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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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19. 8. 1. 00:11

 

 

울리케 마당의 석가모니

 

 

부처
/오규원

남산의 한 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담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 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눠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시집 '두두' 문학과지성사, 2008

 

 

 

 

 

 

 

 

품을 줄이게

/김춘수

 

뻔한 소리는 하지 말게

차라리 우물 숭늉을 달라고 하게

뭉개고 으깨고 짓이기는 그런

떡치는 짓거리는 이제 그만 두게

훌쩍 뛰어 넘게

모르는 척

시치미를 딱 떼게.

한여름 대낮의 산그늘처럼

품을 줄이게

는 침묵으로 가는 울림이요

그 자국이니까

 

/시집 '거울 속의 천사' 민음사 2001

 

 

 

 

 

 

*

김춘수님의 야단침이 따갑다.

저 푸른 숲을 씻어 거른 물만 마시면서

그 물 값도 제대로 못 하고 사니.....

 

*

오규원님의 시는 학교때부터 늘 좋았다.

하나가 모자라 99에 머무르는 이도 있고

1을 내려서 굳이 1백이 되지 않는 이도 있다.

 

울리케 마당에 놓인 저 부처에 대해 물었었다,

혹시 석가를 흠모하는가 하고.

아니란다,

그저 마당 귀퉁이를 장식하는 괜찮은 조형물일 뿐이라고.

뭐, 그러면 또 어떠랴.

 

*

떠나는 이를 배웅해야 하는 일이 서툴다.

턱 없이 부족하였음에 미안하고

고맙고.....

 

 

  • 노루2019.08.01 04:29 신고

    언제나 웃어야만 하는 저 돌부처 보게
    모르는 척
    시치미를 딱 떼게

    답글
    • 숲지기2019.08.01 16:21

      와우, 아주 좋습니다.

      노루님께는 하이쿠 쓰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지금 맞으셨지요.
      농담인 듯 농담 아니고요.
      그래도 어서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eunbee2019.08.02 03:02 신고

    오언절구 칠언율시...
    김춘수님 시를 읽으며,
    옛시, 한시 또는 시조에서는
    함축미와 율조가 갖는 리듬의 즐거움만이 아니라,
    규칙을 부여하므로서 시어선택의 절제와 간결로
    '품을 줄임'으로 더 깊고 아름다워지는 시가 쓰여졌겠구나...
    느끼고 배워봅니다. 배웠다고 말하지만 제게는 맬짱도루묵이지만요.ㅎ

    답글
    • 숲지기2019.08.02 12:51

      저도 운율이 있는 시가 좋습니다
      리듬이 시를 쥐었다 풀었다 하니
      특히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은비님께서는 여백의 미를 아시는 분,
      노시인이 싯구로 강조한 바를 다시 한번 써 주셨습니다.
      맬짱도루묵 아니시거던요 ㅎㅎ

  • 파란편지2019.08.04 03:07 신고

    율리케는 아니라고 그저 마당 귀퉁이를 장식하는 괜찮은 조형물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 마음을 다 말한 것인지는 율리케 자신도 알 수 없을 수도 있고
    저 부처는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오규원 시인의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는 표현대로
    저기 저렇게 앉아서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게 부처답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슬픈 열대"에서 묘사한 부처 생각이 났습니다.
    그 멋진 책의 뒷부분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부처를 한 '스승'이라고 말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부처는 바위 위에 그렇게 앉아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그렸던가?
    읽은지가 꽤 되어 제 기억은 흐릿합니다.

    답글
    • 숲지기2019.08.10 01:32

      여긴 이상하게도 석가모니를 실내나 실외의 장식으로 두는 게 유행입니다.
      가부좌를 한 모습고 있고, 때론 두상만 있는 것도 있습니다.
      가게에는 다양한 소재의 부처 형상이 크기별로 있는데
      수요에 따른 공급이겠지요.
      부처는 자신이 어떻게 쓰여지든 미소를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슬픈 열대는 읽지 못하였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읽고 싶습니다.

    • 파란편지2019.08.10 04:44 신고

      "슬픈 열대".1998년 '한길사'에서 번역된 책은 제목도 제목이지만
      원주민의 작품인 듯한 붉은색 문양의 표지 디자인도 멋있습니다.
      그러나 제1판 제1쇄의 가격이 25,000원이었을 만큼 762쪽이나 되어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멋으로 구입해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슬픈 열대"? 뭐가 슬프다는 거지? 싶었는데,
      저는 레비 스트로스가 부러워 마지 않은 대학교수나 장관이 되지 않고
      열대 밀림을 헤매고 다닌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습니다.
      교수가 되었어도 큰 일이야 했겠지요. 그렇지만 이런 문장을 쓰진 못했을테니까요.

      완전히 벌거벗고 사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이른바 '수치'라고 부르는 감정을
      모른다. 그들은 그 경계를 다른 곳으로 옮겨다놓은 사람들이다. 멜라네시아의
      몇몇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브라질 인디언들에게서 수치라는 것은 육체의
      노출이 크냐 작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평정한가
      아니면 흥분된 상태에 있는가 하는 데 따른 것이다.

      또 하나는, 그가 고국 프랑스에서 친구들처럼 대학교수나 장관으로 지냈다면
      제가 저 "슬픈 열대"를 볼 일도 없었겠지요?

      제목은 "Tristes Tropiques".
      숲지기님!
      제가 주제넘은 짓 하는 것 용서해주실 거죠?

    • 숲지기2019.08.13 13:24

      구조주의의 석학의 밀림에 대한 체험적인 저술,
      저도 꼭 한번 읽고 싶은 책입니다.

      수치의 개념에 대해 저도 공감합니다.
      우리가 정작 무엇을 부끄러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고요.

      이야기가 좀 빗나가지만,
      그리고 아직까지도 완전 극복은 못하고 있지만,
      극구 추천하고 싶은 게 이곳 '사우나 문화'입니다.
      남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같은 방에서 사우나를 합니다.
      특정지역 특정 사우나만 그런 게 아닌, 독일 전역의 평범하고 일반화된 것입니다.

      아무래도 교장선생님,
      슬픈 열대라는 제목부터 너무 큰 것이어서
      좀 더 생각을 해 보아야 겠습니다.
      밀림을 밀림 그대로 체험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20세기의 문명화된 인간이 석기나 철기시대 같은 밀림을
      선입견 없는 토착화한 사고를요?

      그리고 용서라 하시니 하하
      감히 제가 교장선생님을 어찌 ㅎㅎ
      여튼 매우 고맙습니다. 이 책을 소개해 주셔서요.
      흑림이나 밀림이나, 요즘은 그런 생각도 많이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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