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Blackforest)에 살으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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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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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지기 2020. 1. 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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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을 보러 갔다. 

 

영화관엔 그 직전 상영한 영화가 끝나고 잠시 자리 정돈을 하는 동안

아래 사진에서처럼 붉은 줄을 쳐 놓는다. 

때가 되어 직원이 줄을 거두면 입장을 할 수 있다는 싸인인데 

관람객들은 사진 속의 저 회청색 카펫 계단을 서둘러 뛰어 오른다.  

이 영화관에서는 자리배정을 안 해주니, 먼저 앉는 이가 임자이기 때문이다.

관람권은 평소보다 두배 정도 비싸게 받았는데(10유로 하고 얼마 더) 

나중에 알고 보니 상영시간이 길었다.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 혹여 또 다른 한국인이 있을까 해서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렸지만, 그 몇 백명 중 나 말고는 없었다.

우리말 상영이라 했으니 그래, 나 빼곤 다들 번역문장을 읽어야 겠네, 쪼까 ~ 미안네 하하,

이런 호사를 나 혼자만 누린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상영시간이 임박하자 서서 기다리기만 하던 장소가 발을 디디기에도 갑갑할 만큼 좁혀 왔다.

멀뚱멀뚱 벽이나 보고 있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하고 다가왔다.

십년도 더 된 동안 소식도 모르고 지냈던 미샤엘 W 였다.

한때 친목회도 함께 하던 열살 아래 언론인.

 

그 동안 그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할아버지가 유일한 가족이라 했었던 것도 같은데, 암튼 확실치 않아)

포르투갈 문학책 몇 권 번역한 게 있다며 보내줄까 했다.

아무리 힘 겹게 책 쓰고 신문기사를 써도 월세 지불하기조차 버겁단다.  

그러고 보니 그는 발이 무척 넓었지,

오래 전 어느 5월 생일 파티를 했는데 좁지 않았던 그의 아파트가 미어터졌다.

냉장고를 다 채운 마실 것들이 상자째로 욕조 물속에서 넘실대던 기억이 ㅎㅎㅎ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비주얼의 러시안 미녀들 옥사나 루드밀라 카트리나 .... 등등이 써빙을 하고

광선도 여기저기서 번쩍 거렸었다. 맞아, 월드컵 열풍이 불던 때였었고

통로엔 만국기가 펄력였고 그중 태극기도 있었어 맞아.

애인이던 러시안아가씨에게 그들 언어로 나를 소개하기도 했던 그는 러시아어에도 유창했어.

그 많던 여인들은 어떡하고 혼자 영화관엘, 그것도 한국영화를 보러 왔냐고? 

그러나 애써 묻진 않았다.

 

이윽고 영화관 직원이 줄을 걷고, 얼른 계단을 빠르게 올라서 자리를 잡았다.

미샤엘씨가 자리를 못 잡고 앞에서 어정쩡대기에 오라고 손짓을 하니 왔다.

여기까지가 지인과 이웃하여 관람하게 된 얘기이고.....

 

 

붉은 줄 뒤에 몇백 명의 사람들이 서서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중

 

영화는 그 흔한 극장 광고 하나 없이 바로 시작하였다.

한밤중 프로인지라, 마치는 시간을 고려했지 싶다.   

영화는 첫시작부터 (과장에 가까운) 희극적인 요소로 포장을 하였다.

그러나 포장지는 반투명이어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적어도 나는 서울을 아니까.  

면목동이었지 싶다. 조용한 주택가에 이삿짐도 다 풀지 못했고, 

오빠는 정원 시멘트를 좀 걷고 측백나무나 심을까 했고,

저녁 해가 진 뒤 귀가했다며 2절까지 꾸중을 들었던 여름방학 어느 날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물난리가 났었다.

영화의 장면처럼 골목에서 스트로폴을 배처럼 타고다니던 풍경을 그때 보았었다.

그 직후 구매가격보다 더 낮게 집을 정리를 했던 것 같고 그후 다시는 주택으로 가지 않았다.

 

상영하는 동안 지인과 나는 단 한마디의 말도 섞지 않았다.

모국어를 맘껏 즐기라는 나에 대한 배려였지 싶다.

웃기는 장면에는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보다 몇초 뒤에 따라 웃었다.

이웃 미샤엘씨를 위해 유일하게 했던 나의 배려도 몇초 기다렸다가 폭소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옆에 지인을 앉힌 것을 영화를 보는 내내 후회하였다.

이유를 쓰라면 너무 길거나, 또한 딱히 없다.  

 

구비해 갔던 와인병은 따지 않았다.

겨자땅콩은 극장을 나오며 이웃 미샤엘씨에게 줬다.

영화 어땠냐고 하니 그는 한 문장으로 일갈했다 ,

"대단한 영화예요.

하나의 영화속에 비극 호러 유머 철학.... 다 들어 있잖아요!"

대꾸를 나도 해야 했지만

단지 앉아서 눈 뜨고 귀 열고 감상만 하는 데도 지녔던 감성을 다 탕진했던 터인지라 

말 떼기조차 버거웠다.

동석을 한 몇 백명 가운데 유일하게 화면 속의 계단이며 홍수를 아는 인간이어서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것으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

상영관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며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도 하였다.

그가 아는 유일한 한국말이라 무심코 있자니, 숫자도 셌다.

"하나 두 세 네 다섯....."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하는거예요.

"아 맞아요 두개, 세개, 네개 때만 그렇게 해요.

다시 할께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열"

 

 

..................

 

 

 

 

-봉준호 감독과 수 많은 출연배우들, 촬영을 함께 하거나 도운사람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름다운 밤이다.

-"앞으로 무우말랭이 냄새'가 계층의 상징이 될 것 같네요"- 영화 함께 본 지인

-"운전기사는 왜 부자남자를 죽였지? 이해가 안돼 ", "응 그건 악취때문일 걸 아마."- 관객들의 수근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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