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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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과 수직 /이슈·외부 글

코다리찜​

숲 지기 2025. 1. 12. 19:29

코다리찜

​/곽재구

시를 쓰지만

누군가 내 시를 읽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내 시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싫어요

내 영혼은 좀 더 비천해지고 싶고

내 시는 끝없이 쓸쓸해지고 싶죠

내장이 다 발겨진 채

낡은 전선 줄에 거꾸로 매달린 당신의 수모

당신이 쓰다만 시

난 이해해요

불판 위 뜨거운 고추장에 뒤섞여

살과 뼈를 녹였죠

눈보라가 몰아쳐요

내 시가 꿈꾼 단 하루의 삶이

불판 위에서 끓어요

양심이 죽고 지혜가 죽고 모든 천사와 신들이 떠난

혹독한 인간의 도시에

당신의 헐벗은 시가 찾아왔죠

사랑해요

사랑해요

​- 웹진시산맥 2024 겨울호

 

..

 

.............

 

 

'사평역에서'를 썼던 그 시인이다.

차갑고 쓸쓸한 겨울정서에서 맞이 한 코다리찜 한 냄비,

이런 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래 '사평역에서'와 연결했을 때 코다리찜 맛이 더 깊다.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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