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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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19. 9. 1. 00:11

 

 

 



개의 밤이 깊어지고

/강성은

 

개가 코를 곤다 울면서 잠꼬대를 한다 사람의 꿈을 꾸고 있나 보다 개의 꿈속의 사람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개가 되는 꿈을 꾸고 울면서 잠꼬대를 하는데 깨울 수가 없다

어떤 별에서 나는 곰팡이로 살고 있었다 죽은 건 아니었지만 곰팡이로서 살아 있다는 것이 슬퍼서 엉엉 울었는데 아무도 깨울 수가 없었다

개는 나를 바라보는데

깨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ㅡ 시인수첩 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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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

/문태준


꽃잎이 지는 열흘 동안을 묶었다

꼭대기에 앉았다 가는 새의 우는 시간을 묶었다

쪽창으로 들어와 따사로운 빛의 남쪽을 묶었다

골짜기의 귀에 두어마디 소곤거리는 봄비를 묶었다

난과 그 옆에 난 새 촉의 시간을 함께 묶었다

나의 어지러운 꿈결은 누가 묶나

미나리처럼 흐르는 물에 흔들어 씻어 묶을 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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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하는 달팽이
/이기헌


해남에서 온 채소를 다듬다가
잎사귀 사이로 웃으며 걸어 나오는
달팽이 한 마리를 만났다
깜짝 놀라 일손을 멈추었지만
조금은 귀여운 몸짓에 안도하며
나 또한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제 몸보다 큰 배낭을 짊어 메고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다가와
도시를 유랑중이라며 일박을 청했다
나는 배낭 속 소지품이 궁금했지만
달팽이는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루하던 식당이
배낭 멘 여행객으로 생기가 돌았다
농수산물 시장을 둘러보고
싱싱마트를 경유해 왔다는 달팽이는
주방 구석에 마련된 거처에서
하루의 고단한 여정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출근한 나는 달팽이에게
며칠 더 머물다 가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벌써 또 다른 여행지로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시의 개천을 둘러보고 싶다고
넌지시 도움의 손길도 내밀었다
주방아줌마가 챙겨준 간식거리를
비밀의 배낭에 곰곰이 챙긴 다음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개천까지 잘 배웅해주었다


ㅡ스토리문학 2019, 하반기호

 

 

.......

 

조촐하게 가든 그릴파티를 준비하면서

그간 읽은 것들 가운데 초하루 시들을 서둘러 골랐다.

딱히 9월과는 크게 연관은 없을 듯 하지만,

요즘 사람들의 소식중 카프카의 단편 '굶는 광대'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하면서 옮겨온 시들이다.

 

굶는 것이 특기인 인간이 꾸준히 굶어서 대중들의 박수를 받는다.

굶는 것은 그의 존재 의미가 되었기에

보통의 우리가 매일 매끼 밥을 먹듯 그는 굶었다.

  

아예 쭈욱 굶어,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도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우리시대의 광대들을  

언론은 앞을 다투어 전해준다.

(오, 언론의 역할이란!)

단지 굶을 뿐인 이들이 그 다음 어떻게 될지에 대해,

바쁜 대중은 관심이 없다.  

 

소설에서는 흉한 그 몰골 퀭한 눈빛 위에 지푸라기가 덮히고(처리되고)

군중이 몰려 환호하던 굶는이의 전시용 철장은 탱탱한 근육을 가진 젊은 표범이 차지했다.

표범은 무엇보다 식욕이 왕성하여 뭐든 잘 먹었다.

 

 

  

*

삽입된 그림들은 어린이들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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