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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3월 초하루 시편지 본문
안부
/장석남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이른 봄빛의 분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목이 햇빛 속에 들었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저것이 아닌가 하는 물리(物理)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그 방에도 들겠는데
가꾸시는 매화 분(盆)은 피었다 졌겠어요
흉내 내어 심은 마당가 홍매나무 아래 앉아 목도리를 여미기도 합니다
꽃봉오리가 날로 번져나오니 이보다 반가운 손님도 드물겠습니다
행사(行事) 삼아 돌을 하나 옮겼습니다
돌 아래, 그늘 자리의 섭섭함을 보았고
새로 앉은 자리의 청빈한 배부름을 보아두었습니다
책상머리에서는 글자 대신
손바닥을 폅니다
뒤집어보기도 합니다
마디와 마디들이 이제 제법 고문(古文)입니다
이럴 땐 눈도 좀 감았다 떠야 합니다
이만하면 안부는 괜찮습니다 다만
오도카니 앉아 있기 일쑵니다
꽃이 말하다
/최재영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다
봄 그늘에 앉아
무심한 바람이 둥글 퍼지고
향기로운 햇살 몇 줌 도르르 구르는 것을 지켜보다
그 아득한 멀미 속을 헤매다가
끓어오르는 절정들을 그만, 복사하다
꽃의 이마는 늘 신열에 휩싸였으므로
뜨거움 속에서 종종 길을 잃다
매번 허탕만 치고 돌아오는 길은
무수한 통점이었느니,
돌아보니 폭풍처럼 지나왔노라고
지나온 길은 단숨에 지워졌노라고
꽃이 닫히는 시점 또한 눈멀고 말아
모든 찰나는 숨 가쁜 적요에 들다
하여 천 년을 피어 있어도 순간이라 기록하다
한나절 봄볕이 붉게붉게 소멸해 가다
그리고 진실에 눈뜬 자들은 이윽고 말하다
봄은, 오늘 또 몇 번의 허구를 재촉하였는가
꽃들이 기울어가는 봄날을 탁본하여 후일을 도모하다
다시 처음인 듯,
ㅡ시집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여각(旅閣)
/최재영
휘적휘적 눈 깜짝할 새 당도한 기나긴 반백년
쉰, 이라는 문을 밀자
숨 가쁜 나날들 삐걱이는 무릎에 닿아
그동안의 행적을 굽어보는 것인데
격렬한 시간의 무늬 겹겹이 쌓여 있는 협곡마다
누구나 빛나는 한 시절 저장해두었을 테지만
생의 누추한 파문들 모두 무릎 근방에 몰려 있어
곧 시린 바람이 일 것 같다
잔뜩 녹이 슨 경첩처럼 뭉툭하고 못생긴 관절
이 깊은 틈새에서 불빛 하나 아득하게 깜박인다
그 어느 곳엔가 생에 두고두고 찾아갈 여각 한 채
나는 푸르른 등불을 앞세우고
숱한 저녁을 건너 이곳에 당도하였는가
시름시름 옛사랑을 추억하듯 걷고 있는가
허름한 변방도 등 기대면 그리움으로 남을 일이다
낯선 여각에 누워 기록하는 하루도
먼 날, 다시 내 간 길을 되짚어 돌아오고 싶을 것이다
돌아와 무심코 지나친 한때를 구석구석 둘러보리니,
시큰거리는 무릎이 보이지 않는 길들을 불러들인다
먼 곳으로부터 폭설이 찾아온다는 기별이다
ㅡ시집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목련 나무 빨랫줄
/박서영
누추한 속옷 내걸린 목련나무 빨랫줄
꽃이 어느 시간 속을 이동해 사라지는 것처럼
축축해진 옷을 입은 사람의 시간도 말라 간다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받아먹는
야생 고양이 한 마리의 시간도.
―시집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걷는사람, 2019년
..........................
꽃시를 읽고 컴창고의 꽃사진들을 고르다보니 마음이 환해진다.
'이제 제법 고문(古文)'인 손바닥을 펴서 3월 초하루 안부를 전하오니,
'꽃 이마 뜨거운',
'천년을 피었어도 순간이라 기록할' 봄날에 종종 길 잃으시라.
쓴 사람도 내용도 다르지만 마지막 두 시에 공교롭게도 '누추한'이라는 시어를 공용하였다.
더 옮겨보면, "생의 누추한 파문들 모두 무릎 근방에 몰려 있어 곧 시린 바람이 일 것 같다."와
"누추한 속옷 내걸린 목련나무 빨랫줄" 이 그것.
읽기에 따라서 이 두 편의 시는 '누추한' 외에도 공통점이 더 있거나 또 없다.
낯선 이 두 문장 사이의 교집합이 되어 발바닥 넓게 설 수 있다면,
이 또한 읽는 이의 호사가 아닐까.
나는 이 시들을 필사하였다. 주머니에 한동안 넣어서 다닐 것이고
하늘을 보거나 흐트러진 머릿결을 무심코 쓸어올리며
"축축해진 옷을 입은 사람의 시간" 을 말릴 것이다.
꽃 기운 탓에 수다가 과했다. 읽는 이 몫의 감상을 제한한 죄, 반성한다.
3월,
"꽃봉오리가 날로 번져나오니 이보다 반가운 손님도 드물겠습니다 "
-
3월
답글
" 꽃봉오리가 날로 번져나오니 이보다 반가운 손님도 드물겠습니다."
이 싯귀에 맘이 멈추었었네요.
아직이야 외기가 추워서 농사일은 멀었지만, 이제 3월이 시작했으니
영 먼 것도 아닙니다.
어느 날 모종판에 그 여러개의 씨앗들을 한꺼번에 전체를 부을 수야 없겠지만.
나머지가 있어도 그 씨앗들도 모종판에 들어 간것과 같을 것입니다.
시작이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진행형이니까요. -
'누추한 속옷'
답글
속옷이 그렇습니다. 세탁해서 입고 다시 세탁하고 하는 동안은
낡은 것이 아니고, 새옷보다 더 몸을 편안하게 하는 촉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겨울 내복을 이젠 날씨가 따뜻해져서 세탁해서 손질해서 가지런히
포개어 놓아도 누추하게 보입니다.
생명을 담아 있을 때는 누추하지 않은데, 옷 자체만으로는 헐렁하게
늘어지게 보입니다.
그 누추한 속옷은 사람 몸을 포근하게 안아 줄수 있었습니다. -
아침에 이 포스팅 보러 와서 '이분이 예사로운 분은 아니구나' 했습니다.
답글
시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고
그 아래 '제 봄날'(주제넘겠지요?)에 대한 메시지 보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그러면 나도 이런 봄을 맞이해볼까?'
엉뚱한 계획을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참 좋은 어느 교장(여)이 시인이 되었는데 장석남 시인을
일찍부터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안부' 보고 그렇겠다 싶었습니다.
숲지기님의 안부 말씀이 시 속에 스며 있을 것이어서 또 오겠습니다. -
누추한 속옷 내걸린 목련나무 빨랫줄
답글
축축해진 옷을 입은 사람의 시간도 말라간다
ㅎ ㅎ 게으른 나는 이 두 줄이나 필사해서
읽고 있는 책 갈피에 넣고 다녀야겠어요.
메마른 내 시간이 좀 축축해지려나 싶어서요.
어디 목련나무에 우유빛 또는 보랏빛 속옷
걸려있나 기웃거리면서요. ㅎ -
숲지기님!
답글
파리는 바람이 몹시도 분다는데, 숲마을은 어떠한지요.
3월의 시편지에 답장이 너무 늦었지요? 읽고 또 읽었으면서..ㅎ
어제가 경칩이었다고해요. 숲지기님도 경칩절기 맞이하신 거죠?
한국은 일주일간 짙은 미세먼지로 극한의 나날을 보내는 중이라우.
숲마을의 봄은 어디까지 당도하였는지,
숲집 새싹들은 어떤 이야기를 쏟아내는지,
숲지기님은 무얼 먹고 사는지,
가까운 이웃되어 살펴야 겠어요.ㅎ
뱅기 티켓 찾아 나섭니다, 오늘.^^ -
알 수 없는 사용자2019.03.07 14:43 신고
흑림에도 봄이 조금은 당도하지 않았을까요? 여긴 아직도 겨울의 연장입니다. 가끔 영상으로 오르기도 하련만...ㅎ...어째 길어지기만 하네요. 다음 주에는 그래도 영상으로 오르는 날이 있지 않을까 기대중 입니다. ^^
답글-
숲지기2019.03.23 02:15
뉘른베르크가 아랫동네 라인강변과 비슷할 겁니다.
그곳엔 개나리가 동네마다 샛노랗게 피었더군요.
목련은 이제 막 개화를 할까말까 망설이고요.
양처럼 오는 봄이나 사자처럼 오는 여름이나 너무 좋은 계절이지요.
벌써부터 참기 어려울 만큼 설레이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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