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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림살이 /동화·신화·재생

지음知音의 관계

숲 지기 2020. 1. 22. 21:51

 

'지음 知音'을 또 불러왔다.

거문고와 무협지에 밝은 어느 지인이 1977년 어느 일간지에서 읽었다는 글귀이다.

어언 40년이나 된 터라 옛날 어투가 짙은 이 단어는 

블로그를 하는 동안 자주 뇌리에 떠오른다.  

아래는 그 원문이고, 다만 한자에 우리말을 써넣었다.

 

 

 

 

 

 

옛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때,

  •  

초楚나라의  태생의 유백아兪佰牙는 스승 성연자成連子성연자에게 음악을 배운다.

成連子는 佰牙에게 여러해 동안 기초를 다지게 한 다음

그를 이끌어 태산泰山에 올라 봉래蓬萊의해안으로 간다.

백아는 태산에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장관을 보고

봉래의 해안에서는 비바람에 휘몰아치는 팽배한 파도소리를 듣는다.

백아는 대자연의 화성和聲과 교향交響에서

조화의 비경과 음악의 본령을 깨닫는다.

백아는 드디어 위대한 금곡琴曲 '천풍도天風操'와 '수선조水仙操'를 완성한다.

그 후 백아는 진晋나라에 가 금예琴藝(거문고의 최고 경지)로서

대부大夫의 봉작을 받아 이른바 입신立身과 출세出世도 하였으나

그의 금예琴藝의 참 경지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한다.

20년이 흐른 다음 백아는 잠시 고국에 돌아오나

스승 성연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였고,

유언으로 남겨준 고금일장古琴一張만이 백아를 기다린다.

상심한 백아는 강물을 따라 뱃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계절은 때마침 가을이어서 언덕에는 낙엽이지고

갈대꽃은 흐트러져서 애잔했다.

밤도 깊어 강기슭 뱃전에 앉아 시름에 겨워 거문고 한곡을 탄주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람결에 사람의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 깊은 밤 넓은 들판,

이 강기슭에서 누가 나의 거문고소리를 듣고 이토록 탄식한단 말인가"

백아 앞에 인도되어 온 그 사람은 땔나무를 해 팔면서 가난하게 숨어 살지만,

음악을 아는 종자기鍾子期(예전 유명 음악가)란 사람이었다.

백아는 줄을 가다듬어 수선조水仙操 한 곡조를 연주한다.

종자기는 그 곡을 듣고

"훌륭하오. 파도가 바람에 휘날리고 넘실 넘실 흐르는 물이구료"라고 평했다.

백아는 깜짝 놀란다.

다시 천풍도 天風操를 탄주한다.

종자기는 눈을 감고 경청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아름답소. 저 해와 달을 가슴속에 거둬들이고 별들을 발밑에 밟고 섰구려.

높고 높은 메뿌리의 절정에 섰구려"

말이 필요 없이공감했던 두사람은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잠시 이별하였다.

 

약속대로 다음해 백아가 종자기를 찾았는데

그는 병들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종자기의 무덤 앞에서 통곡한 백아는

칼날을 들어 거문고줄을 자른다. 백아절현 佰牙絶絃

'지음 知音'이 없는 거문고를 다시는 탄주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백아의 이 이야기는 예술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공감세계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우며

엄격한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고사古事라 하겠다.

매섭기까지한 순수한 예술의 세계가 선비의 고고한 자세가 다시한번 생각되는 오늘이다.

 

  • 파란편지2020.01.22 14:12 신고

    '지음'에 얽힌 고사가 있다는 얘기는 몇 번이나 들었지만 정작 자세한 얘기를 읽기는 처음입니다.
    중국도 그렇지만 그 먼 나라에 가서 이 이야기를 읽다니, 생각하였습니다.

    ".............고고한 자세가 다시한번 생각되는 오늘"........
    오늘?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하였습니다.

    답글
    • 숲지기2020.01.22 14:19

      1977년 어느 일간지에서 발췌하였다고 읽었으니,
      그때의 '오늘'이지 싶습니다.
      지금의 '오늘'과 비교해 볼까 하다가 그냥 둡니다.

      저 그림들은 중국싸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워낙 유명한 일화이니 그려진 그림도 많더군요.

  • 이쁜준서2020.01.22 23:13 신고

    伯牙絶弦과 知音
    순수한 예술세계는 사람을 사람이란 테두리에서 승화시켜,
    신의 영역에 가깝게 하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 많은 사화와 그 속에서 목숨까지 버리고 지켜 낸
    선비정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있기는 해도,
    묻혀 있지 싶은데, 세상은 너무도 혼탁합니다.

    귀한 이야기 이 아침에 읽게 되어서 고맙습니다.

    답글
    • 숲지기2020.01.24 01:04

      학문적 가치관이나 이념을 목숨을 걸고 지키다니요.
      하긴 요즘도 군인이 있고,
      또 그 보다 더한 희생을 하는 분들이 있지요.

      백아와 종자기의 일화는 워낙 대중적이어서 인구에 회자됩니다.
      이 넓은 지구에서 서로를 알아 본 종자기와 백아는 행운아들입니다.
      한사람이 이미 작고한 다른 한사람을 찾아서 악기의 현을 다 잘랐다 하여도
      두사람은 행운아들입니다.
      저도 많이 고맙습니다.

  • 노루2020.01.23 05:16 신고

    김혜순 시인의 시는 적어도 미국 시인 Robert Hass 가 알아주네요.

    세 주 전 뉴욕타임즈 'By The Book' 칼럼에서 Hass 는 "누구를
    best 현역 작가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시인으로는 한국 시인
    김혜순과 칠레 시인 Raul Zurita 라고 대답했더군요.

    답글
    • 숲지기2020.01.24 00:48

      로버트 하스 같은 대시인이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뭔가가 있지 싶습니다.
      한두 편 읽었지 싶지만,김혜순시인의 시에 대해 숙독한 적이 없습니다.

      노루님의 댓글을 계기로
      찾아 읽을까 합니다.
      식탁에서의 편식처럼 시읽기도 좁은 범주에 머문 것에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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