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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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읽는 시

숲 지기 2025. 2. 1. 14:53



'이미'라는 말

/김승희

 

이미라는 말,

그런 것이다

언제 찬란했냐는 듯

겨울 눈송이가 다 스며들었다는 말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공중에 뜬 리프트 상태에서 추락해 전신에 부상을 입은 발레리나,

노을이 가슴에 내려와

한사발 가득 목울대를 채우던 울음,

언제 찬란했냐는 듯

빈 사발에 쓸쓸한 물빛만 맴돌고

벌써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기장처럼 뻥뻥 뚫린 가슴 안에 모기는 이미 들어와 있다,

움직일 때마다 모기소리가 식식거리는 흉곽,

어차피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어붙은 가슴팍 밑으로 

이미,터무니 없는,

언제 찬란했냐는 듯

그런데

봄눈녹아

복수초부터 수선화 유채꽃 노루귀 한계령풀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개나리 진달래

줄을 이어 꽃잔치가 올라온다는 것이다

 

덜어내고도 다시 고이는 힘!

이미란 말이다

 

-'흰 나무 아래의 즉흥', 나남, 2014

 

 

 

 


이유가 있을까?

​/김언

바람이 불고 나무가 생기다가 말았다

생기다가 만 나무들이 자라면서 웃자라지 못하고

그 자리 그대로 틀어박혀서 생기다가 만 모양 그대로

바람을 맞는다. 바람이 심하다. 바람이 세고 바람이 거칠어서

더 자라지는 못하고 웃자라는 것도 잊고

능선을 장식하는데, 장식이랄 것도 없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데

붙어 있는 모양새가 하도 나무 같지 않아서

생기다가 만 것 같고 자라다가 포기한 것 같고

죽다가도 포기한 것같이 말라붙어 있는 모양새가

자꾸 눈길을 끄는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닌

능선을 따라서 눈길을 떼고 싶어도 자꾸자꾸 나타나는데

그 모양새가 하도 기가 막혀서 나무라고 부르려다가 말았다.

질려버려서 나무가 되어버린 것 같다.

- 계간 시산맥 2024, 겨울호

 

 

 

 

 

맨발로 걷기
 / 장석남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을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지
자주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
발이 시렸다

또다시 나무에 싹이 나고
나는 나무에 오르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 자란 생각 끝에서 꽃이 피었다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사 1991

 

 

 

 

..................

 

.... 족히 10여 년 넘게 모르고 지나던 우리나라 명절이었는데

올해 설날은 까치설부터 고스란히 알고 지냈다.

알았다고 해서 딱히 다를 바 없는 이국의 일상에서

난형난제(형 동생 즉, 어느 쪽이 옳은지 구분 어려운) 중인 고국의 정치상황을 주시하였다.

 

.... 작정을 하고 라인강가로 갔다.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한 강변 호수면에서 

마치 잃어버렸던 무엇을 구하듯 봄기운을 찾아 헤맸다.

아직은 너무 이르다 '봄'이라는 말은.

해가 기울면서 사나울만큼 바람이 쌀쌀해졌다. 

쿨룩! 

 

.... 댓가없이 가져온 시들에 감사드린다.

 

.... 푸른하늘 바탕에 흐르는 나뭇가지들,

호수면에 그려진 2월 초하루 겨울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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