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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2월 초하루 시편지 본문
산꼭대기 집 너머로 해가 넘어갔다. 이하는 하산하며 찍은 사진들.
모서리
/최서림
시는 모서리지
둥근 원이 아니다.
시인이 모가 났는데
시가 둥글면 가면처럼 쓸쓸하다.
시인이 둥글다는 것은
지나친 인격자란 것이다.
세상과 맞붙어
싸울 바보가 못 된다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상처도 없이
매끄럽게 잘 살아낸다는 것이다.
시가 빨아먹고 자랄
진물이 없다는 것이다.
진물은 生의 모서리로 모인다.
ㅡ문학의 오늘 2018, 겨울호
한대의 차가 바로 코 앞에서 거의 걷는 속도로 간다. 고맙다.
신체와 콘트라베이스
/송재학
잠들지 못하는 밤의 손발로 나무를 깎아 떠나는 사람을 베꼈더니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온몸을 내어주었더니 누군가 아가미만 남긴 채 속을 헐어내고 뉘엿뉘엿 편서풍에 헹구었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섞이고 마주치는 음역 사이 인기척이 더디면서 생의 잎새는 한 뼘 더 길어진다
그때 떨림은 온몸을 몇 차례 돌아다닌 핏물과 다름없다 그게 급기야 슬프디슬픈 입구가 되었다 사람은 저녁을 되풀이하는가 보다
꽃을 보아도 후회가 맨 앞, 약음기를 통해 체온이 부풀면서 공명통을 채우는 억양들
입이 부르튼 통점 그리고 멀리 떠나는 사람이기에 얼룩은 남는다 속삭임은 기어이 모든 나뭇잎의 입말이고 말지
무언가 삼켜야 어딘가 시큰거려야 토해낼 수 있는 소리가 있다면 적층 대신 깎아서 이루어진 소리 또한 있다
죽음처럼 불가피해야만, 불가촉의 저음이 고이지 않을까
ㅡ시와 반시 2018, 겨울호
진눈개비가 그치자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있다.느린 건 저 앞 자동차 뿐.
겨울 기도 1
/마종기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의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자동차 왼쪽 위, 장난처럼 그어진 불빛이 슈트라스부르크(프랑스)로부터 온 것.아래 사진에는 아주 조금 더 선명하다.
겨울 기도 2
/마종기
1
이 겨울에도 채워주소서.
며칠째 눈 오는 소리로 마음을 채워
손 내밀면 멀리 있는 약속도 느끼게 하시고
무너지고 일어서는 소리도 듣게 하소서.
떠난 자들도 당신의 무릎에 기대어
포근하게 긴 잠을 자게 하소서.
왜 깨어 있지 않았느냐고 꾸짖지 마시고
당신에게 교만한 자도 살피소서.
어리석게 실속만 차리는 꿈속에서도
당신의 아픔은 당하지 않게 하소서.
겨울의 하느님은 참 편안하구나.
2
내가 눈물을 닦으면
당신은 웃고 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슬픔 속의 노래다.
노래 속의 기쁨이다.
벌판에서 혼자 떨던 나무도
저 멀리 다음해까지
옷 벗어던지고 혼절해버렸구나.
내가 아는 하느님은 편안하구나.
ㅡ 그 나라 하늘빛 1991,문학과지성사
사진 왼쪽 위 미미하게 펼쳐진 불빛들이 슈트라스부르크. 흑림에선 블란스가 보여요. 아주 잘 보여요.
29
/이종민
아플 일만 남았어 이번 생은
오랫동안 입지 않은 셔츠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일
내가 씻을 때
훌훌 벗어놓은 옷이 예쁘게 개어져 있던 기억을 아직 사랑하는 일
우리는 글 안에서만 아름답고 기억 속에서만 예쁠 거라는 예감
양파 썰고 버섯 썰고 미역 볶는 냄새가 주방을 가득 메울 때
이런 게 바로 삶이라 생각하다가
차린 상 앞에 앉으면 불현듯 찾아오는 적막
서랍 속 숨겨둔 편지 몇 장
가방 속에 구겨 놓은 알약 몇 봉
많은 말이 필요했지만 이제 그보다 더 많은 말이 필요해서
개수대에 쏟는 밥알들
들통에 쏟는 식은 미역 줄기
실수로 들어간 양파 꼭지나 냉장고 속 리모컨 같은
올이 풀리기 시작하는 스웨터를 입고
너를 안으면 실밥이 네 외투 지퍼에 자꾸만 걸려서
ㅡ열린시학 2018, 겨울호
누가 낙서했어? 하하 가끔은 카메라가 야~하다.
속상한 일
/박지웅
나무에 소금 먹인다는 말을 들었다
뿌리둘레에 소금자루를 묻어 놓으면
천천히 독이 퍼지면서 비실비실 말라버린다니
참 못할 짓이지 싶은데
마음 구석에 슬쩍 생겨난 소금 한 자루
자루 입을 몇 번 풀었다가 묶었다
맹지에 길 내자고 소금자루 메고 가
산어귀 나무에 흰 고깃덩어리를 먹였는데
기다리는 비 한 방울 없더란다
걸핏하면 빌고 야심차게 기도하는 것도
참 몹쓸 짓
물을 켜도 혓바닥이 비실비실 마르더란다
가슴 한쪽이 쓰라리더란다
치워도 꼭 그 자리에 소금 한 자루가 터져
악독하게 소금을 치더란다
ㅡ주변인과 문학 2018, 겨울호
............//
요즘은 시도때도 없이 하늘이 바쁘다. 비가 내렸다가 구름으로 꽉 막았다가 여차하면 물방을을 분무해서 옆집도 안 보이도로 아리송하게 만들기 일쑤. 오늘은 그나마 아침나절 진눈깨비 한 차례 내리다 말았으니 하늘 기분이 나아진 모양이다. 2월엔 더도 덜도 말고 눈 좀 덜 내려 주시라.
사진과 시들의 관계가 참 멀다. 모르는 바 아니지만 찍어둔 사진이 없어 운전 중 부랴부랴 몇 컷 누른 것으로 올린다. 이 사진들도 앞차(프랑스 차번호를 단)가 거의 기어가는 속도를 유지해 주었으므로 가능하였다.
늘 같은 느낌이지만 시들을 싸이트에서 옮겨옴에, 시인들과 시를 읽게 된 그 과정까지 비슷한 일을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번 시들 올려두고 잘 읽을 거라고.
2월엔 쓰레기 생산을 가능한한 줄이고, 더 많은 창작시들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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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와 콘트라베이스는 자꾸 되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답글
치열하구나 싶고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시를 써볼까 싶었었는데 이런 시를 볼 때마다
그만두길 잘했구나 싶어집니다.
좋은 시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반가와라! 흑림에서 언덕을 넘나들며
답글
스트라스버그을 바라보았던적이 있었더랬고 랜트가
네비게이션만 믿고 가다가 Bitch라는 작은마을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 그곳 시장님과 인사도 하고 그 마을 구경도 했었지요.
그 언덕을 숲지기님이 다니신다 생각하니
많이 반가와요!^^
겨울기도
하나님 추워하며 살게 해주옵소서...
참 좋습니다!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 깊게 다가오는
기도문요~-
숲지기2019.02.28 17:05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저도 아주 잠시 다른 곳을 다녀올 땐 숲이 정말 그립답니다.
소박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사슴님 다녀가셨었다니 마음이 찡합니다.
프랑스와 가깝다보니, 숲에 그쪽 번호 차들이 자주 옵니다.
사슴님네도 캐나다 분들 자주오지 않나요?
제가 잘못 알 수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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