위해 몇 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가 더 이상 머물 이유가 떠오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문을 열고 되돌아 나온다 그의 바깥을 향해 문을 열고 나온다 가장 바깥이라고 생각한 문을 열었는데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더 이상 열고 나갈 문이 없는데 아직 그의 바깥이 아니어서 ㅡ시인수첩 2019, 봄호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 /손택수 멀리 여행을 갈 처지도 못 되고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
겨울 호수를 걷는다 /박형준 눈 내린 호수에 발자국이 찍혀 있다 거룻배까지 이어져 있다 먼동이 보고 싶다는 당신과 아침에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 겨울 호수를 걷는다 당신은 호수 한가운데에 이르자 우리 지금 그냥 걷다가 서로 모르게 다리가 굳어버렸으면 좋겠어, 하고 말한다 이런 아침엔 밤새 얼지 않으려고 갈퀴를 젓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쳐버린 오리도 있지 않을까, 강물에 발목이 얼어붙은 줄도 모르고 날개를 퍼덕이다 졸음에 빠져 끊임없이 꿈만 꾸는 오리, 그런 오리가 나였으면 좋겠어 하고 말한다 호수 건너편 쪽엔 거룻배가 빛에 휩싸여 있다 발자국이 이어진 그 길에 점점 사라지는 먼동을 간직한 채 ㅡ'시와 표현' 2019, 1-2월호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고영민 이것은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 여..
안부 /장석남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이른 봄빛의 분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목이 햇빛 속에 들었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저것이 아닌가 하는 물리(物理)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그 방에도 들겠는데 가꾸시는 매화 분(盆)은 피었다 졌겠어요 흉내 내어 심은 마당가 홍매나무 아래 앉아 목도리를 여미기도 합니다 꽃봉오리가 날로 번져나오니 이보다 반가운 손님도 드물겠습니다 행사(行事) 삼아 돌을 하나 옮겼습니다 돌 아래, 그늘 자리의 섭섭함을 보았고 새로 앉은 자리의 청빈한 배부름을 보아두었습니다 책상머리에서는 글자 대신 손바닥을 폅니다 뒤집어보기도 합니다 마디와 마디들이 이제 제법 고문(古文)입니다 이럴 땐 눈도 좀 감았다 떠야 합니다 이만하면 안부는 괜찮습니다 다만 오도카니 앉아 있기 일쑵니다 꽃이 말하다 ..
산꼭대기 집 너머로 해가 넘어갔다. 이하는 하산하며 찍은 사진들. 모서리 /최서림 시는 모서리지 둥근 원이 아니다. 시인이 모가 났는데 시가 둥글면 가면처럼 쓸쓸하다. 시인이 둥글다는 것은 지나친 인격자란 것이다. 세상과 맞붙어 싸울 바보가 못 된다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상처도 없이 매끄럽게 잘 살아낸다는 것이다. 시가 빨아먹고 자랄 진물이 없다는 것이다. 진물은 生의 모서리로 모인다. ㅡ문학의 오늘 2018, 겨울호 한대의 차가 바로 코 앞에서 거의 걷는 속도로 간다. 고맙다. 신체와 콘트라베이스 /송재학 잠들지 못하는 밤의 손발로 나무를 깎아 떠나는 사람을 베꼈더니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온몸을 내어주었더니 누군가 아가미만 남긴 채 속을 헐어내고 뉘엿뉘엿 편서풍에 헹구었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섞이고 마주..
억울한 것들의 새벽 /이건청 묵호항 어시장엘 갔는데 바닷물 채워진 플라스틱 통, 유리 수조 속에, 막 잡혀온 가자미며 숭어, 고등어들이 들끓고 있었다. 어떤 놈은 통 밖까지 튀어나와 어시장 시멘트 바닥을 기어가기도 하였다. 꿈틀, 꿈틀 수평선 쪽으로 몸을 옮겨보고 있었다. 필사적인 것들이 필사적인 것들끼리 밀치며, 부딪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시 /유정이 당신 손닿는 곳마다 잎사귀가 하나씩 생겨난다 가지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매달린다 나는 새로 태어난 잎사귀와 손뼉을 치고 웃거나 어깨 위로 모이는 햇볕과 얼굴을 부비며 논다 내게 손바닥을 보이며 잎사귀는 어떤 운명을 궁금해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지 않은 다른 길이 궁금하다 지팡이는 어디다 두고 나는 왜 두꺼운 안경과 나란히 앉아 있었나 당신 손닿은 곳마..
축하합니다 /정호승 이 봄날에 꽃으로 피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이 겨울날에 눈으로 내리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괜찮아요, 손 드세요, 손 들어보세요 아, 네,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신 분 손 드셨군요 바위에 씨 뿌리다가 지치신 분 손 드셨군요 첫눈을 기다리다가 서서 죽으신 분도 손 드셨군요 네, 네, 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실패를 축하합니다 천국이 없어 예수가 울고 있는 오늘밤에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희망없이 열심히 살아갈 희망이 생겼습니다 축하합니다 ㅡ시집 문학과 지성 2018 밤이, 밤이, 밤이 /박상순 밤이 일어선다. 밤이 걷는다. 길고 긴 글자들을 가진 밤이 걷는다. 황혼의 글자는 바다를 건넌다. 바람의 글자는 빗속에서 태어났다. 12월의..
* 사람이 풍경으로 태어나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 낡음에 대하여 /위선환 낡는 때문이다. 눈 내린 겨울이고 봄이 오고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고 눈은 아직 내리는 것, 낡는 때문이다. 살갗을 스치며 바람이 지나가는 것, 전신에 바람무늬가 밀리는 것, 살이 닳는 것, 낡는 때문이다. 뒤돌아서 오래 보는 것, 먼 데서 못 박는 소리 들리는 것, 외마디 소리치는 것, 낡는 때문이다. 놀 붉고 이마가 붉는 것, 구부리고 이름 부르는 것, 땅바닥에 얼굴 부딪치는 것, 낡는 ..
소문난 가정식 백반 /안성덕 식탁마다 두서넛씩 둘러앉고 외따로이 외톨박이 하나,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내와 나를 반 어거지로 짝 맞춰 앉힌다 놓친 끼니때라 더러 빈자리가 보이는데도 참, 상술 한 번 기차다 소문난 게 야박한 인심인가 싶다가 의지가지없는 타관에서 제 식구 아닌 낯선 아낙이 퍼주는 밥을 꾸역꾸역 우겨넣으며 울컥 목이 멜지도 모를 심사를 헤아린 성싶다고 자위해본다 정읍 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 소문난 밥집 어머니뻘 늙은 안주인의 속내가 집밥 같다 잘 띄운 청국장 뚝배기처럼 깊고 고등어조림의 무 조각처럼 달다 달그락달그락, 겸상한 두 사내의 뻘쭘한 밥숟가락 소리 삼 년 묵은 갓김치가 코끝을 문득 톡, 쏜다 사촌 형수 /이길원 치마 자락처럼 늘어진 고향 선산, 사촌형수는 그 가슴에 선산을 안고 살았다..
무인도 /이영광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을 때면 어디 섬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결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떻게 죄짓고 어떻게 벌받아야 하는지 힘없이 알 것 같을 때는 어디든 무인도로 가고 싶다 가서, 무인도의 밤 무인도의 감옥을, 그 망망대해를 수혈받고 싶다 어떻게 망가지고 어떻게 견디고 안녕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그만 살아야 하는지 캄캄히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밤이면 반드시, 그 절해도에 가고 싶다 가서, 모든 기정사실들을 포기하고 한 백 년 징역 살고 싶다 돌이 되는 시간으로 절반을 살고 시간이 되는 돌로 절반을 살면, 다시는 여기 오지 말거라 머릿속 메모리 칩을 그 천국에 압수당하고 만기 출소해서 이 신기한 지옥으로, 처음 보는 곳으로 두리번두리번 또 건너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