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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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하루 시편지

숲 지기 2019. 7. 1. 00:11

 

 


 

 

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
/최인숙

웅크린 자세를 배웁니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자르고 말입니다
맹수의 이빨이라도 순하게 길들일 준비 또한 되어 있습니다
햇빛에 비틀거리던 거리를 그림 속에 가두고 싶습니까
트렁크를 열면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의자에게 바게트 빵이라도 뜯어먹자고 제안해 봅시다
잼이 묻은 칼은 베어 먹어도 좋습니다
굴러가기 싫다면 흘러가십시오
흘러가기 싫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대륙을 이동시킵시다
등 뒤에서 새로운 버섯이 솟아납니다

 

 

 

 

 

 

 

 

 

숨겨둔 말
/신용목

 

신은 비에 빗소리를 꿰매느라 여름의 더위를 다 써버렸다. 실수로 떨어진 빗방울 하나를 구하기 위하여 안개가 바닥을 어슬렁거리는 아침이었다.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를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 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ㅡ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창비, 2017

 

 

 

 

 

 

 


 

 

달팽이
/강상기 
 
정말 힘들게 사시네 그려
 
항상 짐을 지고 여행 다니는 것을
사람한테 배운 것이던가?
 
짐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자네도 알기는 알 테지
 
짐을 버리고
자네조차 버리고
 
달을 팽이 삼아 놀아보게나
 
-계간 '시와 세계'  2010년 여름

 

 

 

 

 

 

 

 

 

 

 

 

 

......................................

 

 

 

.......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는 전제 하에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다 한다.

 

여기까지로도 충분히 좋았는데

아랫연엔 부연을 하였다. 돌(빗방울)을 주워들었을 때

자신의 발자국소리가 그대로 있었다(아무도 꺼내가지 않았다)고.

 

시인은 왜 재차 확인했을까?

 

.......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나보다,

지구가 타오르는 듯한 나날들이다.

이렇게라도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내심 반갑다.

 

 ....... 사실 7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 사진의 풍경들은 모두 카셀의 산상공원에서 찍었음

 

  • eunbee2019.07.01 16:26 신고

    카셀 산상공원의 작은 폭포줄기가
    옮겨 놓으신 시 보다 더 좋은 편지로
    왔네요, 제게는...ㅎ


    7월을 좋아하시는 그대

    신록처럼,
    서늘한 물줄기처럼,
    능선을 넘는 푸른 바람줄기처럼,
    그렇게... 싱싱하게
    7월을 사세요!^^

    답글
    • 숲지기2019.07.01 23:49

      그쵸, 더위가 지속되었던 요즘은 저 물줄기를 자주 떠올렸습니다.
      시들은 술술 읽히는 것들로 골랐습니다.
      써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도 잊었네요.

      요즘은 좋을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나마 7월은 살만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능선을 넘는 푸른 바람줄기처럼 ....
      명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파란편지2019.07.02 02:48 신고

    "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을 서늘하게 읽었습니다.
    시의 한 행 한 행이 나지막하고 음산하고 힘차고 서늘합니다.
    대단하다 싶고 아프게 하였습니다.
    "숨겨둔 말"도 어느 정도인지 잘은 모르지만 지글지글 끓는다는 유럽에서
    읽는 순간 시원한 느낌을 갖게 할 것 같았습니다.
    두 편의 시는 몇 번을 읽어도 좋겠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달팽이"에 와서 저도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달팽이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이번달 시 세 편이 참 좋았습니다.

    답글
    • 숲지기2019.07.02 13:31

      창작시를 규칙적으로 좀 읽어 보자고 난을 만들었었습니다.
      어떤 달은 도통 눈에 들어오는 시가 없고요 ,
      어떤 달은 쑥쑥 읽는대로 깊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엔 고르기가(이런 표현, 쓴 분이나 읽는 분들께 양해부탁드립니다) 수웛했습니다.
      흔한 소재들인데 시어로 기가 막히게 잘 써 먹는다 싶습니다.

      서늘하고 시원하고 미안하시다는 교장선생님 시평에 시를 쓴 사람들도 많이 고마워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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